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레도는 스페인 가톨릭의 본산이다. 유서 깊은 가톨릭 건축물과 예수의 성녀 데레사, 십자가의 성 요한의 영성을 만나려는 순례자들의 발걸음으로 북적이는 곳이다.
수많은 순례자가 톨레도를 찾는 또 하나의 이유는 종교화가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의 걸작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 시작 전 청년들과 함께 엘 그레코의 작품을 볼 수 있는 톨레도의 성당들을 찾았다.
그림으로 되새기는 예수의 수난과 희생
중세 문화를 그대로 간직한 톨레도는 가는 곳마다 조용한 골목길이 이어진다. 좁은 골목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이 정겹고, 곳곳의 작은 성당을 찾아 들어가 보는 즐거움도 있다. 1561년 펠리페 2세가 마드리드로 천도하기 전까지 톨레도는 로마시대부터 1000년 동안 스페인의 수도로 번영했고, 스페인교회 안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톨레도대성당은 현재도 스페인의 수석주교좌성당이다. 266년간 지은 만큼 웅장한 규모를 자랑할 뿐 아니라 수많은 보석과 조각품으로 장식돼 화려하고도 위엄이 있다. 천장에 구멍을 낸 자리에 만든 조각상을, 채광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비추어 아름다움이 극대화되는 ‘엘 트란스파렌테’, ‘백색의 성모상’, 3m에 달하는 ‘성체 현시대’ 등 볼거리가 풍성하다. 무엇보다 톨레도대성당에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이유는 성당 성물실에 자리한 엘 그레코의 작품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을 보기 위해서다.
성물실에 들어가자마자 정면에 바로 보이는 이 작품은 엘 그레코가 활동을 꽃피운 톨레도에서 그린 첫 작품이다. 조금은 산만하게 보이는 그림 속 인물들은 수많은 군중 사이에서 예수가 수난받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예수는 옷 벗김을 당하는 모욕적인 순간에도 침착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하지만 눈물 고인 예수의 눈은 두려움 속에서도 하느님께 순명하는 태도와 그가 받은 고통을 묵상하게 한다. 예수가 걸치고 있는 빨간 튜닉(tunic)은 인간을 위해 흘린 그리스도의 피, 곧 예수의 희생과 사랑을 상징한다.
이 작품은 엘 그레코가 본래 제의실 장식으로 의뢰받은 그림이다. 제의실은 나의 옷을 벗고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곳이다. 그림은 기자에게도 ‘그리스도처럼 희생과 사랑의 옷을 입고 있는지’를 묻는 듯했다.
성물실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는 사방을 장식하고 있는 엘 그레코의 사도화다. 많은 순례자가 예수를 배반하고 눈물을 흘리는 베드로의 초상 앞에서 특히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매너리즘 양식으로 영감 표현
그리스 크레타섬 출신인 엘 그레코의 실제 이름은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Domenikos Theotokopoulos).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넘어가 티치아노와 틴토레토 등 거장들에게 회화를 배웠다. ‘엘 그레코’란 ‘당신은 그리스 사람’이라는 뜻의 별명이다. 이방인으로 베네치아에서 고전한 그는 스페인 궁중화가로 입성하려다 실패하고, 1577년 톨레도에 와서 여생을 보냈다.
그의 작품은 톨레도에 와서야 빛을 발했다. 엘 그레코가 활동하던 시기는 후기 르네상스 시대였다. 하지만 그는 조화와 현실성을 중시한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과 달리 부조화와 상상력을 내세운 매너리즘 양식을 추구하며 인체를 길고 홀쭉하게 그렸다.
엘 그레코는 제단화와 초상화 등 다양한 종교미술을 통해 인간의 내면과 영성을 특유의 방식으로 표현했다. 그는 꾸준히 복음서 내용에 기초해서 종교화를 그렸고, 자신의 작품에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담아낸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별히 예수의 성녀 데레사와 십자가 성 요한의 글에서 종교적 영감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의로운 삶을 다짐하게 하는 작품
톨레도대성당을 나와 좁고 복잡한 골목을 10분 남짓 걷다보면 산토 토메 성당이 나타난다. 성 토마스에게 봉헌된 성당으로, 톨레도대성당과 달리 크기도 작고 모든 장식이 소박하다. 이곳에 미칼란젤로의 ‘천지창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에 이어 세계 3대 성화라 불리는 엘 그레코의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이 있다.
이 한 작품을 보기 위해 성당은 장사진을 이뤘다. 기다림 끝에 만난 그림은 세로 5m에 육박하는 크기로 보는 이를 압도했다. 작품의 주인공은 오르가스 지역의 백작이었던 곤잘로 루이스. 그는 늘 가난한 이들과 곡식을 나누며 자비로운 활동을 했고, 산토 토메 성당을 비롯해 교회 곳곳을 후원하며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재산을 썼다.
작품은 백작의 매장 장면과 그의 의로운 영혼이 하느님 나라로 받아들여지는 모습을 담았다. 스테파노와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그의 장례 때 시신을 입관했고 “하느님을 잘 섬기는 사람은 이처럼 포상을 받느니라”라는 말이 울려 퍼졌다는 전설을 묘사한 그림이다.
작품은 구름을 경계로 천상과 지상으로 나뉘어 있고, 공중의 천사가 아기처럼 보이는 백작의 의로운 영혼을 품고 하늘로 오르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을 아기의 모습으로 비유하고, 죽은 이의 영혼이 하느님 품에서 다시 태어나는 듯 그린 것이 인상적이다. 실제로 작품 아래에 오르가스 백작의 무덤이 있어 그림과 무덤이 이어지는 듯한 신비한 효과도 느낄 수 있다.
그가 활동한 당시 16세기 스페인에는 종교개혁에 반발하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오직 믿음’, ‘오직 은총’, ‘오직 성경’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 프로테스탄트에 대항해 선행을 강조한 가톨릭 교리를 수호하려던 당대 신앙인들의 뜻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오래전부터 성화는 신자들의 신앙심을 고취하게 하는 수단이었다. 엘 그레코의 작품도 그렇다. 인간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그리스도의 수난을 생각하며 그를 따라 걷는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게 했다. 또 어떤 삶을 살아야 우리 그리스도인이 순수한 영혼으로 하느님 나라에 오를지 그 답을 던져준다. 그의 작품을 찾아 톨레도로 향하는 많은 이의 발걸음은 이처럼 더 나은 신앙인으로 살기 위한 성찰거리를 안고 삶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스페인 톨레도 염지유 기자 gu@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