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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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성월 특집] 서간으로 본 선조들의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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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4년 한국교회가 창설된 이후 계속된 박해는 수많은 신자들을 순교의 칼날에 스러지게 했다. 순교자들은 죽음을 앞두고 자신들의 열절한 신앙과 옥중생활을 교우들과 가족들에게 남겼다.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 혹은 지상에서의 마지막 삶을 앞두고 절절한 마음으로 써 내려간 편지들에서는 믿음과 하느님 사랑, 또 교회를 보호하려는 심정이 엿보인다. 이런 서간들은 박해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필사되고 말로 전해져 널리 알려짐으로써 신자들의 신앙 형성과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순교자 성월을 맞아 선조들이 남긴 서간을 통해 그들의 굳은 신심을 되새겨 본다.


서간은 박해 시기에 신앙 선조들의 중요한 소식 전달 수단이었다. 박해를 피하기 위한 대응 방안이었으며, 가족들에게 유언을 전하거나, 조정에 항소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또한 당대 신자들이 남긴 문학 작품이면서 신앙고백서였다. 특히 체포된 후 옥중에서 보낸 서간들은 자신의 체포·심문과정·옥중 생활에 대한 기록, 가족 친지를 권면하고 위로하는 것 등이 주된 내용이었다. 선교사들이 보낸 서간들은 사목서한 성격이 짙었다. 선교사들은 편지로 박해에 처한 상황이나 신자들의 신앙생활, 특히 열심한 신자의 모범 사례를 유럽교회에 소개했다.


■ 제 마음 향하는 곳 하늘나라 뿐

“우리를 세상에 나게 하심도 주님 뜻이요, 우리의 생명을 거두어 가심도 주님 뜻이니, 죽고 삶에 얽매이는 것은 도리어 웃음을 살 일이옵니다.… 이 땅에서는 다시 돌아보아도 마음 둘 데가 없어 생각하는 것은 오직 주님이며, 제 마음이 향하는 곳은 하늘나라 뿐입니다.”(이순이 루갈다 옥중편지 중)

1801년 전주에서 순교한 이순이(루갈다)는 옥중에서 어머니와 두 언니에게 편지를 보냈고, 그의 오빠 이경도(가롤로) 및 막내 동생 이경언(바오로)도 가족에게 편지를 보냈다. 최초의 옥중편지로 알려진 이 서간들은 1859년 다블뤼 주교에 의해 발견돼 프랑스어로 번역됐다.

특별히 유중철(요한)과 동정 부부로 잘 알려진 이순이의 편지는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깊은 신앙심을 아름답게 드러내며 하느님만을 지향하며 동정을 지키려 노력한 애씀을 토로하면서 순결에 대한 동경을 담아냈다.

이경도의 편지에서도 순교에 대한 열정과 교리에 대한 믿음이 드러난다. “사소한 정에 매여 긴 말 짧은 말을 해보았자 마음만 아프게 할 뿐 좋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뜨거운 사랑’(熱愛) 말고는 주님의 마음과 통할 것이 없으니, 소원을 이루기는 이것이 제격입니다.”

신자들 편지 중 ‘신미년 서한’으로 불리는, 복자 신태보(베드로)가 1811년 교황과 북경교구장에게 쓴 편지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성직자 영입을 청하는 내용으로 조선 신자들이 교황에게 쓴 첫 편지였다. 북경교구장을 통해 비오 7세 교황에게 전달된 편지는 이후 1831년 조선대목구 설정의 종자 역할을 했다. 특히 이 편지에서는 성사 은총에 대한 갈망과 구령을 위한 절박한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교황님께서는 목자 잃은 이 나라의 양떼를 굽어보시고 불쌍히 여기시어 복음이 널리 전파될 수 있도록 하루빨리 사제를 보내 주시기를 바라옵나이다.… 주님 흘리신 피의 공로가 널리 알려지고, 저희 영혼이 구원되어 천주님의 거룩한 이름과 교황님 업적이 영광을 받을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이 밖에도 성 이문우(요한), 해미 순교자 박취득(라우렌시오), 청주 순교자 김사집(프란치스코) 등도 옥중에서 편지를 전했다.


