2024년 11월 28일
사람과사회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시사진단] 존엄의 유서(박상훈 신부,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소장)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전국에 편의점이 5만 개가 넘는다고 하는데, 그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은 업종이 있다. 9만 2000개에 달하는 건설업이다. 대형 건설사들이 건설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하는 일은 없다. 모두 하도급(하청)이고, 법에 금지되어 있는 재하도급도 거리끼지 않는다. 그러니 소규모 건설업체가 그렇게나 많다. 고용관계를 극단적으로 왜곡한 다단계 하도급과 중간착취가 만연해 노동자의 임금을 가로채고, 고용과 실업이 몇 주 사이로 반복된다. 이 흔들리는 삶을 노동조합이 간신히 지탱하고 있다.

지난 5월 1일 노동절에 스스로 목숨을 거둔 노동자 양회동(미카엘)은 삶의 대부분을 철근노동자로 살았다. 건실하고 정직하게 살았던 시민이자 동료들을 위해 헌신했던 노동운동가였다. 지난 2월부터 갑자기 대통령이 나서 건강한 사회의 ‘파수꾼 역할’(프란치스코 교황이 이태리 노동조합 총회 대표자들에게 한 연설, 2022년 12월)을 하는 노조를 ‘건폭(건설현장 폭력)’이라 선포하고 노조 죽이기에 나섰다. 노동자의 권리옹호를 위해 뛰어다니던 그에게 경찰은 ‘협박과 공갈’이라는 혐의를 씌웠다. 그는 유서에 “억울하고 창피하다”고 썼다.

모멸감과 수치심을 주는 것은 사소한 도발이 아니다. 인격 전체를 모욕하고 상처 주는 것이며, 사회적 소속감에 깊은 손상을 준다. 당신은 쓸모없고 함부로 해도 된다고 바로 앞에서 소리 지르는 것이다. 이는 인간 존엄에 대한 의도된 공격이다. 인간 존엄은 빈말이 아니라 아주 특별한 말이다. ‘누구나’ 예외 없이 인간으로서의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특권을 지닌 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이 ‘누구나’이다.

사람들을 신실하고 공정하게 대하며, 친절하고 관용하며 마음대로 나대지 않고 겸손하게 행동해야 이유가 있다. 그 사람들이 무슨 우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거나 도덕군자여서가 아니다. 그들 모두 나와 같이 윤리적-정치적 인간 공동체의 평등한 일원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간 존엄의 강력한 근거이다.(「세계인권선언」, 서문, 1948년) 여기서 인간은 어떤 인간인가?

가톨릭 전통에서 인간의 가장 특징적인 성격은 존엄이다. 하느님과 우리를 서로 묶어주는 공통점 하나가 있다. 인간성이다. 하느님께서 참으로 충만하게 인간이 되셨기 때문에(강생), 인간이 참으로 존엄한 것이다. 우리가 충만하게 인간이 되면, 더욱 온전하게 하느님을 닮아간다(성화). 하느님께서는 처음부터 우리와 똑같은 존재가 되고 싶으셨다. 인간의 선함과 올바름은 그 처음에 있었다. 그래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인간의 가치와 존엄에 대한 깊은 경탄이 복음이며 그리스도교다”고 말한다.(「인간의 구원자」, 10항, 1979년)

예수께서 주신 사랑의 법도는 하느님과의 친교와 인간의 친교를 동일한 사랑으로 여긴다. 이 사랑을 살아가는 길 가운데 하나가 서로를 동등한 인간으로 보는 삶의 실천이다. 누구를 나보다 열등하다고 여기는 순간, 온갖 모습의 부당한 차별, 사회적 배제, 악의와 윤리적 무감각, 폭력이 꼬리를 문다. 이런 악행은 ‘사회적 잔혹함’과 연관이 있다.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을 인생관으로 삼고 사회적 약자는 모멸하고 비하하는 습속에 젖어 사는 무자비한 곳이 한국 사회다. 이렇게 비루하고 비겁한 사회가 있을 수 없다. 행복하고 좋은 삶을 살려면, 사랑, 우애, 신앙, 일, 가족, 공동체 같은 선(善)을 단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실현하려고 애써야 한다. 이 잔혹함을 치료하지 못하면 인간 존엄도 없고 그러니 복음도 없다.



박상훈 신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3-05-31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11. 28

이사 42장 1절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