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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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뜻 설계하며 인간애 실천하는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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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문화관광부장관 표창부터 2021년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국무총리상과 부산시건축상 대상까지 20년 넘게 받은 상들은 헤아릴 수 없다. 얼마나 화려한 건축물을 설계했기에 그토록 많은 사랑을 받고 있을까. 서울대교구 가회동성당 설계자이자, 최근 최양업 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 경당까지 그림 그리듯 탄생시킨 ‘우연히프로젝트’ 건축사사무소 우대성(요한 사도) 대표 이야기다. 하지만 그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인간에 대한 깊이와 배려를 가장 중요시한다. 공간에 삶을 담고, 역사를 심는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사람들은 선을 향해 변해간다. 스스로 “하느님의 도구로 쓰이고 있다”는 우 대표를 만났다.
 

연남동 건축사무소에서 도면 작업 중인 우대성 대표.


땀의 건축가
우 대표를 처음 만난 건 지난 4월 충남 청양 새터성지에 마련된 ‘최양업 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 경당’ 축복식에서였다. 경당 설계를 맡은 우 대표는 그날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2년 전 죽림굴 가는 산길을 걷다 땀에 흠뻑 젖었어요. 동굴은 20평 남짓. 폭 4.5m에 깊이 13m, 높이는 3m가 안 되는 길쭉하고 경사진 곳이죠. 특별한 건 제일 낮은 곳에 제대가 있다는 거였어요. 신자들을 올려다보며 미사를 드렸다는 거죠. 마흔 살 최양업 신부님이 느꼈던 온전한 흔적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땀의 순교자’ 가경자 최양업 신부의 발자취를 느끼기 위해 직접 걸으며 확인했다. 또 최양업 신부와 관련된 자료란 자료는 모두 읽고 분석했다. 6살 양업이 새터에서 바라본 풍경부터 40살 최양업 신부의 마지막 흔적인 죽림굴의 느낌을 경당에 오롯이 담아내기 위해서였다.

경당에 들어가는 어두운 통로부터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제대, 최양업 신부가 9만 리 밤길을 걸으며 만났던 별들과 그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설치한 조선의 별자리 지도인 ‘천상분열열차지도’까지, 경당에는 그렇게 최양업 신부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겼다. 좋아하면 닮는다고 했던가. 땀의 순교자를 따라가다 어느새 그는 ‘땀의 건축가’가 돼 있었다.

 

 


자유와 창작, 그리고 기본
우 대표가 흘리는 땀의 근원은 자유로움에 있다. 대학에서 건축학과에 들어간 것도 건물을 폭파하면 한순간에 한 줌의 재가 되는 것을 멋있게 여겨, 폭파공학을 배우기 위해서다. 자유분방한 그의 성격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예다. 건축학과는 건물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세우는 방법을 배우는 곳이라는 걸 들어가서야 알았다. 하지만 자유로움에서 나오는 그의 창작성은 건축학과와 딱 들어맞았고, 4학년 때 건축 잡지에 공모한 작품은 단번에 대상을 받았다.

교만해질 법도 하지만, 그는 무엇보다 기본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무작정 아이디어를 내는 게 아니라, 더 깊은 차원의 고민을 해내기 때문이다. 그가 만들어 낸 수많은 건축물이 이를 증명한다.



공간이 변하면 사람도 변한다
우 대표는 20여 년 전, 인연이 있던 마리아수녀회의 부탁으로 수녀회가 돌보는 초등학생의 대부가 돼줬다. 가경자 알로이시오 슈워츠 몬시뇰(1930~1992)이 창설한 마리아수녀회는 설립자의 뜻에 따라 가난하고 상처받은 아이들을 돌보던 곳으로, 우 대표의 새로운 여정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수녀회는 아이들의 대부였던 우 대표에게 집 수리를 요청했다. 도합 100명. 방 하나에 15~20명의 아이들과 ‘엄마 수녀’가 함께 생활하는 집이었다. 처음에는 군대 막사 같은 공간을 아파트 구조로 바꿔 청소년들의 생활환경을 좋게 해주는 것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니 더 근본적인 문제가 보였다.

“아이들은 고등학교 졸업 후 자립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고, 실제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홀로 서는 연습이 필요했죠.”

