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지에서 온 편지] 캄보디아에서 윤대호 신부 (3)
썸롱톰성당 종탑 건설 완료 후의 모습. 윤대호 신부 제공
종탑 세우려 그렇게 많은 돈을?
역사가 깊은 성당들은 대부분 종탑이 세워져 있다. 종탑의 위치나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모든 종탑은 종을 가장 높은 곳에 달 수 있도록 설계한다. 그렇게 해야 종소리가 먼 곳까지 울려 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계가 귀했던 시절, 성당 종소리는 교우들의 규칙적인 신앙생활은 물론, 같은 마을의 모든 사람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성당 종소리는 사라진 지 오래다. 많은 성당은 종탑에서 종을 내렸고, 성당 신축 때 종의 유무는 고려하지도 않는다. 물론 도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성당이나 공소, 성지 중에는 여전히 종을 치는 곳도 있지만, 보편적인 경우는 아니다.
나는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내가 성장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성당에서 종이 울리는 것을 들어본 적 없다. 내가 다녔던 성당 꼭대기는 종탑 형태로 디자인되어 있었지만, 실제로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나에게 성당의 종소리는, 그저 영화나 드라마에서 쓰인 효과음이나, 유럽의 성당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에서나 들었던 것이 전부다. 아마도 내 또래인 40대 초반, 그보다 더 젊은 세대들 모두가 다 비슷할 것이다. 만약 이런 사람들에게 “성당 종탑을 건설하기 위해 1000만 원이 필요합니다”라고 한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아마도 쓸데없이 돈을 낭비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썸롱톰성당 종탑에 설치한 250kg짜리 베트남산 종. 윤대호 신부 제공
교우촌 성당 종소리
내가 사목 중인 프놈펜 대목구의 메콩강 지구에는 8개의 본당이 있다. 그중 6개의 본당은 오래전부터 종을 사용하고 있었다. 일단 모든 마을이 교우촌이기 때문에 성당 종소리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이 없고, 종을 매우 효율적으로 잘 활용하고 있다. 삼종은 당연히 울리는 것이고, 미사 시작 30~40분 전부터 10분 간격으로 종을 쳐서 사람들을 불러모은다.
특히 메콩강 지구의 공동사제관이 있는 쩜빠성당에는 종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성당 앞마당 종탑에 걸려있는 350㎏짜리 종으로, 미사 시간과 기도 시간, 그리고 마을 내에 공지사항을 전달하기 위해 울리는 용도다. 이 종소리는 묵직하게 ‘데엥- 데엥-’하고 울리는데, 그 소리가 마을 끝까지 은은하게 퍼진다.
다른 종은 사제관 앞마당 나무에 걸어 놓은 20㎏짜리 작은 종. 우리는 이것을 ‘망자의 종’이라 부른다. 이 종은 누군가의 임종을 알리는 용도로만 사용되는데, 아무리 늦은 밤이라도 칠 수 있다. 망자의 종은 무게가 가벼운 만큼 그 톤이 고막을 찢을 듯이 높아서, 새벽 2~3시라 하더라도 한 번에 잠에서 깰 수 있다. 망자의 종이 ‘땡땡땡’하고 울리면, 교우들은 임종 기도와 시신 축복을 하기 위해 예식서, 영대, 성수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사목위원들과 연령회원들도 종소리를 들으면 부지런히 준비해 사제관 앞에 모여, 함께 돌아가신 분의 집으로 간다. 이처럼 망자의 종은, 우리 교회 공동체의 슬픔을 함께 나누기 위해 언제든지 울릴 준비가 돼 있으며, 교우들이 사제를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에 바로 응답하게 해준다.
이렇게 종이 제 역할을 다하는 곳에서 여러 해 사목을 하다 보니, 이젠 종소리를 듣는 것이 참 좋다. 사목적으로도 도움이 많이 되고 있음을 느낀다. 그럼에도 아직 종이 없는 성당에 종탑을 신설하는 것에 대해선 선뜻 동의가 되지 않았다. 내가 주력으로 사목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 ‘썸롱톰성당’의 신자들은 부임 초기부터 종탑 건설을 건의해왔는데, 종 없이 30년 넘게 한국에서 살아온 나에게 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좋은 점은 분명히 알지만, 그렇다고 8000달러(약 1000만 원)의 돈을 종탑 하나에 쓰고 싶지는 않았다.
