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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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와 돌봄에 짓눌리는 청년들,,, 돌봄의 ‘짐’ 덜어주는 실질적 맞춤 정책 절실

[우리 가운데 계시도다] 가족돌봄청년 실태, 그리고 어떻게 도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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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한창 성장하거나 무르익은 시기에 있는 사람을 말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수십만 명으로 추정되지만, 통계에 잡히지 않은 채 어린 나이에 부양의 의무를 진 가족돌봄청년(영 케어러)의 삶은 그렇지 못하다.

“나는 병원에서 ‘보호자’로 불렸다. 공공기관에서 복지 지원을 받으려 할 때는 ‘대리자’이거나 ‘부양 의무자’였다. 주위에서는 심심찮게 ‘효자’로 부르기도 했다.”(조기현 「아빠의 아빠가 됐다」 중) 20살에 아버지가 쓰러져 ‘아빠의 아빠’가 된 가족돌봄청년 조기현 작가처럼 말이다.

우리 사회엔 조부모와 부모를 돌보는 젊은이, 형제와 가족 간병에 힘쓰느라 한창 나이에 자신의 미래를 어쩔 수 없이 꺾어버린 채 어렵게 가장, 보호자, 부양자로 살아가는 청년들이 많다. 가족돌봄청년들이다. 이들은 자신을 돌보기는커녕 돈과 일, 돌봄이라는 커다란 짐을 진 채 살아가고 있다. 가난한 이들 곁에서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본지 기획 ‘우리 가운데 계시도다’가 가족돌봄청년들의 이야기를 하려 한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박민규 기자 mk@cpbc.co.kr


 

바보의나눔 제공

 

알츠하이머 어머니와 암투병 아버지 돌보는 24살 한수씨 


정한수(가명, 24)씨의 어머니는 2년 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 그러다 아버지까지 식도암 진단을 받으면서 정씨의 가족 돌봄은 시작됐다. “아픈 가족을 돌보고 생계도 책임져야 했는데, 슬픔을 지닐 새도 없이 제대로 된 일조차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처음엔 마음이 아주 무거웠어요.”

정씨는 주로 야간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다. 낮 동안에는 부모를 돌봐야 했다. 밤 12시부터 오전 9시까지 일하고 낮에는 ‘부모의 부모 역할’을 하다 보니, 정씨 역시 조금씩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

하지만 그보다 더 힘든 건 주변 시선이었다. “부모가 이른 나이에 큰 병을 가지니까 주변에서 꾀병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어머니가 건망증도 심해지시자 주변에서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늘어나 무척 슬펐고, 저 또한 소외됐죠.”

고교 졸업 후 대학 진학을 하지 못한 정씨는 주변 친구들이 대학생이 되어 꿈을 좇는 모습을 보면 부러움이 밀려오다가도 다시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면 한없이 마음만 무너진다고 했다. “많이 지쳤어요. 부모님이 아프셔서 힘들고, 제 꿈에서는 점점 멀어지는 것 같고…. 요샌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좀 벗어나 쉬고 싶다는 생각뿐입니다.”



 

당뇨 할머니와 장애인 아버지 대신 가장 역할 하는 23살 지영씨 


이지영(가명, 23)씨는 초등학생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할머니, 아버지와 살고 있다. 하지만 할머니는 당뇨합병증으로 요양병원 입·퇴원을 반복했고, 지적장애 3급인 아버지는 파킨슨병까지 앓고 있어 거동이 불편하다. 조부모와 부모를 모두 돌봐야 하는 것은 온전히 이씨의 몫이다.

이씨가 가족 돌봄을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17살 때부터였다. 한창 또래와 어울리며 꿈을 키워야 하는 나이에 가장이 된 것이다. 부양이라는 부담이 이때부터 함께했다. “학교 끝나면 바로 집에 가야 하니까 친구들과 어울릴 수 없었어요. 집에 가야 마음이 편했죠. 할머니, 아빠 곁엔 제가 있어야 하니까요.”

경제활동도 손녀이자 딸인 이씨가 오롯이 감당해야 했다. 그러나 학생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르바이트뿐. 기초생활수급비와 아르바이트로 번 돈이 이씨 가족 생활비의 전부였다. 부족할 땐 곧잘 친척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당장 갚지는 못해도 이는 늘 마음의 빚으로 남았다.

친구들의 따돌림은 예견된 것이었을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받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소문이 퍼졌어요. ‘쟤는 집안이 우리와는 다르다’고요. 친구가 없진 않았는데, 전반적으로 친구들과 두루 친하게 지내진 못했어요. 위축되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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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에 지치다 
주당 평균 돌봄 21.6시간 
적어도 24개월 이상 돌봄 
가장·간병인 역할 모두 


삶의 질 저하 
우울감 일반 청년의 7배 
심리적 고통 매우 커  
미래 계획은 언감생심 
실질적 지원 거의 받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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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가족을 돌보는 시간

보건복지부가 올해 4월 ‘2022년 가족돌봄청년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가족돌봄청년들을 조사한 우리나라 첫 설문 결과가 나왔다. 13세~34세 4만 383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확인된 ‘가족돌봄청년’은 810명으로 나타났다.

