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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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 - 세상을 읽는 신학] (62)코로나19 이후 교회에 관한 생각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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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와 민낯, 그리고 기대

어려움과 고통을 마주할 때 그의 본질을 알 수 있다. 개인이든 공동체든 위기에 처할 때 감춰진 속내와 민낯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코로나 사태는 교회의 속살과 맨얼굴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한국천주교회 코로나 팬데믹 사목백서」를 위한 설문조사의 결과는 교회와 신앙의 현실을 정직하게 보여주고 있다. 설문조사 내용을 보면 몇 개의 특징이 두드러진다. 첫째, 세속화 여정 속에서 종교가 문화의 한 요소로 전락한 것처럼, 사람들에게 신앙은 경제적 삶과 건강, 다양한 실존적 문제들보다 후순위에 자리하고 있다. 신앙인들의 실제 삶에서 신앙과 신앙생활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

둘째, 신앙에 대한 당위적 인식과 실제 현실에서의 실천은 언제나 괴리가 깊다. 코로나 사태로 미사 참여, 기도, 성경공부 등 신앙 행위의 소중함에 대해서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신자들이 많아졌다. 일상적이고 습관적인 것들은 부재를 통해서 그 소중함과 의미를 다시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머리로 그 중요성과 소중함을 인지하는 것과 실제 현실에서 몸으로 그것을 다시 반복하는 것은 다르다. 관행적인 것을 하지 않음으로써 오는 몸의 편안함에 조금씩 길들여져 간다.

셋째, 개체적이고 편리함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오프라인 모임은 점점 약화되고 온라인 행위들이 강화되는 추세다. 코로나 사태는 이러한 경향을 더욱 촉발했다. 본당의 경계를 넘어, 인지도가 높고 대중적 흡입력이 있는 강론과 강의에 대한 쏠림 현상이 더 심각해졌다. 가톨릭교회의 핵심 작동원리인 속지주의가 위기에 빠져있다는 의미다.

넷째, 한국가톨릭교회의 전반적 이미지는 나쁘지 않지만, 젊은 세대일수록 교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더 강하다. 미래세대에게 교회는 권위적이고 보수적이며 부유하고 폐쇄적인 이미지로 비치고 있다. 다섯째, 교회에 대한 세속의 기대와 요청은 사회적 약자와 사회적 통합을 향한 종교 공공성의 강화이다. 세속화 시대에 역설적으로 종교에 대한 기대는 여전하다. 종교가 사회 안의 상식적 구성원으로 존재하기를 요청하며 종교의 공적 역할을 통해 정신적·영적 가치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대안적 가치의 원천이 되기를 사람들은 희망하고 있다.(박진규 「미디어, 종교로 상상하다」 참조)


■ 신앙생활의 총체성과 능동성

코로나 사태는 신자들의 신앙생활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돌아보게 했다. 즉 성당이라는 장소를 중심으로 작동되는 신앙생활의 모습을 다시 성찰하게 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주일미사 참례와 성당이라는 공간에서 여러 활동을 하는 것으로 좁혀서 이해해왔다. 코로나 사태는 본당이라는 공간과 장소를 중심으로 수행되어왔던 신앙생활의 한계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기존의 본당 생활을 통해 신자들은 자율적이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신앙을 성숙시키고 영성을 성장시키는 교육과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수동적이고 피동적인 신앙생활을 한 신자들은 코로나 사태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위기에 대응할 신앙의 힘을 키우지 못했다는 뜻이다. 자율적이고 능동적이지 못한 신앙은 위기의 순간에 그 한계와 위험성을 드러낸다. 코로나 사태의 경험을 통해 신자들은 자기 삶의 자리에서 신앙 성숙과 영적 성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보면 신앙생활은 네 가지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교리와 신앙 공부, 전례와 성사, 생활과 윤리, 기도와 영성 영역이다. 물론 전례와 성사 생활이 모든 신앙생활의 토대이며 정점이다. 또 이 네 영역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상호의존적이다. 하지만 전례와 성사 생활이 제한되는 상황이라면 다른 영역들의 활성화를 통해 신앙생활의 총체성을 확보할 수 있다. 성경과 교회 문헌과 영성 서적들의 읽기를 통해 공부하는 신앙생활을 누릴 수 있다. 일상 삶의 모든 영역에서 복음적 가치의 실천을 통해 삶의 미사를 봉헌할 수 있다. 혼자서, 가족들끼리, 또는 가까운 이웃들과 함께 기도와 영성 생활에 얼마든지 몰두할 수 있다. 코로나 사태는 신앙의 총체성에 대해 다시 성찰하게 했다.


■ 보편 사제직 수행으로서 신앙생활

신자들의 신앙생활은 그리스도의 삼중직 수행에 보편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는 신자들의 보편 사제직 수행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사실, 보편 사제직이 어떻게 수행되는 것인지에 대한 명쾌한 신학적 정의가 아직 형성되어 있지 않다. 일반적 정의에 따르면, 보편 사제직은 성사 전례에의 능동적 참여, 기도와 극기와 사랑의 실천을 통한 일상의 사제직 수행을 통해 이루어진다.(「교회헌장」 10항)

코로나 사태는 보편 사제직에 대한 확장된 이해와 상상을 요청한다. 가족끼리, 아니면 가까운 이웃들이 모여서, 함께 성경 말씀을 듣고 식사의 친교를 나누는 것은 넓은 의미에서 미사의 정신을 영적으로 수행하는 것일 수 있다. 일상의 예식화와 삶의 미사화에 대한 폭넓은 상상이 필요하다. 물론 전례와 성사에 대한 이러한 확장된 이해가 성직자의 역할을 축소하거나, 공동체가 함께 하는 미사의 중요성을 약화시키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보편 사제직에 대한 확장된 이해가 직무 사제직의 의미와 중요성을 더 깊고 풍요롭게 할 것이다. 세례받은 신자들이 자신의 보편 사제직을 수행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신학적 성찰과 이론화 작업이 절실히 요청된다.

세례받은 모든 신앙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삼중직에 참여한다는 것을 교리를 통해 이미 알고 있다. 교리는 언제나 삶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우리는 일상의 삶에서 타인을 위한 자기희생의 제사를 드릴 수 있다. 보편 사제직에 참여하는 모든 신자들은 세상 안에서 자신의 사제직을 수행해야 한다. 사목의 진정한 의미는 관리와 통치가 아니라 돌봄과 헌신이다. 신앙인은 이웃의 약자들을 돌보는 세상 속의 사목자(왕직 수행자)여야 한다. 혼자서 또는 여럿이 더불어 성경을 읽고 낭독하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삶의 이야기와 사연들을 경청하고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세상 속에서 예언직을 수행하는 사람이다. 우리 신앙인 모두가 자기 삶의 자리에서 사제로서 예언자로서 사목자로서 살아야 한다.

신자들의 그리스도 삼중직 참여는 다양한 방식으로 확산될 필요가 있다. 교회의 운영과 통치에도 신자들의 참여는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교회법적으로는, 교회 대부분의 영역에서 통치와 운영의 몫은 성직자들에게 주어져 있다. 교회 문화와 분위기 역시 성직주의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신자들이 의사결정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복음의 기쁨」 102항) 하지만 실제 본당의 현장에서 우리는 이미 경험하고 있다. 신자들과 더불어 시노달리타스의 정신으로 본당을 운영할 때, 본당은 더 활기있고 생동감 넘친다는 사실을 말이다.



정희완 요한 사도 신부(가톨릭문화와신학연구소 소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3-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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