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몽골 사목 방문- 8월 31일~9월 4일 울란바토르
프란치스코 교황이 2일(현지시간) 몽골 울란바토르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대성당 앞에서 신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울란바토르 지목구장 조르조 마렌고 추기경도 미소 지으며 신자들을 바라보고 있다. 채희준 작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3일 미사를 거행하기 위해 몽골 울란바토르 스텝 아레나로 들어서며 신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광주대교구장 옥현진 대주교가 3일 종교간 대화 모임이 열리는 몽골 울란바토르 훈 극장(HUN Theatre)에서 미소 지으며 엄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이용훈 주교, 옥현진·정순택 대주교, 문창우 주교.
한국 주교단, 형제애 나눠
교황의 사목 방문에 맞춰 현지에 한국 주교단과 함께한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는 교황의 몽골 방문은 “역사적으로 초유의 일”이라고 했다. 교황이 몸소 작은 공동체를 찾은 것이 몽골 교회에는 그 자체로 큰 선물이라는 것이다.
교황의 몽골 방문에는 한국 주교단이 함께하며 형제애를 나눴다. 이 주교를 비롯해 염수정 추기경과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 광주대교구장 옥현진 대주교, 인천교구장 정신철 주교, 제주교구장 문창우 주교, 대전교구 총대리 한정현 주교가 몽골을 찾았다.
한국 주교단은 3일 울란바토르 훈 극장에서 진행된 종교간 대화 모임에도 참석했다. 염 추기경은 “교황님은 몽골 전통 가옥인 게르에 들어가 진정한 손님의 모습으로 사람들과 만났다”며 “우정을 나누고 형제애를 나누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옥 대주교는 “교황님께서 발돋움하는 작은 공동체를 방문한 것은 몽골 교회에 새로운 힘을 선사하고자 하신 것”이라며 몽골 교회가 교황 방문을 통해 활기를 얻고, 역동적으로 성장하길 기원했다.
정신철 주교와 한정현 주교는 4일 자비의 집 축복식에 함께했다. 정 주교는 “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이 자비의 집 개관에 기여하게 돼 뜻깊다”며 “몽골 교회가 교황 방문을 통해 한층 성장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교황, 몽골서 한국 사제 언급한 이유는
“김성현 스테파노 신부를 기억하고 싶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일 울란바토르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대성당에서 대전교구 소속으로 20년 넘게 몽골에서 선교사로 사목한 고 김성현 신부(지난 5월 선종)를 언급했다. 교황은 “김 신부가 몽골에서 보여준 선교에 대한 열정을 기억하고 싶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 삶을 바쳤다”며 드높였다. 몽골의 사제와 수도자, 선교사의 체험담을 들은 뒤 애정 어린 조언을 건네면서 한 발언이다.
대전교구 총대리 한정현 주교는 “대전교구는 선교사들을 초창기부터 파견했기 때문에 감회가 남다르고 더 뜻깊게 느껴진다”며 “김 신부의 헌신과 정성, 봉헌들이 하느님 사랑 안에 큰 열매를 맺고 그 안에서 몽골 교회가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살아가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제주교구장 문창우 주교도 “교황님은 선교사들에 대한 큰 사랑을 갖고 오셨다”며 “특별히 김성현 신부에 대한 기억을 통해 선교사들의 마음을 끝까지 격려해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교황이 4일 축복한 ‘자비의 집’에도 김 신부의 흔적이 남아있다. 김 신부는 수녀회가 운영하던 학교가 이전하게 되자 그 공간을 자비의 집으로 만들 계획을 세웠다. 알코올 중독자 등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이들의 쉼터가 필요하다고 판단해서다. 김 신부는 몽골 울란바토르 지목구장 조르조 마렌고 추기경과 함께 교황 방문에 맞춰 개관을 목표로 준비 중이었다.
교황은 축복식에서 “자비의 집이란 이름이 정말 마음에 든다”며 “자비와 집, 이 두 단어는 모두가 환영받는 집이 되도록 부르심을 받은 교회의 정의를 담고 있다”고 했다. 김 신부를 따랐던 한국인 신자들도 이날 자비의 집을 찾아 그의 뜻을 재차 기렸다.
