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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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칡나무와 등나무(정수용 신부,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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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그런지, 동식물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다. 가끔 서울 근교 산을 오르거나 교외로 나갔을 때, 이 나무는 무엇이고, 저 풀꽃 이름은 무엇인지 척척 맞추는 사람을 보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자신 있게 아는 나무가 하나 있으니, 바로 등나무다.

어린 시절, 학교 운동장 한켠에나 아파트 단지 공터에는 등나무를 이용한 벤치가 있었다. 철기둥을 타고 올라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던 등나무는 도심에도 눈에 익은 나무다. 등나무와 비슷하다고는 하는데 모양으로 구분하긴 어려워도 귀에는 익숙한 나무도 있다. 바로 칡나무다. 주로 산간 오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을 보면, 칡나무 뿌리를 캐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뿌리를 즙으로 마시기도 하고, 말려 차로 복용하기도 하는 나무가 바로 칡나무다.

등나무와 칡나무는 둘 다 줄기 식물로, 다른 나무를 타고 오르며 자란다고 한다. 그런데 이 두 나무가 서로 만나면 두 나무를 떼어놓기 힘들어진다고 한다. 칡나무는 자라면서 다른 나무의 오른 방향으로 감고 올라가는 반면, 등나무는 왼 방향으로 타고 올라가기에 이 두 나무가 만나면 도저히 풀 수 없게 된다고 한다. 여기서 나온 말이 바로 “갈등(葛藤, 칡나무 ‘갈’ / 등나무 ‘등’)”이라 하니, 그 이름 참 잘 지었단 생각이 든다.

사전을 찾아보니 갈등은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서 목표나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적대시하거나 충돌함’이라고 나와 있다. 노사갈등, 세대갈등, 지역갈등 등 이 단어는 정말 복잡하게 꼬여있는 두 넝쿨 식물처럼,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모르게 꼬여있는 실타래처럼, 우리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든다. 차분하게 하나하나 꼬여있는 것을 풀어보려는 노력도 금세 한계에 다다르고 도끼로 나무를 찍어버리거나 가위로 엉킨 부분을 싹둑 잘라버리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사회 정치적인 부분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가족 안에서, 같은 직장 공간 안에서 사사건건 충돌하고 오해하고 불신을 일으키는 상대를 마주해야 하는 갈등은 누구나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일 중에 하나다. 그렇다면 쉽게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없을까?

최근 한반도의 갈등이 점점 고조되고 있다. 지난 8월 18일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한미일 3국 공동의 비전과 파트너십을 담은 ‘캠프 데이비드 원칙, 정신, 공약’을 발표했다. 3국의 안보 협력을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사실상 중국을 견제하는 집단 안보 체제를 형성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가치동맹 국가 사이의 유대 강화로 안보가 더욱 튼튼해졌다는 입장도 있고, 반대로 미중 사이의 균형외교가 깨어져 안보가 더욱 불안해졌다는 극단의 평가로 갈렸다.

결과가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한미일 대 북중러의 갈등 구조가 더욱 공고해졌음은 부정하기 어려워 보인다. 당장 북한 역시 러시아와의 무기 거래 정황이 증가하고, 중국에 대한 의존도도 더욱 높아지고 있다. 남북의 갈등이 당사자 간 입장 조율과 신뢰 회복만으로도 풀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국제 정세 속에서 더욱 대결 구도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다시 ‘갈등’의 정의를 주목해본다. 상대방 나무를 베어버리거나 불태울 수 없다면, 갈등은 고조시키기보다 관리되어야 한다. 더 큰 갈등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는 결코 비겁한 행동이 아니라 지혜로운 행동이다. 과격하게 말하고 호전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갈등을 풀기 위한 해법을 마련하는 것이 훨씬 어려운 법이다. 어렵지만 평화를 위한 길을 가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정치인이 존재하고, 정치가 공동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정수용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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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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