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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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성월 특집] 순교자 초상, 누가 어떻게 그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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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손엔 묵주, 다른 손엔 십자가를 꼭 쥐고 인자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는 순교자들. 혹독한 고문으로 온몸이 찢기고 부서지는 고통 속에서 순교했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행복한 미소를 보여주고 있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당했던 육체적 고통은 하늘나라로 가는 길에 겪은 찰나의 어려움에 불과하다고 여겼을 순교자들.
신앙 때문에 목숨을 위협받거나 육체적 고통을 당하는 일은 없지만, 어쩌면 신앙을 위협하는 더 많은 것들로 둘러싸인 지금의 신앙인들에게 순교자들의 행복한 미소는 신앙인들이 걸어가야 할 길을 말해주고 있다. 아름답게 웃고 있는 순교자의 얼굴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알아본다.


서양인이 그리던 순교도(殉敎圖), 성 김대건 신부 초상으로 한국적 색깔 찾아

우리나라 순교자들의 순교도를 최초로 그린 사람은 이탈리아 화가 주스타니안(Giustanian)이다. 한국 순교자 79명이 복자품에 오르는 것을 기념해 제작한 ‘영광도’는 1925년 7월 5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된 한국 79위 복자 시복식 미사 때 제대 위에 걸렸다.

주스타니안은 이밖에도 순교 장면을 묘사한 ‘소년 순교자 유대철 베드로 순교도’, ‘순교자 김효임(골롬바)·김효주(아녜스)도’, ‘세 프랑스 신부 순교도’ 등을 그렸다. 가톨릭 성화를 그리는 한국인 화가가 없었기 때문에 외국인 화가에게 의존한 결과 등장인물의 모습과 의상에서 서구적인 분위기가 강하게 표현된 것이 당시 순교도의 특징이다.

한국인 화가가 처음 그린 순교도는 장발(루도비코)의 ‘79위 복자도’(1934년 추정)다. 이 그림은 서구의 종교적인 도상만 차용하고 예수를 제외한 다른 인물 묘사는 우리의 모습으로 동양인답게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이 작품은 서양에서 유래된 종교성이 한국적인 현실과 만나 토착화된 첫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장발 화백은 성인 초상화를 처음 그린 인물이기도 하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성 김대건 신부가 시복되기 전인 1920년 뮈텔 주교의 주교 서품 30주년을 위해 그린 것이다. 한편 2022년 7월 장발 화백의 성 김대건 신부 초상화 한 점이 추가로 발견됐으며 이는 용산 신학교 교장이었던 기낭 신부 은경축을 기념하기 위해 그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초상화는 갓을 쓰고 흰 두루마기 위에 붉은 영대를 메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금박으로 새겨진 성경을 가슴에 안고, 왼쪽 손은 순교를 상징하는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있다. 이목구비의 명암과 좌우대칭이 분명한 김대건 신부의 얼굴은 엄숙한 느낌을 풍긴다. 특히 장 화백의 그림은 배경에 한자 ‘희(囍)’자를 넣어 서구적인 도상과 한국적인 도상이 함께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이후로도 여러 화가들이 성 김대건 신부 초상화를 그렸다. 프랑스인 선교사 플뢰레 신부가 펜으로 그린 ‘김대건 신부 초상’(1925년 추정)을 비롯해 1954년 장우성(요셉) 화백도 김대건 신부의 초상을 그렸다. 1983년 문학진(토마스) 화백이 그린 초상화는 한국 성인 공식 영정 제1호로 등록됐다. 1971년 정채석(비오), 2010년 조영규(레오나르도) 화백 등 여러 화가의 손에서 성 김대건 신부의 초상이 완성됐다.