정순택 대주교 붙잡은 교황, WYD 준비 당부
교황이 정순택 대주교를 다시 붙잡은 장면은 눈길을 끌었다. 2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대성당에서 몽골 공동체와의 만남 뒤 주교단이 교황과 인사를 나누는 순간 펼쳐진 장면이다.
정 대주교는 교황을 만나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WYD) 개최 결정에 대해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정 대주교가 일어나려 하자, 교황은 정 대주교를 다시 붙잡았다.
교황은 “2014년 한국에서 열린 아시아청년대회가 기억에 남아있다”면서 “다음 WYD를 준비하려면 더욱 많은 일을 해야 할 것이다. 두 배로 일해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정 대주교는 “두 배 이상 일해서 더욱 잘 준비하겠다”고 화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대주교는 “21세기는 아시아 교회의 시대라 여기시는 것 같다”며 “한국 교회가 앞으로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교회가 200년 동안 많은 것을 받았기에 이젠 보편교회를 위해 한국 교회가 더 많이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3일 몽골 울란바토르 스텝아레나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일(현지시간) 몽골 울란바토르 대통령궁에 마련된 게르 모양의 회담장에서 오흐나 후렐수흐 몽골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OSV
프란치스코 교황이 2일 몽골 울란바토르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대성당 앞에 마련된 게르에 들어가 한 여성을 축복하고 있다.
교황의 시선은 왜 동방을 향하나
교황은 최근 ‘동방’, 즉 아시아 교회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 최초의 교황청 장관 추기경이 탄생했고, 몽골 교회에서도 추기경이 나왔다. 2027년 WYD 개최지로 서울을 지목한 데 이어, 변방 중의 변방인 몽골을 찾았다. 젊고 역동적인 동방의 아시아 교회가 유럽의 전통과 어우러져 더욱 거듭나길 바라는 교황의 마음이 담겼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반면, 동아시아는 평화의 사도 교황에게 걱정스러운 곳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중국의 대만 무력 침공 우려도 제기된다. 한반도에서는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가 고착화하면서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교회의 성장과 세계 평화의 관점에서 교황에게 ‘동아시아 교회’는 간과할 수 없는 지역이다.
중국, 러시아, 평화
교황이 몽골에서 전한 종교 자유에 대한 발언은 중국을, 평화 관련 발언은 러시아를 향한 메시지라는 분석이 나온다.
몽골은 중국,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이에 교황의 몽골 방문은 전부터 주목받았다. 교황이 이번에 방문한 곳곳에는 중국과 홍콩 교회 신자들도 함께해 큰 힘을 얻었다.
교황은 3일 울란바토르 스텝 아레나에서 거행된 미사 후 중국과 홍콩 신자들의 외침에 응답했다. 교황은 홍콩 교회 주교들을 소개하면서 “고귀한 중국 신자들에게 인사를 전하고 싶다. 중국의 신자들이 좋은 그리스도인이자 좋은 시민이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좋은 그리스도인 좋은 시민’ 표현은 공산주의 정부에 가톨릭 신자들에게 종교적 자유를 줄 때 사회에 더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한 발언이다. 교황은 종교 간 대화 모임에서도 일부 공산권 국가에서 종교를 왜곡하는 행위가 발생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드러냈다.
중국 베이징에서 선교 활동을 하는 이탈리아 출신 지오반니 신부(가명, 오블라띠선교수도회)는 “교황의 몽골 방문을 보며 큰 감동을 받았고, 희망을 볼 수 있었다”며 “중국에도 오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큰 바람을 가진다”고 전했다.
교황은 몽골의 핵 비확산 약속을 평가하면서 “전쟁의 먹구름이 걷히길 바란다”고 했다. 교황의 이같은 발언은 러시아를 향한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교황은 “만남과 대화를 통해 긴장이 해소되고 모든 사람의 기본권이 보장되는 보편적 형제애에 대한 확고한 열망으로 전쟁의 먹구름이 걷히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몽골 교회 초청으로 이날 미사에 함께한 팝페라 테너 임형주(대건 안드레아)씨는 미사 후 무대에 올라 ‘아베마리아’를 노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