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의 경쟁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의 상처와 고민들을 안고 살아간다. 하느님은 당신의 피조물들을 오묘한 섭리로 아름답게 지어내셨다. 상처 입은 사람들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피조물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몸과 마음의 치유를 체험한다. 자연에는 하느님의 사랑과 위안의 힘이 있다. ‘공동의 집’을 넘어 ‘치유의 집’으로서의 지구 환경을 체험한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국제청소년지원단의 여정을 소개한다.
원초의 거룩함
다르항에서 60㎞, 셀렝게주 새항솜 일대로 지원단은 향했다. 센터에서 자동차로 1시간가량 벗어나자 사방이 풀밭과 유채밭, 염소와 양 등 무리 지은 동물뿐이었다.
인간의 손길이 거의 미치지 않아 어디부턴가 도로도 깔려 있지 않았다. 운전을 맡은 이호열 신부가 군데군데 패이고 우툴두툴한 초원 한복판을 달릴 때마다 지원단은 낯설고 격렬한 흔들림에 폭소했다.
이 신부가 한 언덕에서 차를 멈춰 세웠다. “이곳에서 몽골의 전통 예식을 해볼까 해요.”
정월 초하루 새벽 산에 올라가 태양을 바라보며 자연으로부터 복을 받는 전통 예식이었다. 언덕 한가운데 단원들은 일렬로 서서 시계 방향으로 양팔을 돌리며 ‘호레, 호레’ 구호와 함께 천혜의 땅으로부터 축복을 기원했다.
무엇을 위한 예식이었을까. 지원단은 다음 정차지에서 그 답을 얻었다.
문득 차를 멈추고 “모두 눈을 감으라”는 이 신부. 의아해하는 지원단에게 이 신부가 미소를 띠고 말했다. “생명을 품는 자궁인 지구, 태초에 인간과 자연을 빚으신 하느님 창조의 신비를 느낄 시간입니다.”
이 신부를 제외한 모두가 눈을 감고 침묵 속에 1분을 이동했다. “이제 눈을 뜨세요. 제가 23년간 몽골에 있게 하는 이유와 같은 곳, 하브찰(낭떠러지)입니다.”
‘어워’(몽골의 서낭당)가 놓인 풀밭 고원, 그 아래로는 아득한 절벽과 낭떠러지가 펼쳐졌다. 절벽 멀찍이 묶지 않은 가축들이 뛰어다니고, 사이사이 소나기가 만든 물웅덩이가 있고 실개울이 흘렀다. 지원단이 차를 타고 오는 길에 봤던 드넓은 유채밭과 밀밭도 한눈에 담겼다. 태초에 하느님이 지구를 창조하셨던 천연 그대로였다.
“하브찰에 몽골 사람들이 어워를 조성한 것도 원초의 거룩함을 알아서일 것 같아요.”
단원들도 창조 본연으로 잠시 돌아가며 치유를 느꼈다. “평소 생각이 많고 시끄러웠던 것 같다”는 이두나(마리아 로메로·15·서울 구로3동본당) 단원은 “태초에 하느님이 빚으신 원래의 나를 침묵 중에 묵상하자 자신의 내면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있는 그대로의 너희를 사랑해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호수인 바이칼 호수의 상류. 그 신성한 깨끗함에 ‘어머니의 바다’로 불리는 홉스골 호수로 지원단은 향했다. 버스로 12시간이 넘는 700㎞, 4개 주를 통과하는 대장정이었다.
여정 중 선잠만 잇던 단원들의 여독을 싹 잊게 하는 장관이 펼쳐졌다. 기슭에 서서 내려다보면 바닥까지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물, 햇볕과 물결 닿는 곳곳 어느 틈에 피어나고 저무는 데이지 등 야생화, 얕은 물가에 들어가 무리 지어 물을 마시는 얼룩덜룩한 소들. ‘어머니의 바다’라는 말처럼 홉스골 호수는 생명들을 있는 그대로 품고 있었다.
