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칙 「생명의 복음」(1995)은 현대 문화를 죽음의 문화로 규정하고 이에 맞서 생명의 문화를 회복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의무를 강조하고 있다. 이 회칙은 현대 사회에서 “인간생명에 대한 전례 없는 다양하고 새로운 위협들과 죽음의 문화가 확산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이에 맞서 “생명의 가치와 존엄성에 대한 복음, 유한한 시간 속에서 그 생명이 갖는 위대함과 고귀함에 대한 복음”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회칙이 우리가 직면하는 죽음의 문화 현상을 다각도로 지적하고 있지만, 사실 생명의 위기 현상은 무척 다면적이다.
회칙이 지적하듯이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가능해진 새로운 전망과 더불어 인간 존엄성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위협들”(「생명의 복음」 4항)이 확산하고 있다. 또한, 우리 인간에게 유례없는 경제적 풍요를 가져다주고, 그를 통해 정치적 자유를 누리게 만들어 준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적 정치경제 체제는 오히려 인간다운 삶을 파괴하고 있다.
회칙이 발표된 지 거의 30년이 지났음에도 죽음의 문화로 지칭한 현상은 감소하기는커녕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하느님이 주신 생명의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기나 한 것일까? 오히려 현대 사회가 가져다준 물질적 성공과 풍요에 현혹되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과제를 내팽개친 채 살고 있지는 않은가.
생명을 언어화한 그리스철학에서는 이 말을 유기체적 생명(zoe)과 함께 삶의 맥락에 따른 생명(bios)으로 구별하였다. 물론 이 말은 시대에 따라 달리 사용되기도 하지만 생명을 삶과 연결지어 받아들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기에 생명을 생명이게 하는 영혼을 숨과 연결해 이해할 수 있었다. 하느님의 성령은 하느님의 숨결이며, 생명의 바람을 의미한다. 영혼은 생명의 숨결(pneuma)이며, 생명을 생명이게 하는 원리이자 실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영혼이 없는 생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혼은 생명을 생명이게 하는 힘이며 그 본질적 원리이자 목적이며 그 의미이기도 하다.
생명 그 자체인 인간은 유기체적 생명과 삶의 실체를 간직하고 있으면서, 나아가 자신의 영혼을 영혼이게 해야 하는 의무를 지닌 존재다. 생명은 이 모든 차원을 통합할 때만이 생명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럴 때만이 인간은 지상의 모든 생명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뭇 생명의 존재 이유를 지켜내야 하는 의무, 하느님이 주신 생명의 과제를 수행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인간이 지금 뭇 생명의 터전을 파괴하고 있으며, 생명 자체를 파멸로 몰아세우고 있다. 이 파멸의 경고는 다만 생태계 위기나 생명에 대한 멸종의 경고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 사회만 돌아보아도 생명에 관한 각종 지표는 OECD 국가에서도 최하위권을 달리고 있다. 100조가 넘는 돈을 쏟아 부어도 변하지 않는 저출산율, 최고 지표를 기록하는 청년 자살률은 수년 채 변하지 않고 있으며, 노인 빈곤율과 삶의 지표, 행복 지수는 바닥권에서 벗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사회적 불평등은 생명 존엄성을 위협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그럼에도 영성에 대한 이해는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다.
지금이라도 돌아서야 한다. 요한 23세 교종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평화를 원한다면 너의 삶을 바꾸어라!” 생명에 대한 경고가 흘러넘치고 삶이 죽음의 문화로 치닫고 있다면 이 경로를 바꾸어야 한다. 생명의 영혼이 죽어가고 영혼의 소리에 응답하고 있지 않다면 생명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 우리 존재를, 뭇 생명의 삶을 살리려면 생명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신승환 (스테파노,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