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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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넘고 물건너 오지 마을 신자들과 미사하는 기쁨이란!

[선교지에서 온 편지] 동티모르에서 이동철 신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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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이 많이 불어났을 때 아이들이 함께 동행해 주었다.


남태평양 작은 섬나라 동티모르

세계 지도에서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북극에서 남극으로 세로로 선을 그으면 적도 밑에 동티모르라는 작은 섬나라로 그 선이 지나갑니다. 그래서 동티모르는 한국과 시차가 없습니다. 기후는 적도 부근이라 우기와 건기로 이뤄져 있습니다. 예전엔 우기와 건기가 각각 6개월씩이었지만, 불과 몇 년 사이 기후위기의 영향으로 우기는 7개월, 건기는 5개월로 변하고 있습니다.

동티모르는 세계 최빈국에 속합니다. 크기는 강원도 땅, 인구는 대전 인구인 130만 정도입니다. 가톨릭 신자가 92이며, 그래서 가톨릭이 국교인 나라입니다. 동티모르는 강대국들의 오랜 약탈과 수탈, 학살을 이겨내고 2002년 독립했지만, 그 긴 시간 동안 생긴 아픔과 물질적 가난이 여전히 크게 존재하는 땅입니다.



해발 1500미터 산간 오지 마을 본당

동티모르 수도 딜리(Dili)에서 산으로 포장도로 1시간, 비포장도로로 또다시 1시간을 올라가면 해발 1500m에 산간 오지마을 레퀴도에(Lequidoe) 지역이 있습니다. 이곳에 파이소이(Fahisoi)라는 마을이 있는데, 여기에 레퀴도에 본당이 있습니다. 이 본당이 저희 수사들의 사도직 현장이고, 사제관이 수도원입니다.

본당 소속 신자는 8000명 정도. 모두 화전민들입니다. 그래서 아침에 아이들이 등교할 때 보면, 나무 지팡이를 하나씩 들고 갑니다. 왜 들고 가느냐고 물어보면 “점심때 학교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데 나무가 없어서 밥을 못 하니, 선생님이 나무를 가져오라”고 했답니다. 또 오후 4시쯤 되면 아이들은 자신보다 더 큰 양의 나무를 산에서 지고 내려옵니다. 엄마가 밥해야 한다며 나무를 가져오라고 한 것입니다. 화전민들의 삶을 보며 ‘한국에서 참 쉽고 편안하게 살았구나!’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몰레쑤 공소 축일에 첫영성체를 한 아이들과 함께한 이동철 신부.

빠뚜릴라오 공소 방문했을 때 신자들이 음식 준비를 해주는 모습.


24년 만에 미사 봉헌한 공소도 있어

레퀴도에 본당에는 6개의 공소가 있습니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1~2시간을 차로 산을 넘고 강을 건너야 갈 수 있습니다. 6개 공소 중 4군데엔 전기가 안 들어오는 산간 오지마을에 있습니다. 그런 공소에는 산악용 차량이나 산악용 오토바이 없이는 갈 수 없고, 이정표 하나 없는 비포장 길입니다. 비가 오면 심각한 진흙길로 바뀌어 공소 미사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해 예기치 못한 1박을 하고 오기도 합니다.

한곳의 공소 앞에는 넓은 강이 있습니다. 건기 때엔 오토바이나 차로 건널 수 있지만, 우기 땐 물이 불어나 걸어서 건너야 합니다. 그래서 갈아입을 옷을 하나 더 챙겨갑니다. 물이 심각하게 불어났을 땐 미사를 하지 못하고 되돌아올 때도 있습니다. 또 다른 공소는 저희가 2015년에 처음 진출했을 당시 1년에 한 번 사제가 방문해 미사를 봉헌한 곳입니다. 오지 중에서도 깊은 산간 오지마을에 있는 탓입니다. 또 한 곳의 공소는 24년 만에 처음 미사를 봉헌한 곳도 있습니다. 이에 저희 수사들은 최소 매주 1회, 특히 주일에 신자 분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자 본당과 6개의 공소를 방문해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성사생활에 목말라했던 그들은 더없이 기뻐했고, 다시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다는 희망과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에 가득 찼습니다.

 
미사하러 가는 길에 물이 불어나서 안 빠지려고 애쓰는 모습들.



