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4일부로 춘천교구 ‘화현 이벽 성지’와 ‘포천 홍인 성지’ 전담 사제로 고봉연(요셉) 신부가 부임했다. 고 신부는 화현 이벽 성지를 “한국교회의 베들레헴이자 예루살렘”으로 부를 수 있다고 말한다. 화현 이벽 성지라는 명칭을 아는 신자는 아직 많지 않다. 춘천교구장 김주영(시몬) 주교에 의해 올해 5월 20일 성지로 선포된 화현 이벽 성지는 세계교회사에서 유례없이 평신도에 의해 자생적으로 시작된 한국천주교 역사에서 첫 지도자 역할을 했던 이벽(李蘗·요한 세례자·1754~1785)이 태어나고 순교한 곳이다.
■ 가장 이른 역사, 가장 늦은 성지 선포
경기도 포천시 화현면 화동로477번길 31에 자리한 화현 이벽 성지는 현재까지 가장 늦게 성지로 선포된 곳이다. 한국교회 최초 평신도 지도자로 일컬어지는 이벽이 태어나고 신앙을 증거하다 순교한 곳이 이제야 성지로 선포되고 첫 전담 사제가 부임했다는 사실이 놀랍기까지 하다. 이것은 과거에 이벽의 순교 사실에 대한 규명이 미흡했던 점과 성지 개발 과정에서 현실적 어려움이 따랐다는 것에 기인한다. 현재 이벽은 조선왕조 치하 순교자로서 한국교회에 의해 시복시성이 추진되고 있다.
성지 인준 및 선포문에는 “시간이 흘러도 이벽 요한 세례자의 지상 여정의 시작과 끝이었던 이 장소는 모든 신앙인들에게 올바른 신앙이 무엇인지를 제시하는 훌륭한 표지요, 장소가 될 것입니다”라는 선포 사유가 적혀 있다. 화현 이벽 성지가 갖는 교회사적, 신앙적 의미를 압축하고 있다.
화현 이벽 성지는 춘천교구가 봉헌한 ‘광암 이벽 기념성당’을 중심으로 생가터 재현관, 해설사 안내소, 야외공연장 등으로 구성돼 있다. 눈에 보이는 성지 시설은 아직 완전히 갖춰지지 못한 곳이 군데군데 있고, 사제관도 마련되지 못해 고봉연 신부는 포천 솔모루성당에서 출퇴근하고 있다.
화현 이벽 성지는 결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곳이다. 성지 울타리 너머 이벽의 생가터는 경주 이씨 문중이 온전히 보존하고 있다. 생가터 지근 거리에 위치한 진묘(眞墓)터도 춘천교구가 정성 들여 관리하고 있다. 진묘터는 포천시 향토유적 제48호이기도 하다. 이벽의 묘는 그가 순교한 뒤 역사의 베일에 싸여 있다가 190년이 넘게 흘러 1970년대 후반에 발견됐다. 그 뒤 1979년 6월 천진암성지로 이장됐지만, 이벽이 순교하고 묻혔던 진묘터의 교회사적 의미와 가치는 변할 수 없다.
■ ‘하늘’을 바라본 이벽
화현 이벽 성지 ‘광암 이벽 기념성당’에는 이벽이 걸어갔던 선구자적 신앙의 길이 상징적으로 표현돼 있다. 성당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면 텅 빈 것 같은 공간이 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천장은 뚫려 있다. 이 중정(中庭)에 서 있으면 보이는 것은 ‘하늘’뿐이다. 이벽이 전통적인 유교사회에서 아무도 걸어가지 않았던 천주교 신앙의 길을 걸을 때, 가족에게조차 박해받으면서 바라본 것은 오직 하늘, 곧 하느님뿐이었다는 사실을 텅 빈 공간이 상징하는 것이다.
중정을 지나 성당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면 푸른 하늘색을 배경으로 십자가가 보인다. 십자가는 이벽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마주했을 하느님을 다시 한번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이는 외롭게 하느님만을 찾았던 이벽의 신앙이면서, 이벽이 오늘을 사는 신자들에게 요구하는 신앙이기도 하다.
고봉연 신부는 화현 이벽 성지에서 20여 ㎞ 떨어진 ‘포천 홍인 성지’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이벽이 그랬던 것처럼 복자 홍인(레오·1758~1802) 역시 아버지인 복자 홍교만(프란치스코 하비에르·1738~1801)이 신앙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주저할 때, 아버지를 신앙으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은 홍인의 마음과 삶의 중심에 자리 잡은 분이 하느님이었기 때문이다. 포천 홍인 성지 부지는 춘천교구가 포천시로부터 대여하고 있어 성지 개발에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춘천교구는 전국 신자들이 화현 이벽 성지와 포천 홍인 성지를 더욱 많이 찾아오도록 성지를 알리고 개발할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 화현 이벽 성지·포천 홍인 성지 전담 고봉연 신부
“신앙 없던 땅에 몸소 ‘길’ 되신 분 기리자”
“화현 이벽 성지는 전국에서 가장 늦게 올해 5월에야 선포됐습니다. 그나마 다행이긴 하지만 한국천주교회 창립 주역인 이벽에게 우리 모두가 그동안 얼마나 무관심했는지를 알려 준다고 생각합니다.”
화현 이벽 성지 첫 전담 사제로 부임한 고봉연(요셉) 신부는 포천 일동본당 주임으로 일하던 2009년에 이벽 생가터와 진묘터가 있는 장소가 한국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성지로 조성돼야 한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닫고 포천시에 이벽의 존재를 인식시키려 노력했다.
“포천시에 다른 사업보다 우선적으로 이벽의 역사를 살려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춘천교구와 포천시가 공동으로 이벽 성지 개발을 논의하던 중 제가 다른 곳으로 인사발령이 나면서 안타깝게 14년이나 지나서야 화현 이벽 성지가 선포됐습니다. 제가 처음 성지 개발을 제의했던 곳에 전담 사제로 부임하게 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고 신부는 이벽이 한국교회사에서 갖는 의미에 대해 ‘하느님 뜻에 절대 순종한 신앙의 개척자’이자 ‘믿음의 아버지’, 그리고 ‘순교자’라고 말했다. 그는 이벽을 “한국교회의 모세이고 아브라함이며, 바오로이고 베드로이기도 하고, 성모 마리아와 요셉”이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이벽이 한국교회의 ‘길’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자신이 양반이고, 신분제가 엄연한 유교사회였음에도, 이벽은 신분제를 초월해 중인과 평민, 여성까지 모두 신앙 안에서 형제자매로 받아들였습니다. 외롭고도 선구자적으로 평등사상을 실천했던 분입니다.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내고 그 자신이 길이 되신 분입니다.”
고 신부는 “화현 이벽 성지가 뒤늦게 조성됐지만, 한국교회에서 가장 의미가 큰 성지라는 사실을 신자들께서 아시고, 이벽의 신앙을 직접 와서 보시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또 “단체 순례자들이 미사 봉헌을 원하시면 정해진 미사 시간이 아니어도 언제든 미사를 봉헌하실 수 있도록 안내와 편의를 제공해 드리겠다”고 말했다.
고 신부는 자신도 이벽이 걸었던 길을 따라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제가 가는 길이 누군가에게 길이 될 것이어서 마음이 무겁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내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고 맡겨진 소임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