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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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 - 세상을 읽는 신학] (61)코로나19 이후 교회에 관한 생각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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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감의 실종

우리는 망각의 동물이다. 어쩌면 우리는 잊을 수 있기에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났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익숙했던 일상의 관행으로 돌아간다. 교회의 삶과 신앙의 일상도 다시 예전으로 회복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주일미사 참례자가 70만, 전체 신자 대비 참여율이 11라는 통계가 얼마 전 교계 언론뿐만 아니라 세속 언론에서도 기사화되었다. 현상에 대한 진단과 위기 징후에 대한 담론들이 잠깐 등장하지만 별다른 후속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현상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과 미래 전망에 대한 예견 속에서 변화와 쇄신을 향한 준비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지 않다. 그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코로나 이전의 상태로 회복되기만을 바라고 있다고 말하면 지나친 평가일까. 회복과 변화와 쇄신을 위해 개별 교구 차원에서 어떤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교회 전체 차원에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진단과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가톨릭교회의 교구중심주의가 초래하는 한계일까.

신자 증가율과 주일미사 참례율은 코로나 사태와 관계없이 계속 감소하고 있었다. 코로나 사태가 위기를 초래한 것이 아니다. 코로나 사태는 단지 교회 안에 누적된 위기와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줬을 뿐이다. 사실, 자본주의 선진국가에서 신자 고령화와 신자 증가율 감소는 종교의 주요한 특성이다. 변화와 쇄신을 향한 노력이 없다면, 한국교회 역시 서구교회의 전철을 답습할 것이다.

인간의 어리석음은 가끔 머리와 마음과 몸의 괴리에서 발생한다. 위기와 파국이 다가올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고 해서 늘 제대로 대응하는 것은 아니다. 미래의 위험에 대한 인지가 현재의 삶이 갖는 편안함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다. 머리로서는 미래의 위기에 대해 인식하지만, 현재의 삶에 길들여진 마음과 몸은 변화를 거부하고 위기의식을 애써 거부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또 한편으로 위기가 제도와 체계와 관련이 있는 경우, 개인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자괴감과 이기주의 성향 때문에, 자기 일에만 몰두하며 공동체적 위기에 대해 눈감고 망각하려는 태도가 많다. 사실, 사람들은 실존적 위기가 다가올 때는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개별적인 노력도 하고, 또 평소에 자기 계발을 통해 위기 극복 능력을 키우기도 한다. 문제는 언제나 미래의 위기, 공동체의 위기다.

인간은 늘 위기를 돌파해왔고 또 생존을 향한 인간의 집단 지성은 위기를 극복하는 역량을 갖고 있다. 때때로 지나친 위기의식은 오히려 현재에 충실하지 못하게 할 뿐이다. 우리의 삶에 긍정과 낙관의 힘은 분명 소중하다. 하지만 지나친 긍정과 낙관의 태도가 때때로 위기 극복의 방해 요소로 작동하기도 한다. 물론 비관과 호들갑스러움은 위기 극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위기 극복은 언제나 정확한 인지와 분석, 변화와 쇄신을 향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노력과 실천을 통해 이루어진다. 건강한 위기의식은 변화와 쇄신의 시발점이다.


■ 변화와 쇄신을 위한 담론의 형성

교회 공동체는 성령께서 이끄신다. 하지만 성령의 이끄심에 의탁한다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성령의 이끄심에 참여한다는 것은 교회의 변화와 쇄신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서 모든 것을 성령의 섭리에 맡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의 현실과 현상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분석이 필요하다. 교회의 현실은 통계와 교회 안에 흐르는 담론들의 추세를 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성경과 교리가 교회 담론의 기초이지만, 당대의 교회 담론들은 교구장의 문헌들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교구장의 사목 교서, 성탄·부활 담화문, 주교회의 차원의 담화문들이 교회 담론의 핵심이다. 또 하나의 교회 담론의 장은 신학의 장이다. 당대의 신학자들이 세상의 현실을 읽고 성경과 교리의 재해석을 통해 새로운 상상력의 담론을 산출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의 방송과 언론은 교구장들의 사목적 선언, 신학자들의 담론, 교회 현실을 살아가는 신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면서 교회의 방향과 비전을 통합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의 한국교회 안에서 정확한 현실 진단과 교회와 신앙의 미래를 향한 비전을 담고 있는 건강한 사목적, 신학적 담론들을 우리는 발견하고 있는가.


■ 전례의 변화와 쇄신

미사 참례율의 저조함과 장기적 감소는 다양한 요인들을 통해 발생한다. 정직하게 말하면, 신자 대다수의 신앙생활은 주일미사 참례가 전부인 경우가 많다. 미사 참례율이 감소한다는 것은 결국 신자들의 삶에 있어서 신앙생활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는 사실의 반영이다. 「한국천주교회 팬데믹 사목백서」를 위한 설문조사에서도 그와 같은 현실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경제적 문제, 심리적 어려움과 육체적 건강 문제, 대인관계의 문제다. 사람들에게 신앙과 신앙생활은 핵심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나 부차적 차원의 문제다. 어떻게 하면 신앙과 신앙생활이 삶의 핵심으로 자리할 수 있을까.

미사 참례율의 감소는 전례 그 자체가 신앙인들에게 그리 매력적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자주 말해왔지만, 전례는 신앙생활의 핵심이다. 전례성사가 갖는 신학적 의미, 즉 보이지 않는 은총과 구원의 힘에 대해서 아름답게 설명할 수 있다. 사실, 교회는 오랫동안 전례가 가진 아름다움과 숨겨진 힘과 시간을 초월하는 장엄함에 관해 선포해왔다. 전례의 경문과 동작들 안에는 풍부한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가 전례성사의 깊은 의미와 힘을 잊었기 때문에 전례와 신앙생활과 일상의 삶이 잘 연결되지 않았을 수 있다. 전례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 하지만 단순히 가르치는 교육만으로 될 수 있을까. 전례 안에서 그 깊은 의미와 효과와 힘을 실제로 느끼지 못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전례의 인지적 차원보다 상상력과 정서적 차원의 문제다.

현실의 전례가 신자들에게 과연 어떤 모습과 의미로 받아들여졌는지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더 필요하다. 변화는 인지적 차원, 정서적 차원, 실천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전례가 사람들을 서로 친밀하게 하고 하느님과의 친교를 정서적으로 체험하게 하는지. 전례가 신자들의 신앙적 가치관을 형성시켜 일상생활 속에서 그 가치관을 실천하는 삶을 살게 하고 있는지. 미사가 하느님과 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이라면, 과연 어떻게 하느님의 이야기와 우리들의 이야기가 만나고 있는지. 미사의 가시적 의미와 효과를 위해 성가, 참회 예절, 신자들의 기도, 강론이 어떻게 구성되고 이루어지고 있는지. 전례와 성사에 대해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질문을 던지며 그 대답을 찾아 나갈 때, 역동적이고 살아 있는 전례가 될 것이다.



정희완 요한 사도 신부(가톨릭문화와신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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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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