불어난 강을 건너가야 하는데…

우기 때 오토바이를 타고 공소 미사를 간 어느 날이었습니다. 강을 건너야 갈 수 있는 공소라 옷도 하나 챙겨갔습니다. 강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마을 주민들이 큰소리로 제게 “아무(Amu) 배(bee) 봇(boot)!!!”이라고 외쳤습니다. ‘아무’는 떼뚬어(동티모르어)로 “신부”라는 뜻이고, ‘배’는 “물”, ‘봇’은 “크다”란 뜻입니다. 즉, “비가 많이 와서 강물이 크게 불어났다”라고 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걸어서 지나기엔 위험하다고 알려준 것이지요. 그래도 성사생활의 기쁨을 아는 신자들이 강 건너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일단 강까지 갔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물이 너무 많이 불어나 있었습니다. 강 건너 공소 회장님께 전화로 상황을 말씀드리고자 휴대폰을 꺼냈는데, 그만 ‘통화권 이탈’이란 문구가 보였습니다. 그 지역은 전기가 안 들어오고, 기지국도 없어 통화할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강 건너편에서 아이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하더니, 한 여자아이가 강을 건너오려고 내려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제인 제가 걱정되어 저를 위해 내려온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아이에게 “오지 마라~! 내가 건너갈게. 나도 건너갈 수 있어. 절대 오지마”하고 연거푸 외쳤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건지 못 들은 건지, 아이는 막무가내로 건너왔습니다. 하는 수 없이 저도 서둘러 강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물이 불어난 것이 심각했습니다. 저는 허리까지 잠겼고, 아이는 배까지 잠긴 것이 보였습니다. 잘못하다가는 아이가 물에 떠내려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저는 “아버지~ 아버지!”하며 빠른 걸음으로 아이 쪽으로 갔습니다. 중간쯤에서 아이와 만나 손을 잡았는데, 아이가 제 손을 더 꽉 잡고 자신이 왔던 길로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 순간 아이를 봤습니다. ‘신부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왔잖아요. 제가 안전하게 강 건너편으로 데리고 갈게요. 그러니 이제 안심하세요’하는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저는 아이가 걱정됐는데, 아이는 오히려 저를 더 걱정했던 겁니다. 그 표정을 보면서, 그리고 제가 물에 떠내려갈까 봐 제 손을 꽉 잡고 당당히 물살을 헤치며 저를 안내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순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아이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아이의 신앙은 어떤 신앙일까? 뭘 믿고 강을 건너오려고 했던 것일까? 자기도 위험할 텐데, 신부가 걱정돼 위험한 강을 망설임 없이 건너오다니…. 대체 이 아이의 신앙은 어떤 신앙일까?’



조선 시대 우리 신앙 선조들도

이후 기쁨의 미사를 함께 봉헌하고 돌아올 땐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나 혼자 건널 수 있으니 강으로 내려오지 말거라. 알았지?” 많은 아이가 제가 강을 무사히 건널 때까지 언덕 위에서 걱정 가득한 눈으로 바라봤습니다. 마치 아버지께서 저를 지켜보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강을 건너 오토바이를 타고 다음 공소로 향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선 시대 우리 신앙 선조들도 저런 모습이셨겠다! 그리고 선교사들도 이런 마음이셨겠구나.’



하느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주문모 신부님이 순교하신 후 숨어서 신앙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신앙 선조들. 그렇게 구전으로 교리를 전할 수밖에 없었기에 항상 부족함을 느끼며 완전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성사생활을 해야 함을 강하게 알게 되었던 우리 신앙의 선조들. 그래서 사제 영입을 위해 교황청에 두 번이나 편지를 보냈던 우리 신앙 선조들. 그 두드림에 1835년 모방, 샤스탕 신부님과 엥베르 주교님이 오셨고, 성체성사와 고해성사, 세례성사, 견진성사, 혼배성사, 병자성사까지 성사생활의 기쁨을 느꼈던 우리 선조들. 그런 신앙 선조들을 보셨을 선교사들! 그 선교사들의 마음이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아버지께 선물 한가득 받고 돌아오는 기분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절로 이 말이 나옵니다. ‘하느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후원 계좌 : 하나은행 220-890023-89804

예금주 : (재)천주교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이동철(베드로) 신부 /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동티모르 순교복자수도원 성소 담당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3-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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