2018년 처음 썸롱톰성당을 전담했을 때부터 본당 사목회 위원들은 종탑의 필요성을 피력해왔다. ‘신자들이 미사 시간에 지각하는 것은 종이 없어서다’, ‘성당에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을 모으기 힘들다’ 등. 그럴 때마다 나는 “아이고, 핸드폰에 시계 있잖아요!”, “저도 사람들 모을 때 오토바이 타고 마을 한 바퀴 돌잖아요!”하며 거절해왔다. 당시 나는 낙후된 본당 수리에 온 신경을 다 쓰고 있었다. 누수와 누전 공사는 물론, 곰팡이로 절반 이상이 덮인 성당의 재도색도 시급했으며, 토지 정리와 정부 종교기관 등록 문제까지 해결할 것은 너무도 많은데, 교우들은 그저 종탑만 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중엔 성당에 필요한 공사 목록을 순위를 뽑아 최하단에 종탑을 적어 게시판에 공지했다. 그렇게 하니 한동안 잠잠해지긴 했다.
2022년 초 어느 주일 아침, 사목위원들이 사무실에 찾아와 검은 비닐봉지 하나를 내려놓았다. 지난 4년간 종탑을 만들겠다며 교우들이 돈을 모아왔다는데, 우리 돈으로 280만 원 정도의 돈을, 삼겹살 두 근 정도가 담길 만한 크기의 봉투에 한가득 담아왔다. 교우들의 경제사정을 잘 알기에, 이만큼 모으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짐작됐지만, 그렇다고 바로 동의하기는 어려웠다. 그간 종탑에 대한 생각이 많이 변하긴 했지만, 본당 교우들이 모은 자금 외에도 700만 원 이상을 더 투입할 가치가 있는가에 대해 확신이 들지 않았다.
썸롱톰본당 신자들과 기쁜 주일 미사를 봉헌한 후 기념 촬영을 하는 윤대호 신부. 윤대호 신부 제공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들
한창 고민하고 있을 때, 30년째 캄보디아에서 선교 중인 태국외방선교회 위라차이 쓰리쁘라몽 지구장 신부님께 의견을 물었다. “신부님, 종탑이 있으면 좋은 건 알겠는데, 이게 그 정도 돈을 쓸 만한 일일까요? 제가 사용하는 선교 기금들은 모두 한국의 교우들로부터 왔기에, 꼭 의미 있는 일에 써야 하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신부님께서 정말 현명하고 지혜로운 답을 주셨다. “교우들의 신앙생활에 긍정적인 변화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지 않을까요? 교우들과 함께 고민하고 기도하면서 준비하면, 하느님께서 분명 그들 마음에 변화를 줄 거예요.”
생각해보면 나는 가장 합리적인 판단만 하려고 했다. 21세기에 종탑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고, 더 효율적으로 선교 기금을 사용하고자 머리로만 생각해왔던 것이다. 사실 ‘신앙’이라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과는 맞아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도 말이다.
종탑을 세웠더니 벌어진 일
결국 썸롱톰성당 교우들의 성금과 베트남에서 모금한 기금, 그리고 내가 모아온 개인 선교 기금으로 종탑을 건설했고, 썸롱톰 마을에서도 드디어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놀라운 것은 불과 몇 달 사이 주일 미사 참여자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는 점이다. 종이 없던 시절 썸롱톰성당 주일 미사 참여율은 약 40, 즉 500명 중 200여 명 정도였다. 그런데 종 설치 후 지난 8개월간 50를 계속 넘기는 중이다. 그전에도 신자들은 미사 시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때론 귀찮아서, 그냥 나가기 싫어서 성당에 안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종소리가 들리니 마치 하느님께서 부르신다는 기분이 들어, 그 소리에 응답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어 나온다는 것이다.
내겐 그저 단순한 종소리에 불과했지만, 누군가에게는 하느님의 부르심이라는 것! 교회 행정을 위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에만 집중하다 보니, 정작 신앙 감수성을 잠시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반성했다. 그리고 선교의 현장에서 더 넓은 시야와 넓은 이해력으로 교우들을 섬기며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께 지혜를 청해본다.
오늘 아침에도 종소리는 울렸고, 나와 우리 교우들은 성호를 그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후원 계좌 : 우리은행 1006-601-211961
예금주 : 재단법인 천주교 한국외방선교회
윤대호 다니엘 신부(한국외방선교회 캄보디아지부 프놈펜 대목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