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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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와 올바른 관계 맺어야 구원의 길로 갈 수 있죠”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르포 / ‘도전돌밭공동체’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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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돌밭공동체가 재배하는 유기농 농작물이 공동체의 손길로 인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공동체는 현재 10가지가 넘는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농약을 안 쓰니까 작년에 두더지가 땅콩을 60 이상 먹어치웠어요. 땅콩도 큰 것만 먹고 작은 것은 남겨뒀어요. 그래서 이걸(두더지 쫓는 기계) 설치하려고 해요. 땅속에 집어넣으면 소리와 진동이 울려서 두더지를 쫓는대요. 덫을 놓아도 되는데, 그러면 두더지가 죽게 되잖아요. 그걸 원치 않아서 이 기계를 설치하려고 해요.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어요.”(도전돌밭공동체 이사장 서명원 신부, 본명 Bernard Senecal, 예수회 한국관구)
 

 

공동체가 재배하는 해바라기. 오른쪽으로 빗물 저장 탱크가 보인다.


자연과 하나 되다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새향길 27-8. 작은 다리를 건너 나무가 우거진 길을 통과해 좁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산 아래 알록달록한 집이 모습을 드러낸다. 하느님 안에서 자연을 벗 삼아 동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도전돌밭공동체’다.

공동체가 사는 집에서 내려다보이는 밭에는 공동체의 1년 양식이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 빛을 양분 삼아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공동체가 직접 재배하는 농작물이다. 어느 하나 공동체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그렇게 공동체가 봄부터 땅을 일구고 심은 씨앗은 어느새 푸른 잎이 돋아나 열매를 맺을 준비를 하고 있다.

집 옆으로 난 오솔길에는 닭들이 뛰놀고, 오솔길 끝 작은 연못에는 꽃과 나무가 어우러져 있다. 연못으로 다가가자 인기척을 느낀 개구리들이 연못으로 뛰어든다. 연못가에 앉아 물소리와 새소리를 듣고 있으니 마음이 고요해지고 편해졌다. 연못가에 한참을 앉아 있는데 공동체 한 식구가 서명원 신부에게로 안내했다. 건물로 들어서자 서 신부가 2층 창문을 통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서명원 신부가 해바라기를 살펴보고 있다.


길의 끝이자 시작

마을 이름인 도전리(道全里)의 앞 두 글자를 따고 돌밭을 일구어 밭을 만들었다는 뜻에서 지은 이름인 도전돌밭공동체. “전에는 이곳이 막다른 골목이었어요. 길의 끝. 저는 그렇게 해석했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시는 길의 끝까지 가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잖아요. 그 길의 끝까지 가자. 그런데 출발점은 돌밭인 거죠.” 도전돌밭공동체에 대해 묻는 기자에게 서 신부가 말했다.

서 신부가 도전리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1년부터다. “박사 논문을 쓰기 위해 이곳에서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살았어요. 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 사제관이 비어있었거든요. 상주 사제가 필요하다는 부탁을 받고 지내면서 이곳과 인연을 맺은 거죠.”

하지만 서강대에서 종교학 교수로 재직하면서부터는 도전리를 찾을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 6년이 지나고 2010년 안식년을 보내야 했는데 도전리가 떠올랐고 안식년 동안 도전리에 머물렀다. 그리고 그해 겨울, 서 신부가 신자 2명과 피정을 하게 되면서 도전돌밭공동체가 시작됐다. 현재 정회원과 후원회원 등 85명이 공동체와 함께하고 있다.

 

서명원 신부(앞)와 공동체 식구들이 닭장 안을 살펴보고 있다.

 


생태적 삶의 이유

“우리가 생태계와 올바른 관계를 맺어야 주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어요. 그래야 우리가 구원의 길로 갈 수 있고 영생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어요.”

공동체가 재배하는 농작물은 모두 유기농이다. 영성생활, 학술활동과 함께 유기농 농사는 공동체의 존재 이유이자 지향이다. 농사를 짓는 목적은 공동체가 재배한 걸 1년 내내 먹기 위해서다.

