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부터 제가 상담이나 강의할 때마다 강조하는 말이 있습니다. ‘가볍고, 뻔뻔하게’. 이미 여러분들 사이에 퍼져서 어떤 분은 저를 만날 때, ‘가볍고, 뻔뻔하게’를 줄여서 “가·뻔!”이라고 인사하는 분도 계십니다.
사실 ‘가볍고, 뻔뻔하게’라는 말은 지역주민 대상 상담을 진행하는 가운데, 마음속에 떠오른 단어입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의 공통점을 찾았습니다. 그 공통점이 바로 가볍고, 뻔뻔하다는 것입니다.
가볍다는 말은 무겁지 않다는 말입니다. 반드시 꼭 이렇게 돼야만 한다는 도식에 갇혀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습니다. 또 예상한 결론이 나오지 않더라도 제2, 제3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것도 가능하지만, 저것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깃털처럼 가벼우면, 긍정적인 변화의 바람을 타고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무언가가 다 완벽하게 성취되어야만 다른 걸 시도할 수 있다는 마음은 새로운 것을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어떤 문제 상황에 놓였을 때, 자칫 무겁고 심각해지기 쉽습니다. 경험해보셨겠지만, 무겁고 심각하면 되는 일이 없습니다. 한숨만 나오고 계속 어둡고 둔탁해질 뿐, 현실적으로 문제 상황에 대처하기가 힘듭니다. 무겁고 심각하면 특정한 생각에만 몰입하게 되고 홀로 감당하려 하면서 오히려 해결 가능성이 차단됩니다.
그러나 가벼우면 다양한 관점을 고려하면서 적극적으로 주위의 도움을 구하면서 현실적인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뻔뻔하다는 말은 염치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탄력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탄력성이 없으면 타인이 하는 말 한마디에도 상처받고, 자신의 것이 아님에도 타인의 문제를 가져와 굳이 자신의 문제로 만듭니다.
예를 들어, 마음속에 탁구공이 있으면, 누군가 자신에 관해 조금만 부정적으로 이야기해도, 마음속 탁구공이 단번에 깨지면서 심리적으로 위태로워집니다.
반대로 마음속에 고무공이 있으면, 누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그것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라면 수용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야기면 액면 그대로 받지 않고 튕겨낼 수가 있습니다. “그건 그 사람 문제야”, “저 사람 말투가 원래 그래”, “저 사람이 요즘 뭔가 안 좋은 일이 있나 봐”라며 탄력적으로 대처할 수 있습니다.
뻔뻔하다는 의미는 현실을 도외시한 정신 승리가 아니라 자신을 타인의 눈으로 검열하고 비판하면서 자존감을 잃지 않겠다는 현실적인 태도입니다. 어떻게 보면, 최근 심리학의 화두(話頭)인 자기 자비(Self-compassion),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게 따뜻해지는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건강이란, 단순히 질병이나 병약함이 없음뿐만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영적, 사회적으로 완전히 안녕한 역동적 상태’라고 정의합니다. 사실 각 사람이 처한 상황과 사회구조적인 면을 간과하고 있어, 일부 비판받는 정의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WHO의 건강개념은 질병 유무를 떠나 상호 돌봄의 관계 속에서 사회적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느냐를 강조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가볍고, 뻔뻔하게’가 가능할 때, 이러한 통합적 건강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황순찬 베드로 교수
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