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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음주 폐해의 역설(김용석 프란치스코,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중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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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설(定說)의 사전적 정의는 여러 학설이나 주장 가운데 지배적인 것으로 인정되고 있는 설이며, 역설(逆說)은 정설과 대립하는 주장이다. 술을 많이 마시면 음주로 인한 폐해를 더 많이 경험한다는 주장이 정설이고 대다수 사람이 경험적으로 그렇게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음주 폐해의 역설(alcohol harm paradox)은 정설과는 달리 음주 수준은 비슷하거나 낮은데 오히려 음주 폐해의 수준이 더 높다는 주장이며, 이런 현상이 주로 저소득층에서 나타난다. 음주 폐해의 역설은 여러 연구에서 검증되었다. 이에 관한 연구는 주로 유럽에서 수행되었는데, 성인 1700명을 대상으로 수집된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에서 사회경제적 수준이 낮은 사람들이 그 수준이 높은 사람들보다 술을 적게 마시나 음주로 인한 폐해를 더 많이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에서 수행된 연구에서도 사회경제적 박탈 수준이 가장 높은 지역과 박탈 수준이 가장 낮은 지역을 비교했는데, 음주 수준은 두 지역이 비슷하거나 박탈 수준이 높은 지역에서 더 낮았으나 음주 관련 사망률은 박탈 수준이 높은 지역에서 더 높았다. 음주 폐해의 역설은 국내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에서도 확인됐다. 한국복지패널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에서 저소득층은 고소득층과 비교할 때 술을 더 많이 마시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음주로 인해 폐해를 더 심하게 경험한 것으로 분석됐다.

음주 폐해의 역설이 의미하는 바를 달리 표현하면, 음주 폐해에 있어서 계층 간 격차가 있다는 의미이고 이는 곧 음주 폐해의 불평등이다. 우리 사회에는 소득 불평등, 건강 불평등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불평등이 존재하는데 음주 폐해의 불평등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저소득층이 음주 폐해를 더 많이 경험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다양한 요인이 관련되어 있다. 첫째, 의료서비스에 대한 낮은 접근성이다. 저소득층은 치료비 부담 때문에 또는 연장근무, 휴일 근무 등 열악한 근무 여건으로 인해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때 이용하지 못해 음주로 인한 폐해를 더 많이 경험할 수 있다.

둘째, 저소득층은 건강위험 행동에 더 많이 관여하는 편이다. 흡연은 대표적인 건강위험 행동인데 흡연율은 고소득층보다 저소득층에서 높다. 음주와 흡연을 모두 하는 개인은 음주 또는 흡연만 하는 개인보다 건강상의 문제를 더 많이 경험할 것이다. 또한, 저소득층은 건강한 식습관을 실천하는 비율이 낮고 다양한 영양소를 충분히 섭취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식습관은 사망과 밀접하게 관련 있는 위험 요인 중 하나이다. 정리하면 저소득층이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을 더 많이 가지고 있어 상대적으로 술을 더 적게 마셔도 음주 폐해를 더 많이 경험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다양한 영역에서 불평등 해소를 위해 노력하고 있듯이 음주 폐해의 불평등 해소에도 관심을 기울이길 바란다. 상대적으로 사회경제적 수준이 낮은 지역에 소재한 병원, 복지관, 자활센터의 종사자들은 저소득층 주민의 음주 문제와 함께 건강위험 요소를 반드시 확인하여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들 주민을 적절한 보건복지 자원과 연결해주도록 해야 한다. 더불어 정부는 지역주민의 음주 문제를 포함한 중독문제의 예방과 해결을 위한 인프라를 사회경제적 취약 지역에 우선적으로 확충하여 저소득층을 포함한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이 겪고 있는 불평등을 해소하길 바란다.



김용석(프란치스코)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학과·중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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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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