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님께서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고 하셨는데, 저는 걱정 없이 살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걱정 없이 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주님께서 무엇을 먹고 마실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보면 이분이 결혼을 안 하셔서 이런 소리를 하시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가정을 이루고 사는 분들의 걱정은 대부분 먹고 입고 하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그럼 기도만 하면 다 해결해주신다는 것인가요?” 하고 묻기도 하십니다. 간혹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면 주님께서 다 해결해주신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정주부가 식구들이 무엇을 먹을지 전혀 신경 안 쓰고 하루 종일 성당에서 기도만 한다면 가족들로부터 원성을 듣는 것은 물론 신앙이 사람을 망가뜨렸다고 성당에 발을 끊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왜 이처럼 오해의 소지가 큰 말씀을 하신 것인가?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마음을 어디에 두고 살 것인지를 이야기하신 것이지 모든 것을 다 팽개치고 기도만 하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걱정 없이 세상을 살 수는 없습니다. 먹을 것 입을 것 걱정 안하고 사는 것은 종교인들이나 가능한 것이지 가족을 부양하는 부모들은 걱정 속에 사는 것이 정상입니다. 단지 주님께서는 소모적인 걱정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당부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걱정이란 앞날에 대한 부정적인 예측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니 젤린스키는 우리가 하는 걱정들에 대해 이렇게 분석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우리가 하는 걱정의 40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들에 대한 걱정이다.” 비행기를 탔는데 추락하면 어떡하나, 배를 탔는데 침몰하면 어떡하나 하는 등의 걱정이 이런 걱정입니다. “걱정의 30는 과거에 이미 일어났던 일들이다. 12는 불필요한 걱정들, 10는 사소한 걱정, 8는 우리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걱정들이며 이중에서 그럴듯한 걱정은 전체 걱정들의 4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동의하지 않을 분들도 있겠지만, 어니 젤린스키의 이야기는 우리가 쓸데없는 걱정으로 자기 소모적인 시간 낭비를 한다는 지적을 한 것입니다.
신부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지 않는 본당은 새로 지어야 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다 짓고 난 후 어떤 신부는 쌩쌩한데 어떤 신부는 폭삭 늙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걱정을 얼마나 했는가에 따라서 외모마저 바뀌어버리는 것입니다. 저 역시 지난날을 돌아보면 쓸데없는 걱정으로 시간을 소모하고 건강을 해치기조차 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래서 가끔씩은 우리가 가진 걱정들을 목록으로 만들고 그 무게와 현실감을 저울질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은 하느님께 뭉텅 맡기고 감당할 만한 걱정만 안고 간다면 인생길이 조금은 편안해질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도 여전히 걱정 속에 산다면 “걱정도 팔자다”라는 말을 들을 것입니다.
■ 마태 6,25-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홍성남 마태오 신부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