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말을 한 번도 거스른 적이 없고 공부도 곧잘 했던 아들이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문을 두드려도 입을 열지 않는 아들은 몸이 아파서 학교에 가기 싫다는 이유가 전부였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어야 했던 엄마는 어린 아들을 돌보지 못했던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가슴이 찢어졌다. 일주일, 한 달, 일 년, 집 밖에 나오지 않던 아들은 어느새 30대 중반이 됐다. 말할 수 없는 상처로 세상과 단절돼 문을 걸어 잠근 자녀의 아픔은 부모의 아픔이 됐고, 나아가 우리 사회의 아픔이 됐다. 자신을 괴롭히는 심리적인 문제들과 외롭게 싸워온 아들에게 엄마는 말한다. “아들, 엄마가 너무 미안해, 그동안 너무 애썼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가정의 아픔에 교회는 어떻게 동행할 수 있을까.
■ 사회 문제로 대두된 ‘은둔형 외톨이’
‘은둔형 외톨이’는 6개월 이상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으면서 일체의 사회적인 관계를 거부하고 방이나 집에서 거의 나오지 않는 사람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일본에서는 1970년대에 이미 이러한 현상이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입시경쟁에 지친 학생들이 등교를 거부하는 양상을 보였고, 1990년대에 이르러 집 밖에 나가지 않는 청소년·청년들을 ‘집에 틀어박히다’라는 뜻의 ‘히키코모리’라 부르게 됐다. ‘히키코모리’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일본의 정신의학과 의사 사이토 다마키는 ‘사회 참여를 하지 않는 상태가 6개월 이상 지속됐지만, 정신장애를 그 원인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경우’로 정의했다. 은둔형 외톨이 현상이 개인의 정신병리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에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이 용어가 한국에 처음 소개된 것은 20여 년 전이다.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는 2002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제12차 세계정신의학회에서 한국에 은둔형 외톨이 현상이 발생했다고 보고했다. 20년 전 학계에 알려졌지만, 정부 차원의 전국적인 실태조사가 이뤄진 적은 없다. 학교나 직장에 가지 않고 방 안에서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은 은둔형 외톨이를 개인의 문제라고 여기는 원인이 됐다.
당사자가 밖으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할 수 없었던 은둔형 외톨이 문제는 범죄와 연결되면서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라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2020년 8월 열린 ‘국내외 사회적 외톨이 지원 현황과 쟁점 진단’ 세미나에서 G’L 학교밖청소년연구소 윤철경 소장은 은둔을 처음 시작하는 시기가 16~18세(39.8)로 가장 많았으며, 19~24세가 뒤를 이었다고 밝혔다. 대입, 취업 등 생애 중요한 시기에 자신에게 주어진 무게를 감당하기 버거워 멈춰 버린 것이다.
은둔하게 된 계기는 ‘우울증 등 정신적 어려움’(43.4)이 가장 많았다. ‘취업이 잘 안 돼서’(31.0), ‘인간관계 때문에’(25.3) 집에서 나오지 않게 됐다고 밝혔다. ‘학업 중단과 대입 실패’(7.2)도 원인으로 지목됐다.
1990년대에 히키코모리가 확산됐던 일본은 당시 청년이었던 이들이 사회로 나오지 못해 40·50대로 접어들었다. 70·80대 부모에 의존하는 중장년 히키코모리가 증가하고 있는 ‘8050문제’는 일본에서 청년 히키코모리와 함께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한국도 8050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G’L 학교밖청소년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은둔형 외톨이 청년들이 은둔하는 기간은 3~5년 미만이 34.8로 가장 많았으며 5년 이상도 20.2나 됐다. 20대에 은둔을 시작해 40대를 바라보는 자녀를 둔 부모들을 적지 않게 만날 수 있다는 게 한국은둔형외톨이부모협회 주상희 대표의 설명이다.
■ 사랑의 가치 전하는 것이 교회 역할
은둔형 외톨이를 연구하는 기관들은 국내 은둔형 외톨이를 30만 명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복합적인 요인들이 청소년·청년들을 은둔하게 만든다고 진단했다. 핵가족화와 더불어 나타난 자녀에 대한 과잉보호, 과잉기대가 아이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시련을 이겨내는 힘을 기를 수 없게 됐다는 분석이다. 또한 치열한 경쟁에 노출되거나 학교 폭력을 경험한 청소년들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 안으로 숨어들게 됐다는 것이다. 청년들의 경우 직장을 찾는 과정에서 잦은 실패를 경험하면서 의욕을 상실하고 주변과의 관계를 끊으면서 은둔형 외톨이가 되기도 한다.
10년 넘게 사회적 관계를 끊어버린 아들을 살리고자 한국은둔형외톨이부모협회를 만든 주상희 대표는 은둔형 외톨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행돼야 할 것이 ‘부모교육’이라고 말했다. 주 대표는 “우선 아이들이 밖으로 나와야 상담이나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 당사자와 접근이 어렵기 때문에 시작조차 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1차적으로 아이들과 접촉할 수 있는 부모들을 교육한 뒤 부모를 통해 아이들이 마음을 열면 그때 기관이나 상담사가 개입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남편과 이혼한 뒤 혼자서 아들을 키우며 고군분투했던 주상희 대표는 “아들을 정서적으로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알았다면 아들이 이렇게 오랫동안 고립된 채 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아들을 위해 열심히 살았던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들이 아들에게 상처를 남기게 될 줄 몰랐다는 주 대표. 그는 다른 부모들이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협회를 만들고 부모교육을 위해 애쓰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조금씩 사회로 나와 청소년상담 관련 공부를 하고 있는 주 대표의 아들은 “마음이 힘들었을 때 관심을 갖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어른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더 빨리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두 모자의 말을 통해 교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찾아낼 수 있다. 바로 사랑의 가치를 전하는 것이다.
은둔형 외톨이 사목을 해온 김해영 신부(베드로·살레시오회)는 “부모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자신이 부족하고 못났다는 생각에 은둔을 선택한 아이들에게 ‘하느님의 모상대로 태어난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의 영적 결핍을 채울 수 있다”라며 “이미 교회에서 하고 있는 아버지학교 등 부모교육은 가정이 해체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교회의 역할 중 하나”라고 말했다. 아울러 “끊임없는 교리공부를 통해 교회의 본질을 찾는 것이 결국 우리 사회에 팽배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