서 신부는 어릴 때부터 시골에서 살며 닭을 키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곳에 자리 잡은 후 처음부터 농사를 지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공동체 식구 중 한 분이 빈 밭을 보고 농사를 짓자고 하셨어요. 처음에는 안 한다고 했죠. 그러면 도와달라고 하기에 도와주기 시작했는데, 그러다 보니 농부가 됐고 이곳이 농장이 됐어요. 그분이 바이러스를 주셨어요. 농사에 중독되는 바이러스를요.”

공동체가 800평 규모의 밭에서 재배하는 유기농 농작물은 옥수수, 감자, 고구마, 땅콩, 토란, 들깨, 상추, 고추, 토마토, 가지, 마늘, 배추, 무 등 10가지가 넘는다. 닭 40마리에서 얻는 달걀은 하루에 12~15개 정도다. 공동체의 훌륭한 단백질 섭취원이다. 올해는 해바라기 농사도 짓고 있다.

농사를 짓는 데 제초제도 사용하지 않는다. 잡초가 생기지 않도록 농작물을 덮어주고 잡초가 생기면 그때그때 손으로 뽑는다. 살충제도 안 쓴다. 집 안으로 들어온 벌레는 잡아서 방생한다. 공동체 권연담(아기 예수의 데레사) 사무국장은 “살충제를 쓰지 않다 보니 다른 밭에 있던 벌레들이 모두 우리 밭으로 온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자연을 통해 하느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느낌이 든다”며 “선물로 받은 게 참 많다는 것도 느낀다”고 전했다.

식수는 우물을 통해 얻는 암반수다. 서 신부는 농사를 짓거나 청소를 하는 데는 빗물을 모아 사용한다고 했다. “지붕에서 내려오는 빗물을 모아서 사용해요. 펌프 시스템을 만들었어요. 물을 아끼는 것도 친환경이라 볼 수 있죠.”

전기도 최소한으로 사용한다. 서 신부는 “밤이 되면 공동체를 방문하는 분들이 집이 어둡다고 이야기한다. 돈을 주겠다는 분도 있다”며 “하지만 거절했고, 지구가 더워진다는 걸 모두 느껴야 한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엔 에어컨이 없다. “문명을 아주 벗어나지는 못해요. 함께 살아야 하니까요. 그럼에도 이렇게 하는 건 소비하고 버리는 문화, 쓰레기를 많이 만드는 문화와 함께하지 않으려고 하는 겁니다. 우리가 하는 건 환경문제에서 극히 작은 겁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이거니까 하는 거죠. 이곳에서 저는 자연으로부터 재교육을 받고 있어요.”

 

 

도전돌밭공동체가 기념 촬영을 하며 활짝 웃고 있다.


의대생, 농사짓는 신부가 되다

서 신부는 1953년 캐나다 퀘벡에서 태어났다. 의사가 되길 원하는 부모의 뜻에 따라 의대에 다녔다. 그러면서 생로병사에 관해 생각하게 됐고, ‘왜 사는가’ 하는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피정을 하게 되면서 ‘주님, 저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든지 저는 하겠습니다’라고 응답했어요. 그랬더니 주님께서 ‘지금 당장’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의대를 졸업하고 수도회에 입회하려고 했는데 깜짝 놀랐어요. 하지만 ‘지금 당장’이라는 말씀이 너무 분명했어요.”

부모의 반대가 극심했지만, 서 신부는 주님 뜻에 따라 1979년 예수회에 입회했고, 1984년에는 한국에 파견됐다. 그리고 1992년 프랑스 파리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한국 문화에 큰 관심이 있었던 서 신부는 한국불교를 전공해 2004년 파리 7-드니 디드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14년간 서강대에서 종교학을 가르쳤다. 이는 도전돌밭공동체가 처음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종교 간 대화를 위한 공동체로 출발한 이유이기도 하다. 서 신부는 2015년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서 신부에게 앞으로 걸어갈 길은 어떤 길일지 물었다. “제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여전히 몰라요. 그런데 저는 주님 안에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시간을 놓쳐서는 안 돼요. 의사가 되는 거 영광스러운 일이죠. 그런데 주님이 버리라고 하셨어요. 버리길 잘했어요.”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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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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