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지난 5월 25일 국회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법률 제19425호, 이하 전세사기 특별법)이 통과돼 6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이하 시민대책위)와 ‘전세사기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이하 피해자대책위)는 5월 2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정부의 무책임·무대책, 반쪽짜리 특별법 강행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위원장 나충열 요셉 신부)도 연대하고 있는 두 대책위원회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정부 차원의 추가 대책을 마련해 특별법을 개정할 것을 요구했다. 전세사기 문제가 왜 국가적 재난인지, 교회는 왜 이 문제에 목소리를 내야 하는지 짚어 본다.
전세사기 구제 못하는 특별법
전세사기 특별법은 제1조에서 전세사기로 피해를 입은 임차인에게 특례를 부여함으로써 전세사기 피해자를 지원하고 주거 안정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제3조에서는 ‘전세사기 피해자의 요건’을 규정하고 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상 확정일자를 갖춰야 하고, 임차(전세)보증금이 3억 원 이하여야 하며(시도별 여건에 따라 2억 원까지 상향 조정 가능) 임대인이 임차보증금을 반환할 능력이나 의사가 없으면서 ‘다수의’ 임차보증금을 받아 피해를 발생시켰거나 피해를 의도했다고 인정될 때 전세사기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시민대책위와 피해자대책위,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는 전세사기 특별법에 규정된 피해자 요건이 너무 엄격하고 요건에 해당한다는 입증을 사실상 피해자가 해야 하기 때문에 이 특별법에 의해 구제를 받을 수 있는 피해자는 극히 일부에 불과할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또한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대표적인 유형인 ‘깡통전세’는 전세사기 특별법의 구제 대상에 아예 포함되지 않았다. 깡통전세는 전세 주택을 팔아도 전세보증금을 돌려 줄 수 없는 피해 유형을 말한다.
이뿐 아니라 전세 주택에 입주도 못해 보고 사기를 당한 경우, 전세보증금이 5억 원 이상인 경우, 밝혀진 피해자 수가 적어 수사 개시 여부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 등은 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 나충열(요셉) 신부는 “전세사기 특별법 시행으로 구제받을 수 있는 피해자가 소수라도 있어 특별법에 반대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수용할 수도 없다”며 “전세사기 피해로 절망에 빠진 분들이 숨을 쉴 수 있도록 우선적으로 구제하는 조항이 특별법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법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정부와 여당이 전세사기 특별법을 제정하며 시민대책위와 피해자대책위가 요구했던 적극적인 구제 조항을 외면했던 배경에는 전세사기를 국가가 구제해야 하는 ‘사회적 재난’으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점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 예산 부족이 이유로 더해졌다.
나충열 신부는 “정부가 사회 편의시설 설치에 국민 세금을 투입하면서 사람 목숨까지 앗아가는 전세사기 피해 구제에 예산 부족을 거론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시민대책위와 피해자대책위가 5월 30일 참여연대 2층에서 마련한 ‘전세사기 특별법의 한계와 개선방안’ 좌담회에 참석한 안상미 피해자대책위 공동위원장은 “전대미문의 전세사기는 부동산 시세를 조작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제도, 금융권의 무분별한 근저당 대출, 민간임대사업자에 대한 국가의 관리 부재 등이 겹친 재난”이라고 말했다.
전세사기 특별법은 피해자 구제 방안으로 ▲최우선변제 대상에서 제외된 피해자에게 서울 기준 최대 5500만 원까지 최장 10년간 무이자 대출 ▲경매나 공매로 넘어간 전세사기 주택에 대해 피해자에게 ‘우선 매수권’ 부여 ▲전세사기 주택을 한국토지주택공사 등이 사들여 피해자에게 공공임대주택으로 우선 공급 등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사회와 종교계에서는 무이자 대출이라고 하지만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또 다른 빚을 지우는 것이고, 우선 매수권은 전세사기 피해를 당해 경제적으로 여력이 없는 이들에게는 무용지물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전세사기 주택을 공공에서 매입해 피해자에게 임대한다는 규정도 피해자의 주거 안정에는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지만 전세보증금 회수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시민사회와 종교계에서 전세사기 특별법에 반드시 추가돼야 한다고 요구하는 구제방안은 ‘선 구제 후 회수’다. 전세사기 피해자가 돌려받을 전세보증금을 국가가 피해자에게 전부든 일부든 우선 지급하고, 후에 임대인으로부터 회수하는 방식이다. 피해자가 임대인에게 갖고 있는 전세보증금 반환 채권을 국가가 매입해 임대인에게 권리 행사를 하면 피해자 개인이 하는 것보다 효율적이라는 논리다.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는 우리 교회의 사명이며, 그들의 목소리에 함께 힘을 싣는 것은 형제적 사랑 안에서 당연히 요구되는 것”(「복음의 기쁨」 제187항)이라고 말한 대로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에 지속적으로 힘을 모으기로 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