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31일 서울 지역 시민들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아침을 시작했다. 당일 아침 북한의 정찰위성이 발사되었기에 6시 41분을 기해 서울시가 경계경보를 발령한 것이다. 위급재난문자의 내용은 꽤 섬뜩했다. 서울 지역에 경계경보가 발령되었으니 대피할 준비를 하고,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하라는 메시지였다. 무슨 일이 일어났고, 어디로 어떻게 대피해야 하는지에 대한 안내가 없었지만, 아파트 단지를 울리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이른 아침 날아온 메시지는 많은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마침 뉴스를 검색하기 위해 한꺼번에 몰린 사람들 때문에 포털사이트까지 먹통이 되자, 정말 심각한 일이 벌어진 것으로 생각한 사람이 많았다. 어떤 이는 올림픽대로 한가운데를 운전하다 집으로 발길을 돌려야 하는지 고민했고, 집에서는 잠든 아이들을 깨워야 할지, 깨운다면 무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당황해야 했다. 물론 이 상황을 무감각하게 흘려보낸 사람들도 있었지만, 요란한 사이렌과 위급재난문자는 한 주가 지난 6월 6일 현충일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일 아침 울리는 사이렌은 순국선열을 위한 묵념 신호니, 다시 놀라지 말라는 공지를 낳을 정도였다.
북한에서 미리 공지한 위성 발사에 서울시가 과잉 대응한 것인지, 아니면 정상적으로 위기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한 것인지를 떠나, 5월 마지막 날의 위급재난 메시지는 단순히 평범한 아침의 일상만을 깨운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가 지금 분단되어 있다는 것, 지금도 여전히 분단이 우리 일상에 깊숙이 개입해 작동하고 있음을 일깨운 일이었다.
사실 남북의 대치는 그렇게 놀랄 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군사분계선 주변에는 수십만 명의 군인과 엄청난 화력의 무기체계들이 집중되어 있음에도 우리의 일상은 너무나 무감각하게 흘러간다. 가파르게 오르는 전기요금을 걱정하고, 단골 식당의 기본 반찬 양과 개수가 줄어든 것에 민감해 하지, 남북 갈등이나 한반도 평화 이슈는 우리의 일상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간혹 군에 자녀를 보내야 하는 시기의 부모나 아니면 파주나 고성 등 접경지역을 방문할 때가 되어야 우리나라가 아직도 전쟁 중이란 사실을 기억한다. 그러나 이런 무감각에도 분단 현실은 우리 일상에 매우 깊숙이 작동하고 있다. 회사나 공동체에서 상대가 내 편인지 아닌지를 끊임없이 따지고 싶어하는 편가르기 문화는 대표적인 분단 문화이다.
우리는 70년 넘게 내 주변 사람이 친구인지 적인지 의심하도록 교육받았고, 의심은 경계를, 경계는 편가르기를 낳았다. 그리고 편가르기는 어느 한 편에 반드시 속해야 한다는 경직된 이분법을 불러왔다. 다양한 선택과 다양한 취향을 존중해주지 못하고 의견도 통일, 입장도 통일, 심지어 메뉴도 통일해야 마음이 편하다. 다양한 생각과 입장은 공동체를 복잡하고 어지럽게 만드는 일이라며 오히려 다양성을 불편하게 느껴왔다. 하지만 편가르기와 이분법 논리로 대표되는 경직된 사회는 우리 마음에 여유를 앗아가고 포용과 환대를 가로막는다.
사이렌이 좀 더 울려야 한다. 공습경보 사이렌 말고, 분단의 문화가 우리 마음을 병들게 하고 있음을 알리는 사이렌 말이다. 일상에 숨어 있는 분단의 문화를 찾아내고, 적극적으로 분단을 극복할 방법을 찾아야 평화를 이룰 수 있다. 왜 우리 사회가 경직되어 있는지, 왜 우리는 이웃을 받아들이고 상대의 생각을 존중하기 어려워하는지 무감각한 감각을 깨워야 한다.
올해는 6·25 전쟁이 휴전을 택한 지 70년이 되는 해다. 일상에 숨어 작동하는 분단의 마음을 일깨우지 못한다면 한반도 평화는 구호에 그치고 만다. 갈등이 불편한 사람만이 갈등을 끝내려 하고, 분단의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깨달아야 평화를 만들기 위한 여정을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정수용 신부(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