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모르에 선교 사도직을 하기 위해 왔지만, 이들을 통해 신앙적으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특히 동티모르인들의 성모 신심은 어느 나라 못지않게 강하고 짙으며 깊습니다. 그들의 성모 신심이 강하고 짙으며 깊다는 것을 더 알 수 있었던 때는 5월 성모 성월과 10월 묵주기도 성월 때였습니다.
5월 한 달 동안 지속되는 성모님 방문 축일
먼저 5월 31일은 전례력으로 ‘복되신 동정 마리아 방문 축일’입니다. 그런데 동티모르에서는 그날만 성모님 방문 축일을 지내는 것이 아니라, 5월 한 달 내내 성모님 방문 축일을 지냅니다. 대형 성모상이 각 마을과 공소에 방문하시고, 신자들은 자신들의 마을과 공소에 성모님이 방문하셨다고 하여, 엘리사벳 성녀와 태중에 있던 요한 세례자처럼 기뻐하며 축제의 시간을 가집니다. 이것을 4월부터 계획합니다. 이번에는 어떤 공소와 마을에 방문하실 것인지, 그 공소와 마을에 며칠을 머물러 계실 것인지, 그리고 머무시는 동안 어떤 이들이 음식을 준비하고, 성모님을 맞이하고 떠나보낼 때, 그리고 그 기간 각자 할 수 있는 역할까지 정합니다.
각 공소와 마을에 일정이 잡힌 후에 공소에 일정표가 붙여지면 아이들이 먼저 제게 다가와 말합니다. “아무! 이날 올 수 있어요?” ‘Amu(아무)’는 동티모르어인 떼뚬어로 ‘신부’라는 뜻입니다. 자신들의 공소(마을)에 성모님께서 방문하시는 동안 함께 맞이하고 밥도 먹고 춤을 추며 함께하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때 한 번 더 공소 회장님도 오셔서 그날을 가리키며 강한 어조로 말씀하십니다. “아무! 꼭 와야 해요. 꼭이요!” 아이부터 공소 회장님까지 일정표가 붙은 날부터 벌써 신이 나 있습니다.
그렇게 신자들은 들뜬 마음으로 5월을 맞이합니다. 드디어 5월! 성모님께서 계획에 맞춰 자신들의 공소나 마을에 방문하시면,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성모님을 환영합니다. 먼저 각 마을의 추장급 어르신들이 동티모르의 전통 복장을 하고 마을 입구에서 성모님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성모님께서 오시면 동티모르의 전통문화에 따라 받아들이는 예식을 합니다. 북과 징, 꽹과리와 비슷한 것을 치며 주문을 외우듯 알아듣기 힘든 말들을 하며 성모님 방문을 알립니다.
그리고 추장급 어르신들의 받아들이는 예식이 끝나면 초등학교, 중학교 여학생들이 동티모르 여성 전통 복장을 하고 성모님을 환영합니다. 춤도 추고, 꽃잎도 뿌리며 성모님 방문을 환영합니다. 그것이 끝나면 고등학생이 성모님께 바치는 시를 읊습니다. 이 모든 의식은 마을 입구에서 행해집니다. 이러한 받아들이는 예식은 성모님뿐만 아니라, 주교님이 오셨을 때에도, 저희 수도회 총장님이 방문했을 때에도, 심지어 제가 가더라도 이렇게 의식을 행해주셨습니다. 이 의식은 오래전부터 자신들의 부족이 아닌 외부인이 부족에 찾아왔을 때 자신들 부족의 친구요, 형제요, 가족으로 받아들인다는 예식이고, 그러한 예식으로 성모님을 자신들의 마을에 받아들인다는 환영의 인사를 전통 방식으로 한 것입니다.
