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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22) 이야기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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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소설가인 이자크 디네센(Isak Dinesen)은 “모든 종류의 슬픔은 이야기할 때에야 자각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우리 자신은 어떤 체험을 하고 그 체험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디네센의 말처럼 우리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할 때에야 비로소 자신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하다보면 말하는 사람이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의 이야기에서 교훈을 찾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 이야기할 때는 대부분 상처가 된 부정적 사건과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은 세상에 대한 원망스러운 감정을 쏟아내지만 나중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고 종전과는 다른 시각에서 과거를 해석하고 미래를 전망합니다.

이처럼 이야기는 말하는 사람에게 다양한 계기와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떤 마음인지 확인시켜주고 뒤죽박죽이었던 삶에 질서와 새로운 의미를 제공합니다. 과거는 바뀌지 않지만 자신을 괴롭혔던 과거를 정리하고 획을 그을 수 있게 합니다.

또한 모든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개인화시켜왔던 사건을 사회화시키고 공동체적인 해결책을 찾게 합니다. 반복해서 같은 실수를 하게 만드는 원인을 직시하고 새로운 접근방식을 찾게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자기만의 틀에서 나올 수 있게 합니다.

제가 현장에서 만났던 이들도 이야기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잘 모르고, 전체적으로 일관성이 결여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하면서 조금씩 자신의 겪음(체험)을 인식하게 되고 불분명했던 의미의 조각들을 맞춰나갔습니다.

혼자서는 이야기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누군가는 듣는 사람으로서 이야기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되고, 일단 말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말하는 사람이 스스로 한 가지씩 실마리를 풀어갔습니다.

S는 남편의 자살로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충격과 심리적 붕괴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상실의 아픔을 표현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홀로 어린 자녀 세 명을 돌보고 경제적인 문제까지 해결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급기야 본인도 자살충동을 느끼는 위기상황에서 상담이 이루어졌고, 처음 두 회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눈물만 흘렸습니다. 그동안 억눌렀던 슬픔을 밖으로 표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세 번째 회기에서야 비로소 자신이 겪은 일들을 조금씩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두 달여에 걸쳐 총 여섯 번의 상담을 진행하면서 S는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이 없는 현실(처음에는 남편의 부재를 인정하지 못함)과 자신이 감당해야 할 아이들(실제로 점점 억척스러운 엄마가 됨)을 분명하게 인식하게 되었고, 더 이상 사람들과의 관계를 회피하면서는 생활할 수 없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자신이 힘들어하는 이유 중에는 남편의 죽음만이 아니라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문제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에 대해 대처해나가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S 자신도 지금까지 했던 이야기가 참 하기 힘든 이야기였고, 그 힘든 이야기가 자신을 변화시켰다고 하였습니다.


황순찬 베드로 교수
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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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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