“실은 몽골이 그냥 시골 같아 실감 나지 않았다”던 단원들은 “여기 오려고 하느님이 몽골에 보내셨나 보다”며 환호했다.
“‘하느님이 날 무지 사랑하고 계셨구나’ 하는 기분이에요.”
박경석 수사의 인도로 다음 날 아침 단원들은 호숫가 숲을 거닐며 묵주기도를 바쳤다. 이날 바친 환희의 신비 다섯 단은 있는 그대로 하느님께 사랑받는 인간의 환희를 느끼게 했다. 천혜의 호수가 베푸는 물로 자라난 수풀처럼 단원들도 호수의 사랑을 받아 환한 미소로 성호를 그었다.
호수는 지원단에게 “하느님은 세상과 달리 뭘 더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랑을 전해줬다. 최지원(마리아·20·서울 주교좌명동본당) 단원은 “직업, 경제적 자립 등 사회에서 요구하는 많은 것이 부담으로 다가왔었다”면서 “생명들에게 조건 없이 베푸는 호수처럼, 내가 뭘 더 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품어주시는 하느님 사랑이 기쁘다”고 말했다.
“예, 제가 여기 있습니다!”
이 신부가 지원단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자 단원들은 응답하며 풀밭 위에 마련된 미사 자리에 앉았다. 서쪽 호숫가 장하이에서 이 신부가 주례한 야외 미사였다. 자연과의 대화를 통해 단원들 내면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자리였다.
“우리는 상처받은 존재입니다. 사회, 문화, 함께 사는 식구로부터도 상처를 받죠. 자연보다 인간의 교육만을 내세우는 현실에 상처받은 여러분이 이 미사를 통해 치유받길 바랍니다.”
미사 중 단원들은 자연 속에 계신 하느님과 대화하며 그분께 삶의 무게를 바쳤다. 필리핀에서 유학하는 노동욱(라파엘·17·서울 구로3동본당) 단원은 “기숙사에만 있어야 하는 제약된 생활에 몸도 마음도 지쳤었다”고 고백했다. “만성적 단절감에 우울했고 무기력했다”는 그는 “호수 습지에서 유유자적 풀을 뜯는 저 말들처럼, 하느님께서 내게 자연을 통해 되찾아주신 자유로움에 많이 웃게 됐다”며 미소 지었다.
민족의 아픔도 치유를 청하며
치유의 집으로서 지구환경을 체험하는 여정은 개인 치유를 넘어 국경과 국경, 사람과 사람 사이를 치유하는 마지막 목적지로 향했다.
몽골 북단 셀렝게주에서도 최북단인 ‘새흐니흐틀’(아름다운 산마루)이었다. 산마루 바위 전망대 아래로 울창한 숲이 우거진 러시아와 몽골의 접경지대가 펼쳐졌다. 아무런 장벽 없이 양국을 지나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 철길이 일대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이곳을 길목으로 러시아와 유럽에서 많은 사람이 다양한 교통수단으로 몽골에 드나들어요. 내륙국이라 러시아만 건너면 유럽과 이어지니까요.”
철길을 보며 이 신부가 입을 뗐지만 어두운 표정이었다. 반도에 사는 우리도 몽골을 비행기가 아닌 자동차, 자전거로 찾을 수 있으나 분단으로 가로막힌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 신부는 “창조 질서이신 하느님께 단원들 각자 아픔을 위로받음과 함께, 단절과 고립으로 이어진 분단이라는 공동의 병리도 묵상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김신현(시몬·15·서울 구로3동본당) 단원은 “서로 미워하는 세상 사람들이 자연 속 하느님을 만나 마음의 평화를 되찾고 싸움을 멈췄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국제청소년지원단 봉사 활동은 한국 청소년들이 몽골, 필리핀, 동티모르 등 낙후 지역 청소년들에게 인도적 도움을 주고 문화 교류도 할 수 있는 봉사 활동이다. 봉사에 참여한 한국 청소년들에게는 전인격적 성장을 돕는 특별한 체험이 된다. 내년 봉사는 라오스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몽골 박주헌 기자 ogoy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