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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32) 어지러운 재난의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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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뉴스에서 접하는 소식들은 그 소식을 듣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격적입니다. 가뜩이나 정치인들의 기만과 위선, 무능과 패착(敗着)을 매일 접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충격적 사건들까지 더해지니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은 더 타들어 갑니다.

최근에 있었던 일들 가운데 일부만 떠올려보더라도, 이태원 참사, 현장 노동자들의 죽음(자살 포함),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자살, 잇따른 신생아의 죽음, 오송 지하차도 참사, 초등교사의 자살, 그리고 최근 반복되는 묻지마 살인 등 안타까운 일들이 많습니다.

재난의 충격으로 생긴 트라우마는 감정을 기억하는 뇌 부위인 편도체와 정보를 기억하는 뇌 부위인 해마에 문제를 일으켜, 피해자가 사건이 일어난 고통스러운 시공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손상 이전의 건강하고 풍부한 감정 상태로 돌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더욱이 재난의 성격이 복합적일수록 트라우마는 피해자가 자신에게 발생한 일을 이해하고 회복하는 데 더 어려움을 겪게 만듭니다.
예를 들면, 표면상 자연재해로 보이지만 실상은 인재(人災)인 경우나 사회적 범죄(신체적, 성적 학대 및 폭력)가 분명한데 가해자가 가족인 경우는 피해자가 더 큰 정서적 고통을 겪을 수 있습니다.

예기치 않은 재난 앞에서 국가의 역할은 정말 중요합니다. 당위적이지만, 그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선 재난 발생에 대해서는 그 책임성을 분명히 하고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밝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밝혀진 것을 있는 그대로 피해자나 유가족에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사회시스템을 재정비하고 체계화하는 일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이것이 피해자와 가족들이 회복되는 길입니다.

아울러 국가가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보이는 전폭적 지원과 수용적 태도는 이를 지켜보는 일반 시민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합니다.

자살, 살인사건과 관련해서는 행위자 개인의 문제로 국한해서 개인의 정신병리나 범죄 성향으로 치부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만 일단락을 지어서는 안 됩니다. 자살은 자살대로, 살인은 살인대로 개별 사건들을 깊이 분석해서, 별개인 것처럼 보이는 사건들 사이의 공통점을 찾고 어떤 사회 구조적 맥락에서 그런 사건이 일어났는지 그 본질적 의미를 파악해야 합니다.

자살과 살인의 사회적 맥락을 연구한 제임스 길리건(James Gilligan)도 자살과 살인 문제에 대처하는 국가의 자세는 개인의 치료와 처벌에 대한 집중이 아니라 자살, 살인 같은 ‘치명적 폭력’(lethal violence)에 연결된 그 사회의 불평등, 수치심, 절망감을 조장하는 정치·경제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제 자살 사망자와 살인자 대다수는 어린 시절부터 가정불화, 돌봄 부재, 폭력과 학대, 성폭력 피해, 학교 부적응, 장기 실직, 사회적 고립, 비현실감, 심각한 재정적 압박 등과 같은 가정과 사회환경적 문제 등이 발단이 된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대 중국의 철학자 순자(筍子)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어진 농부는 가뭄이 들었다 하여, 농사를 그만두지 않는다.”(良農 不爲水旱不耕(양농 불위수한불경)).” 이 어지러운 재난의 시기, 어진 농부의 모습이 그립습니다.


황순찬 베드로 교수
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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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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