■ 군사가 무기를 갖추고 싸움터에 나가듯 싸워 이겨냅시다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와 최양업(토마스) 신부의 서간들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편지다. 두 사제 모두 각각 21통의 편지를 남겼다. 김 신부의 편지가 대부분 사제로 서품되기 전에 쓰인 것과 달리 최 신부의 편지는 사제 수품 후 쓴 것이다. 김 신부의 편지가 보고서 형식의 공적 성격이 강한 반면, 최 신부의 편지에서는 교회의 사람인 동시에 동포의 구원을 위해 선택된 사제라는 자의식을 찾을 수 있다.

‘교우들 보아라’라는 제목의 김대건 신부 마지막 편지는 신자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과 당부가 절절하다. “우리는 미구에 전장에 나아갈 터이니 부디 착실히 닦아 천국에 가 만나자. 사랑하는 마음 잊지 못하는 신자들에게 너의 이런 난시(難時)를 당하여 부디 마음을 허실히 먹지 말고 주야로 주우를 빌어 삼구(三仇)를 대적하고 군난을 참아 받아 위주 광영하고 너희들 영혼 대사를 경영하라.”

가난과 차별, 박해 속에서도 하느님을 향하는 신자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지켜보는 최양업 신부는 편지로 교우들 모습을 전하면서, 아울러 공동선과 사회정의 구현의 필요성을 외친다. 또 양반 중심 신분 제도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부당한 제도하에서 인간 존엄성이 무시되는 상황을 지적했다.

“저는 교우촌을 두루 순회하는 중에 지독한 가난에 찌든 사람들의 비참하고 궁핍한 처지를 자주 목격합니다.… 동포로부터 오는 박해, 부모로부터 오는 박해, 배우자로부터 오는 박해뿐 아니라 친척들로부터도 박해를 받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항구한 믿음은 그런 가운데에서도 목자로서 양들을 위해 내딛는 발걸음의 원동력이었다. 편지의 행간에서 하느님을 통한 새 하늘 새 땅에 대한 희망이 느껴진다.

“하느님 안에서 항상 영원히 희망을 가질 것이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려고 저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 손에 맡겼으니 그분을 언제나 믿을 것입니다.”


■ 너희 본분을 열정으로 지켜라

선교사들의 편지에서는 양떼를 생각하는 마음과 함께 목자를 아끼는 신자들의 모습도 드러난다. 성 위앵(루카) 신부는 자신이 머무는 집 주인의 정성어린 보살핌을 이야기한다. “집주인의 부인이 제게 요리를 해줍니다. 그녀는 아주 열심히 합니다. 제 식사를 유럽식으로 해주고 싶어 합니다.… 집 뒤에 열두 걸음 정도 길가에 꽃들이 있는데 이것은 집주인 딸 14살 데레사가 저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심은 것입니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펠릭스 클레르 리델 신부는 수기에서 하느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죄없이 감옥에 갇힌 신자들이 자신들을 모욕하고 욕한 다른 죄수가 아파서 사경을 헤맬 때 정성껏 보살피는 장면을 알린다. 궁핍하게 살지만, 하느님 나라를 보상으로 여기며 애덕을 실천하고 나누는 신자들의 면모가 그려진다.

성 다블뤼 주교가 참수당하기 직전에 써서 비밀리에 전한 회유문은 신자들에 대한 사랑이 간곡하게 묻어난다. “떠나도 너희를 자주 생각해 그리워하고, 너희를 위해 항상 기구하고, 너희 영혼의 신익을 항상 돌아볼 것이오, 멀리서라도 통공하는 은혜로 너희 가운데 있음과 같으니 나를 생각해 너희 본분을 열정으로 지켜라.”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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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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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13장 34절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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