마을 전체가 성모님 방문 기뻐하고 환영해
이처럼 성모님 방문에 대한 마을 전체의 환영 인사는 아주 성대하고 장엄합니다. 그렇게 환영 인사가 끝나고 성모상을 공소 성당(마을 경당)에 모시면 기도와 찬양으로 성모님 방문을 기뻐합니다. 그리고 기도 찬양이 끝나면 그전 마을에서 성모님을 가마에 모시고 걸어왔던 이들, 또 함께 왔던 다른 모든 이에게 음식을 대접합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축제입니다. 주방에서는 계속해서 음식을 준비하고, 공소 성당(마을 경당)에는 기도와 찬양이 이어지도록 합니다. 그렇게 기도와 저녁 식사까지 마치면 마을 주민들이 함께 모여 동티모르 전통춤 ‘다홀’(Dahol)을 춥니다. 우리의 강강술래와 비슷합니다. 일단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그 음악의 리듬은 엉덩이를 가만히 두지 못하게 합니다. 실룩~ 실룩~! 어깨는 들썩들썩! 그리고 사람들이 손을 잡고 큰 원을 그리는데, 춤의 스텝은 몇 번 하다 보면 따라 할 수 있을 스텝입니다. 이 춤을 보통 자정까지, 때로는 새벽 4시까지 춥니다. 저도 그들과 함께 늦게까지 해보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들의 흥을 따라가기엔 제 흥이 받쳐주지 못했습니다. 저도 왕년에 스텝 좀 밟을 줄 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들의 흥을 따라가기엔 살짝, 아주 살짝 모자랐습니다. 하하.
기도하고 밥을 나눠 먹고, 밤늦게까지 춤을 추는 것은 성모님께서 머무시는 동안 매일 반복됩니다. 그리고 성모님이 그들의 마을을 떠나시는 날 오전 10시에 미사를 하며 성모 신심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합니다. 이제 미사가 끝났으니 성모님께서는 마을에서 떠나십니다. 그러나 떠나신다는 슬픔보다는, 성모님께서 다음 공소(마을)에 방문하실 수 있도록 모시고 갈 수 있다는 기쁨이 더 큽니다.
그래서 다음 마을로 걸어서 이동하는데 복사단이 선두를 섭니다. 그 뒤를 성모님이, 또 그 뒤를 신자들이 따르며 기도와 찬양으로 성모님 가시는 길에 함께 합니다. 짧게는 1시간, 길게는 3시간을 걸어갑니다. 그럼에도 기도가 끊이지 않고, 찬양이 끊이지 않습니다. 성모님의 이동 시간은 보통 낮 12시에서 3시 사이인데, 적도 부근의 강한 햇빛도 이들의 성모 신심을 녹이진 못합니다.
그렇게 다음 공소나 마을에 도착하면 또 각 마을의 추장급 어르신들이 동티모르 전통 복장을 입고 받아들이는 예식을 합니다. 이런 일정이 5월 한 달 동안 계속 이어지며, 성모님 방문 축일인 5월 31일에는 다시 본당으로 오셔서 모든 신자들과 함께 폐막 미사를 하며 성모 신심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합니다.
10월 묵주기도 성월엔 라멜라우 산에 올라
10월 묵주기도 성월에도 이와 비슷한데, 한가지 특별한 일정이 있다면 본당 차원이 아닌 교구 차원에서 모든 본당 신자들이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동티모르에서 가장 높은 산인 라멜라우산(해발 3000m, 산 정상에는 성모님 성상이 있다)을 새벽 2시에 함께 오른다는 것입니다. 성모님도 뵙고, 일출도 보고, 그리고 주교님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며 성모 신심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합니다.
5월과 10월의 모든 날, 온 존재를 봉헌하는 그들의 성모 신심에 동참하다 보면 제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제게 이렇게 질문하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온 존재를 다 한 성모 신심이 있는가?’, ‘성모 신심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바라보고 있는가?’
그리고 그들은 성모님 성월을 통해 제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 성모 신심은 축제이고요, 즐거움이고요, 기쁨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