실태조사에서 가족돌봄청년의 주당 평균 돌봄 시간은 21.6시간에 이르렀다. 이들이 희망하는 주당 돌봄 시간은 14.3시간이었지만, 실제 돌봄 시간은 7.3시간 더 많았다. 응답자들의 평균 돌봄 기간은 4년에 가까운 46.1개월이었고, 절반 이상이 24개월 이상 돌봄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 번 돌봄을 시작하면 오랜 기간 그 의무를 지속하는 것이다. 아울러 구체적인 돌봄 활동은 가사, 함께 시간 보내기, 병원 동행, 약 챙기기, 자기관리 돕기, 이동 돕기 등이었다. 많은 가족돌봄청년이 장기간 집안의 가장, 간병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돌봄 대상 가족은 할머니가 39.1로 가장 많았고, 형제·자매(25.5), 어머니(24.3), 아버지와 할아버지(22) 순이었다. 돌봄 대상자의 건강 상태는 중증질환이 25.7로 가장 많았다. 장애인(24.2), 정신질환(21.4), 장기요양 인정 등급(19.4), 치매(11.7)가 뒤를 이었다. 돌봄을 위해 지출하는 비용은 월평균 62만 3000원이었다.



구겨지는 삶

어린 나이에 짊어진 가정의 상황과 돌봄의 부담은 너무도 컸다. 가족돌봄청년은 육체적, 정신적 부담으로 일반 청년보다 삶의 만족도는 낮고 우울감은 높으며, 미래 계획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삶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가족돌봄청년은 22.2로, 일반 청년(10.0)보다 2배 많았다. 우울감 유병률의 경우 61.5로, 일반 청년(8.5)의 7배가 넘어 특히 심리적 고통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미래 계획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응답도 36.7에 달했다. 돌봄의 의무가 지금의 마음을 누르고, 미래를 꺾고 있는 것이다.

돌봄에 의해 꿈이 낙담이 돼버리는 현실에 사회가 함께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표도 있다. 가족돌봄청년 10명 중 4명은 복지 지원이나 돌봄서비스 등을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족돌봄청년의 40.7는 의료비나 생계비, 주거비 지원 등을 받지 못했고, 47.3는 가정방문이나 시설이용, 이동지원 등의 서비스를 이용한 적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가족돌봄청년의 삶의 질이 저하되는 상황에는 이들을 향한 사회 무관심 또한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보인다. 또 실질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돌봄의 사각지대, 가족돌봄청년

돌봄의 짐을 사회가 함께 덜어줄 수는 없을까. 호남대 사회복지학과 좌현숙(효주 아녜스) 교수는 “가족돌봄청년들은 현재와 미래 모두 저당 잡힌 채 살아가는 이들”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많은 가족돌봄청년이 단기 아르바이트나 저숙련 비전문 노동을 맴돌면서 배움의 기회와 시기를 놓치고, 이에 따라 또래보다 심리적 건강과 개인 역량에 계속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래와의 틈은 점점 벌어지고, 건강한 청년으로 살아가기 힘든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는 환경에 있다.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이봉주 교수는 “학생, 청년의 시기에 가족을 전적으로 돌본다는 것은 현실의 고달픔도 있지만, 미래를 위한 기회가 제한되는 굴레에 빠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대 대학원 사회복지학과 김윤태 교수도 “우리 사회 여러 형태의 어려움을 겪는 이웃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족돌봄청년들은 오늘날 대표적인 ‘돌봄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이라고 거듭 일깨웠다.

정부 실태조사에서 확인된 가족돌봄청년은 810명. 조사 대상 4만 3832명의 1.8 수준인데, 영국 8, 유럽 5~8, 일본 4~5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다. 이에 대해 좌현숙 교수는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강조돼온 충효사상으로 인해 가족을 돌보는 학생들을 착한 아이, 효자, 효녀 정도로 취급해온 게 현실”이라면서 “당사자들도 이런 어려움을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면서 가족돌봄청년이라는 개념 자체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통계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우리 사회가 돌봄의 사각지대에 있는 가족돌봄청년을 적극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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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의 짐 함께 나눠져야 
효 사상에 가려진 어려움과 고충 커 
건강한 청년으로 성장할 기회 줘야 
실질적인 지원과 제도 확충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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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높이에 맞는 대책 필요

정부의 이번 가족돌봄청년 실태조사는 우리 사회가 이들에 대해 처음 주목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관심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부는 올해 하반기부터 가족돌봄청년(만 13세~34세)에게 12개 시·도의 37개 시·군·구를 통해 일상돌봄 서비스를 지원할 계획이다. 가정방문 돌봄과 가사서비스, 병원 동행과 식사·영양 관리, 심리 지원, 건강생활 지원, 간병교육 등 지방자치단체별로 특화된 서비스도 제공할 예정이다.