우 대표는 큰 건물 대신 단독 주택 8곳을 만들었다. 집집마다 과일나무를 심고, 집 이름도 붙였다. 그렇게 2013년 부산 서구 암남동에 수국마을이 형성됐다. 밖에서 봤을 땐 누구도 아동양육시설이라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양육’에서 ‘자립’으로 바꾸고, 모든 일을 스스로 감당하도록 ‘개선’이 아닌 ‘개혁’을 선택했다. 건축을 통해 삶의 방식까지 바꿔준 것이다.

집집마다 공동 생활비로 한 달을 살고,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 일상을 논의하도록 했고, 아이들은 변화했다. 각자 생활비를 모아 주변 홀몸노인을 돕기까지 했다. 아이들에게 너무 좋은 집을 지어준 것 아니냐는 수근거림까지 나올 정도였다.

“행복을 경험해본 사람만이 행복을 꿈꿀 수 있죠. ‘사람이 건축을 만들고 건축이 다시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이상이 아니라,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조언 아닐까요.”

 

 

우대성 대표가 설계한 가회동성당. 윤준환 사진작가 제공


교회와 건축, 그리고 동네
우 대표는 2014년 준공된 서울대교구 가회동성당 건축 설계를 하며 본격적으로 교회 건축을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핀란드 헬싱키 캄피 광장에 채플이 있습니다. 작은 공간이지만 늘 열려있죠. 사람들은 종교 유무와 관계없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휴식을 취합니다. 종교색은 없지만, 모두가 채플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서울 광장에 묵상 공간이 있는 것과 같죠.”

그는 성당을 사적인 영역인 동시에 반공공제로 바라봤다.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쉴 수 있는 공간은 잘 없기에, 그런 부분을 교회가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누구나 와서 휴식을 취할 수 있고, 때론 울어도 되는 공간. 교회가 그런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가회동성당 마당은 널찍하게 비어있고, 입구엔 화장실이 있다. 방문객들을 위한 설계였다. 또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누구나 옥상으로 갈 수 있게 배려했다. 옥상 하늘마당에서는 옹기종기 모인 가회동 한옥 풍광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현재 성당 마당은 지나가던 시민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담소를 나누는 힐링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우 대표가 바라봤던 교회의 모습이 실현되는 중이다.

또 건물은 현대식과 결합한 ‘복합 한옥’이다. 한옥이 밀집한 가회동에 성당이 젖어들게 하기 위함이다. 존재하지만 드러나지 않고 주변을 존중하는 것. 그가 추구하는 건축물의 형태다. 가회동성당은 교회, 건축, 동네의 접점이자 모두를 배려한 집합체다.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부산 본

 


삶을 담아내는 하느님의 도구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부산 본원을 수리하기 위해 무려 15년간 내로라하는 건축가들이 달라붙었다. 하지만 모두 수도자의 삶에 대한 이해는 빠진 채 화려한 건축구조와 해외 모델을 따라 하기 급급했다.

우 대표의 접근은 완전히 달랐다. 그는 수도회 ‘회헌’에 모든 게 담겨 있다고 여기고, 설계 전 회헌만 수십 번 정독했다. 건축 설계와 회헌이 무슨 연관이 될까 싶지만, 그 결과 본원은 친정집과 같은 형상에 큰 변화보다 최대한 본래 모습을 보존하면서도 곳곳에 수도회 정신을 녹여냈다. 그는 “건축가 혼자 뛰어나서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다”면서 “건축주도 잘 준비돼 있어야 그들의 삶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다”고 했다.

“성당과 수도원을 설계하면서 하느님의 도구로 쓰이고 있음을 몇 번씩 체험했습니다. 지금껏 건축 일을 해온 게 당신 도구로 연습을 시킨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죠. 미사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있을 만큼 부족한 신앙이지만, 그분 손바닥에서 도구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은 확신합니다.”

자유로움 속에서 나오는 창의성과 그 중심을 잡아주는 기본기가 물씬 엿보인다. 거기다 인간과 교회에 대한 깊은 이해까지 녹아드는 설계. 우 대표는 지금도 하느님의 뜻을 설계하는 건축가로 활약 중이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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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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