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는 오는 10월 4~29일 열리는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첫 회기를 위한 의안집(Instrumentum Laboris)을 6월 20일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의안집은 2021년 10월부터 진행돼온 교구 단계·대륙별 단계 시노드에서 논의한 내용을 60여 쪽 분량으로 정리한 문서다. 세계주교시노드 정기총회 참가하는 대의원들은 의안집 내용을 토대로 교회의 쇄신과 다양한 현안 등을 논의하게 된다. 의안집의 성격과 내용을 살펴봤다.
정기총회 논의 방향 안내하는 ‘가이드 북’
세계주교시노드가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 교황청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사무총장 마리오 그레크 추기경)가 6월 20일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의안집을 공개하면서다. 의안집은 새로운 내용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지금까지 진행된 교구별·대륙별 시노드에서 나눈 내용을 바탕으로 제작해 오는 10월 열릴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참가자들의 논의 방향을 안내하는 ‘가이드 북’에 가깝다.
교황청은 특히 의안집이 최종 문서의 초안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의안집은 이전에 작성된 모든 문서를 무효화하는 것이 아니며, 그 안에 뿌리를 두고 작성됐다는 것이다. 교황청은 의안집 머리말에서 “2021년 10월 10일 시작된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로 성장하기 위한 여정을 거치며 전 세계 교구의 경험을 모아들였고, 그 과정에서 이어지는 여정의 출발점이 의안집”이라며 “결코 종착점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궁극적으로 의안집은 정기총회 참가자들이 총회 동안 전체적으로 어떤 관점으로 논의할 사안을 바라보고 어떻게 실천 방안을 찾아갈지 식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문서로 역할을 하게 된다. 동시에 정기총회 참가 대의원들이 성령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느끼는 구체적인 단계를 식별할 수 있도록 준비한 문서가 의안집이다. 교황청은 이에 대해 “시노드 여정의 목표는 어떤 문서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희망의 지평을 여는 것”이라며 “교회 구성원들이 의안집을 통해 종종 적대적인 방식으로 제기되는 문제나 오늘날 교회의 삶에서 환대와 식별의 자리가 부족한 문제를 시노드 과정 안에서 복음적인 방식으로 다룰 수 있도록 구성되고 제작됐다”고 말했다.
교황청은 의안집에 시노드 여정을 통해 모든 교회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교황청 세계주교시노드 사무총장 마리오 그레크 추기경은 6월 20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의안집은 교회 구성원 전체가 참여해 만든 문서”라면서 “이 문서는 모두가 공동 저자이며 각자가 성령으로부터 부르심 받은 역할에 따라 제작된 것”이라고 했다.
그레크 추기경은 또 “의안집은 시노달리타스에 대한 이론적이고 체계적인 설명이 담긴 문서는 아니다”라며 “우리는 의안집 안에서 그동안 교회 전체가 참여해 논의한 것에 대해 우리 모두가 함께 걸으며 논의한 경험의 의미를 스스로 질문함으로써 더 많은 것을 배우는 여정의 열매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발맞춰 지역 교회에 대한 배려와 일치를 강조한 점도 의안집의 특징이다. 교황청은 “지역 교회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는 문화와 언어, 표현 방식의 다양성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예를 들어 권위와 리더십이라는 단어 역시 언어와 문화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닐 수 있는 만큼 더 나은 이해를 증진하고 분열적 언어를 피하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두 개의 섹션과 15개 워크시트로 구성
공개된 의안집은 두 개의 섹션으로 이뤄진 본문과 15개의 워크시트로 꾸려졌다. 우선 본문은 지난 2년간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가 되기 위한 여정을 정리한 ‘섹션A’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가 되기 위한 세 가지 우선순위를 제시하는 ‘섹션B’로 구성돼 있다.
섹션A는 성령 안에서의 대화를 통해 시노달리타스를 실현해 가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의안집에 따르면, 시노드적인 방법은 결국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대화’이다. 이 안에는 성령이 교회에 전하는 말씀에 더 귀를 기울이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질문과 장애물을 식별해 예언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희망이 담겨있다.
이어지는 섹션B에서는 시노드의 주제인 ‘친교, 참여, 사명’에 따른 구체적인 우선순위를 제시한다. 의안집에서는 이를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환대와 친교 속 성장 △사명의 관점에서 세례받은 모든 이의 기여를 인정하고 소중히 여기기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선교하는 교회에서 통치 구조·역학 관계 파악하기 등으로 구체화한다.
교황청은 “친교는 같은 정체성을 지닌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함께 모이는 사회학적 모임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느님의 선물을 의미한다”면서 “아울러 선교와 사명은 교회의 모든 활동을 주교와 사제 등 서품받은 성직자들에게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세례받은 모든 이의 기여를 요구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워크시트에서는 앞서 제시한 세 가지 우선순위와 관련해 각각 5개씩 질문을 제시해 모두 15개 주제를 다룬다. 예를 들어 친교와 관련된 주제에서는 자선과 봉사·정의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이어 사랑을 실천하는 법, 지역 교회 간 역동적인 교류 방안, 교회 일치의 여정, 종교 간 대화와 관련된 질문 등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을 통해 이번 정기 총회에서는 전쟁과 기후위기, 소수민족, 여성과 평신도 등 다양한 현안에 대해서도 논의할 전망이다.
변화의 원동력 ‘경청하는 교회’에서 찾아
교황청은 “대륙별 단계 등을 거치며 각 지역 교회가 세계 곳곳에서 경험하는 독특한 상황을 파악하고 공유할 수 있었다”면서 “이 안에는 세상을 피로 물들이는 숱한 전쟁과 기후위기, 착취와 불평등 그리고 ‘버리는 문화’를 조장하는 경제 체제, 소수자를 압박하는 문화 식민주의, 이주 문제 등이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의안집 안에는 제도와 구조, 절차에서도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가 되고자 하는 열망도 담겨있다. 의안집은 이 같은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을 ‘경청하는 교회’에서 찾는다. 교황청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는 무엇보다도 경청하는 교회”라며 “오늘날 교회의 얼굴에는 불신이라는 심각한 위기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교회는 성령을 토대로 화해와 치유, 정의의 길을 열어주는 참회와 회심의 여정에서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쇄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