순교자 초상에 담긴 ‘하느님 나라로 가는 길’

같은 인물이지만 6명의 화가는 각각 다른 이미지의 성 김대건 신부를 완성했다. 초상이 남아있지 않은 인물이기에 시대에 따라 신앙인들에게 적합한 이미지를 창조해 그림에 담아내게 된 것이다. 오래 전 순교한 이들의 초상화에 지금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77년과 1989년 각각 문학진 화백과 탁희성(비오) 화백이 한국 103위 성인화를 그렸다. 두 화가는 다양한 연령과 신분, 직업을 가진 성인들의 모습을 제대로 그려내기 위해서, 많은 문헌과 고증된 자료에서 개개인의 행적과 특징을 찾아냈다. 이를 바탕으로 신분에 맞는 복장과 소품 그리고 각기 다른 자세와 동작을 특색 있게 그려냈다.

성인 개별 초상화 작업이 시작된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2018년 주교회의 문화예술위원회는 한국 103위 순교 성인 중 개별 초상화가 없는 77위 성인의 개별 초상화를 완성하기로 했다. 당시 작업은 가톨릭 미술가 63명이 참여, 다양한 기법과 특색이 담긴 초상화로 완성됐다는 것이 특징이다. 초상화 작업에 참여한 작가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성인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았다”는 것이다.

약전과 역사적 기록에 천착해 그림을 그려나간 작가들은 순교자들의 삶에 공감하고 함께 아파하며 그들을 공경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그림을 그리고자 노력했다.
103위 성인 초상화 작업에 참여한 김형주(이멜다) 작가는 “순교자의 초상을 그리는데 있어서 실력도 중요하지만 깊이있게 그분들의 삶에 동화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면서 “혹독한 고통을 당하고 돌아가신 분들이지만 지금은 하느님 곁에서 아름답게 살고 계실 분들이라는 생각에 나는 가장 아름답게 그리고자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초상에 대한 참고 자료가 있는 경우 실제 인물과 비슷하게 묘사하려는 작가들의 노력도 있었다. 복자 윤지충(바오로)과 권상연(야고보) 초상화를 완성한 홍용선(요셉) 작가는 두 복자의 후손들 사진을 토대로 공통된 이미지를 찾아 화폭에 담았다. 30여 년간 한국조폐공사 디자인실장을 했던 경험을 살려 조선시대 복식과 수염, 머리 모양에 대한 고증도 철저히 했다. 그가 역사적 사실을 통해 착안한 두 복자의 이미지는 ‘용감하고 단단한 모습’이다.

홍용선 작가는 “죽음과 고난 앞에서 하느님만을 믿고 나아간 두 복자에게서 용감하고 두려움 없는 모습을 떠올리게 됐다”며 “그래서 복자 윤지충은 성경을 옆에 끼고 늠름하게 서 있는 모습으로, 복자 권상연은 십자가를 들고 간곡하게 기도하는 모습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103위 성인 중 6위를 그린 윤여환(요한 사도) 작가는 “박해와 고문을 견디면서도 오직 하느님을 위해 죽음으로 믿음을 지켜냈던 그 모습을 그리기가 너무 어려워서, 순교하는 마음으로 모두 주님께 맡기고, 성인의 삶과 영성을 묵상하며 많은 기도에서 그 해답을 찾는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윤 작가는 ‘신앙적 용모 우성 인자’를 찾아내 성인의 얼굴에 대입했다. 윤 작가는 “신앙심이 깊은 신앙인의 얼굴에는 탐욕과 사악한 기운이 없고, 영성적 편안함과 온후함 그리고 청아한 기색이 가득하다”며 “그것을 신부님과 수녀님, 신심이 돈독한 신자들의 얼굴 모습에서 찾아내고자 노력했다”고 밝혔다.

김형주 작가는 순교자에 대한 공감과 사랑으로 완성된 성인화를 감상하는 방법에 대해 “약전과 함께 성인화를 감상하면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고 성인들과 더욱 가깝게 교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103위 순교 성인 초상화 제작 운영위원회’ 위원을 역임한 정웅모(에밀리오) 신부는 “그림 자체가 목적이 되는 다른 미술 작품과 달리 성인화는 그림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인 하느님 나라로 나아가는 것”이라며 “순교 성인화는 눈에 보이는 것만이 삶의 전부가 아니고 자기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줄 것”이라고 밝혔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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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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