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모르는 적도 부근에 위치하기에 1년 내내 여름입니다. 동티모르인들의 사는 모습은 영락없이 더운 나라 사람들의 삶입니다. 나른한 하루하루를 보내는가 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보내기도 합니다. 저는 한국 문화밖에 모르기에, 그들을 보며 느끼는 답답함은 저만의 갇힌 생각이라 여겼습니다. 어쩌면 그들이 저를 보며 ‘왜 그렇게 바쁘게 사느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동티모르는 오랜 침략과 내전으로 가난이 여전히 크게 존재하는 나라입니다. 특히 산간 오지마을에 사는 이들은 농사도 잘 안되는 땅에서 수입원이 일정치 못한 삶을 삽니다. 2주 동안 가족이 농사를 지어 수확한 소출을 시내까지 판매하러 가면, 그 땀의 결실로 불과 20~30달러(3~4만 원)를 손에 쥐고 돌아옵니다. 그 돈으로 가족 모두가 생활하다 보니 하루에 두 끼만 먹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가난을 대물림 하고 싶지 않아
또 미사를 하러 아침에 가는 길에 집 앞에 그냥 앉아있는 이들을 봅니다. 저녁에 돌아올 때에도 그 자리 그대로 앉아있습니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저를 보며 그들은 스스로 평화롭고 행복하다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하나같이 말합니다. “신부님~! 우리의 가난이 자녀들에게 대물림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들이 선교 사도직을 하고 있는 저희 수사들에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가난이 자녀들에게 대물림되지 않기를 바란다고요. 그들의 요청에 저희 수사들은 “모든 상황을 다 따지고 난 뒤에 함께하겠다고 하면 너무 늦을뿐더러, 그들에겐 가혹한 일이 될 것”이라 생각했고, “그들의 어려움과 요청에 즉각 응답하는 것이 선교”라는 데 뜻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저희 수도회가 이들의 요청에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찾은 것이 교육입니다. 예전엔 자본주의의 영향이 미치지 않았지만, 지금은 자본주의가 그들 삶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들은 물질적 가난을 알게 됐고, 그렇게 변화하는 동티모르의 환경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보고 들을 기회가 없었으며, 배움의 기회조차 없었기에 변화에 어찌 대처할지 모르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저희는 많이 보여주고, 많이 들려주고, 많이 알려준 후, 나머지는 주님께 맡겼습니다. 그 이후는 그들이 선택할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교육환경 조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데에 의견을 모으고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신설로 질적 교육 제공
이곳엔 중ㆍ고등학교가 없었습니다. 학생들은 초등학교의 작은 공간을 빌려 자신의 교실도, 자신의 책상도 아닌 곳에서 공부해왔습니다. 사는 곳 주변에 학교가 없어 먼 곳까지 3~4시간 걸어서 등하교하던 학생들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배움의 기회를 일찍 포기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수사들은 학교를 지어주고, 질적 교육의 기회를 주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먼저 마을 주민들이 함께 기뻐해 주셨습니다. 가문 3곳에서 본당 바로 옆에 새롭게 지을 고등학교 땅을 기꺼이 기증해주셨습니다. 그 후 한국의 많은 은인 분들의 후원으로 2021년 4월부터 ‘가르멜 성모 고등학교’ 신축 공사에 돌입했습니다. 이듬해인 2022년 1월 22일 동티모르 딜리대교구 대주교님을 모시고 새 학교 완공 축복식을 거행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 건물뿐만 아니라 여학생 기숙사도 함께 지었습니다. 멀리서 등하교하는 여학생들은 학교 근처 친척 집에 머물며 학교에 다녔는데,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면 온갖 집안일을 해야 했습니다. 화전민들이라 나무도 해야 하고, 빨래와 식사 준비 등 온갖 살림도 했습니다. 또 친척 집에 머물면서 겪지 말아야 할 아픔(동티모르엔 근친상간이 거의 사라졌지만, 아직 남아있습니다)을 겪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희 수사들은 여학생 기숙사까지 함께 지었고, 20여 명이 머물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가르멜 성모 고등학교의 쾌적해진 교육환경 속에 동티모르의 희망이 될 학생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그 자그마한 결실로 올해 2월 대학교에 입학한 졸업생이 50명 중 46명이나 됐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저희 학교가 위치한 아일레우(Aileu) 주에는 8개의 고등학교가 있습니다. 이들 학교에서 국립대학교에 입학한 학생은 150명. 저희 고등학교에서만 46명이 국립대에 진학했습니다. 참고로 국립대 등록금은 30달러이며, 사립대는 300~600달러입니다.
이 엄청난 진학률을 보면서 ‘전에도 학생들이 이 같은 꿈을 꿨을 텐데, 몇 명의 학생들이 꿈을 실현시켰을까? 지금 우리 학생들은 더 희망을 갖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들이 가르멜 성모 고등학교에서 꿈과 함께 미래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만으로도 제가 더 설레고, 기쁨이 가득해집니다.
중학교도 10월 초 완공 예정
고등학교 건립 후 지금은 중학교를 짓고 있습니다. 위치는 성당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으며, 저희 본당 관할 공소가 있는 곳입니다. 한국의 많은 은인 분들의 도움으로 올해 4월부터 ‘소화데레사 중학교’를 본격적으로 짓기 시작했고, 10월 초 완공 예정입니다.
그간 초등학교를 빌려 수업에 임해온 학생들은 이제 자신들의 중학교가 지어지는 모습을 매일 보고 있습니다. 나를 위한 교실과 책상이 가득한 학교가 생기는 것을 매일 보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제가 더 기쁘고 가슴 벅차며 설렙니다. 벽돌이 하나씩 쌓여 올라갈 때, 아이들의 꿈도 하나씩 쌓여 점점 희망에 다가가는 듯합니다.
학교가 완공되면 5개 지역의 중학생들이 다니게 됩니다. 학교를 아예 다니지 못하고 있던 학생들도 올해 말부터는 새 중학교에서 꿈을 키워나갈 것입니다. 아이들이 새 학교에서 공부하며 뛰어놀 모습을 생각하면 벌써 행복해집니다.
물론 한국 문화에 익숙한 제가 볼 땐 아직 부족합니다. 인쇄 문화가 발달하지 못해 교과서는 선생님만 갖고 있고, 학생들은 볼펜 하나, 공책 하나만 들고 등교합니다. 어떤 아이들은 책가방조차 없어 펜 하나만 달랑 들고 옵니다. 그래서 저희는 학부모들에게 책가방 없이는 등교를 못 하게 할 것이니, 자녀의 미래를 위해 책가방 하나씩을 선물해주라고 말씀드리기도 했습니다.
또 중학교 1~2달러(입학금 3달러), 고등학교 5달러인 등록금이 없어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학생들도 있고, 여학생 기숙사 비용(20달러)이 없어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하는 여학생들도 있습니다. 다행히 한국의 은인들께서 장학금과 기숙사 비용을 보내주고 계셔서 학생들은 쾌적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혼자 보기엔 너무 아까운 기적들입니다. 함께 보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해 아쉽습니다. 그래서 더 짙은 농도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동티모르에 학교가 세워지도록 아이들의 미래에 후원해주셨던, 그리고 지속적으로 학교가 운영될 수 있도록 지금도 후원해주고 계신 은인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동티모르 학생들의 아빠, 엄마, 선생님이 돼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동티모르의 선교지 관련 영상은 유튜브 채널 ‘복자방송’(https://youtu.be/beISXf3IlyM)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