좌현숙 교수는 “최근 서울시와 보건복지부가 가족돌봄청년의 경제적, 정신적 어려움 등 22개 어려움 유형으로 나눠 조사했다”면서 “하지만 이같은 생계 및 돌봄 지원에 관해 ‘잘 모른다’는 응답이 76.4로 나타나 상당수 가족돌봄청년이 어떤 제도가 있는지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좌 교수는 “현재 정부가 내놓은 지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장기적으로 3자 관계, 곧 돌봄을 주고받는 과정을 돌봐주는 사람 지원이나 관련 제도 또한 확충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봉주 교수는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들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돌봄을 받는 노인이 장기요양 대상이 되기 위해선 등급 기준이 엄격한데, 이 때문에 실질적인 도움을 받기도 쉽지 않고, 결국 오롯이 가족돌봄청년들이 짊어져야 하는 무게가 되고 있다”며 “돌봄 문제를 사회적 책임으로 부각해 가족돌봄청년들이 실질적인 지원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입법조사처 허민숙 입법조사연구관은 “관련 제도가 있으니 신청하라고 안내만 할 것이 아니라, 가족돌봄청년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 연구관은 “특히 청소년, 청년 관련 지원의 경우, 또래와 비슷한 삶의 수준을 살도록 돕는 것이 가장 좋은 정책”이라며 “돌봄에 투자하는 시간을 덜어주는 형태가 좋은 제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례 관리사와 같은 전문가들이 가족돌봄청년들 곁에서 경청하고, 그들에게 맞는 지원을 적용해 나가야 한다”고 전했다.



가족돌봄청년 지원, 해외는?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해 내놓은 ‘해외 영 케어러 지원제도와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다음과 같다. 

영국 -최소 35시간 돌봄서비스 제공 
영국은 2014년 ‘아동 및 가족법’을 제정해 지방 정부가 반드시 지역 내 가족돌봄청년의 현황을 파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률에 따라 지방 정부는 도움이 필요한 가족돌봄청년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합리적 노력을 반드시 기울여야 한다. 또 만 16세 이상으로 다른 사람에게 주당 최소 35시간의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 간병인 수당도 지급한다.

아일랜드-고립 방지, 학업 지원
아일랜드에서는 ‘케어러 웰빙리뷰’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가족돌봄청년의 돌봄 역할, 자신을 위한 시간, 가정생활, 경제적 어려움, 평소 감정, 건강, 학업 또는 근로 상황을 파악하고, 그들의 고립을 방지하기 위해 가족돌봄청년 그룹을 운영하기도 한다. 또 도서구매, 온라인 강의, 여가와 운동시설 등을 이용할 경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영 케어러 카드’를 발급해주고 있다.

오스트리아-상담과 맞춤 서비스 제공
오스트리아는 온라인 플랫폼 ‘수퍼핸즈’를 통해 가족돌봄청년에게 법률 상담, 질병 등 의료정보 제공, 일상운영, 응급상황에 대한 정보 등을 제공한다. 수퍼핸즈는 가족돌봄청년이 마주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가정하고, 사안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고, 어디서 도움받을 수 있는지 상세히 안내하고 있다.

호주-청년수당 지급
호주의 경우, 25세 미만의 전일제 학생 또는 수습생에게는 청소년 수당을 지급한다. 12~25세 가족돌봄청년은 학비보조 프로그램의 지원도 받는 등 그들의 삶과 직결된 촘촘한 지원으로 가족돌봄청년의 삶을 국가와 정부 차원에서 돕고 있다.



돌봄의 사회화 인식 필요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 전반에 우선 ‘돌봄의 사회화’에 대한 인식이 뿌리내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좌현숙 교수는 “돌봄은 내 가족, 지역 사회, 공동체가 잘 유지되기 위해 구성원으로서 함께 지녀야 할 의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며 “돌봄이 시장의 원리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돌봄 받을 권리가 있고 필요하면 나도 돌봄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는 인식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봉주 교수도 “돌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며 “돌봄에 대한 문제를 사회 공동체가 함께 바라보고, 해결해야 한다는 자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바보의나눔(이사장 손희송 주교)은 2022년 11월 9일부터 2023년 6월 26일까지 약 7개월간 가족돌봄청년을 지원하기 위한 ‘이른 돌봄’ 캠페인을 진행했다. 그 결과 총 2억 236만 46원이 모였고, 결제수수료를 제외한 2억 162만 3837원이 가족돌봄청년 지원을 위해 한국사회복지관협회에 전달됐다.
바보의나눔 사무총장 우창원 신부는 “교회 내 본당 차원에서 가족돌봄청년들이 경제활동을 하는 시간에 해당 가정을 방문하는 등의 사목이 마련된다면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교회, 본당의 관심과 지원이 가족돌봄청년들을 위한 밑바탕 역할을 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박민규 기자 mk@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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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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