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의정부교구 동두천본당과 동두천 국제 가톨릭 공동체(DICC)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을 앞둔 14일, 한자리에 모인 동두천본당 주임 이종원(맨 왼쪽) 신부와 DICC 책임자 클레멘트(오른쪽에서 두 번째) 신부, 박성한(맨 오른쪽) 사목회장, DICC 나이지리아 대표 존씨가 공동체 안에서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전하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한 지붕 두 식구
동두천본당은 이주민특성화 본당이다. 이곳에서 케냐 출신의 꼰솔라따 선교 수도회 소속 클레멘트 신부가 DICC 책임자로 함께 사목 중이다. 본당 신자와 DICC 소속 이주민의 주일 미사는 따로 봉헌된다. 하지만 본당 행사, 성삼일, 대축일과 같은 주요 전례 때에는 함께하고 있다. 본당 이주사목분과를 매개로 일상에서의 크고 작은 소통도 꾸준히 이어가며 함께 성장 중이다.
이는 동두천의 지역적 특성에 기인한다. 1952년 주한미군 기지가 동두천시 보산동에 들어와 한때 미군 4만여 명이 거주한 곳이 이 지역이다. 미등록 외국인들은 미군 부대가 있어 살기 안전하다고 여겼고, 집값도 비교적 저렴해 모여들기 시작했다. 현재(9월 14일 기준) 보산동 인구 3691명 중 외국인이 950명으로, 4명 중 1명 이상이 이주민이다.
본당은 이주사목의 필요성을 크게 느꼈다. 이에 2012년 꼰솔라따 선교 수도회 타므랏 신부가 교구의 승인을 받아 본당에서 외국인 미사를 봉헌하면서 DICC 활동이 시작됐다. 현재 DICC에는 나이지리아, 케냐, 남아공, 우간다 등 아프리카인들부터 필리핀, 인도, 동티모르, 스리랑카, 파키스탄, 일본, 쿠바, 에콰도르 등 각지에서 온 수많은 이주민이 활동하고 있다. 최근엔 아이티 난민들도 들어왔다. 이 중 이주민 100여 명이 DICC 주일 미사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DICC는 자체적으로 이주민 사목회를 구성해 전례와 성가대, 가정 방문 활동 등으로 일치를 이루고 있다. 나아가 본당 봉사자들과 협력해 의료지원이 필요한 이주민과 난민을 돌보는 라파엘 클리닉, 무료 한글반을 운영하고 있다. 신자가 아닌 이주민에게도 문을 활짝 열어둬 본당은 지역 이주민의 신앙과 문화의 거점이 되고 있다.
동두천본당과 DICC 신자들이 주님 부활 대축일 맞이 성당 대청소를 하고 있다. 동두천본당 제공
현실의 벽 높지만 10여년 노력 쌓여
이주민들은 본당과 지역 공동체 안에서 한데 어울려 살아가는 이상을 꿈꾸지만, 현실이 그리 녹록지만은 않다.
DICC 나이지리아 대표 존씨는 경제적 이유로 2008년 한국으로 건너와 현재 세 아이의 가장으로 살고 있다. 전문 능력도 갖췄지만, 한국에선 이를 살릴 길이 없어 공장에서 단순 노동을 해야만 했다. 이주민의 상황은 대부분 비슷하다. 경제적 빈곤, 내전, 기후위기 등으로 어쩔 수 없이 조국을 떠나지만, 정착지에서도 상당수가 낯선 이방인으로 산다. 노동 강도도 높고, 임금 체불도 겪는다. 이종원 신부는 “부임한 지 반년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가장 많이 본 일이 떼인 돈 받아내는 일일 정도”라며 “이러한 차별은 여러 악순환을 낳는다”고 지적했다.
공장에서는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끼리 묶어 작업을 시키다 보니 일에 매달리다 보면 언어를 배우기도 매우 어렵다. 이는 정착에 큰 걸림돌이다. 사업주가 서류를 조작해 부당한 처우로 이어지기도 한다. 한국 정착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존씨가 아직 한국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이 문제는 자녀들에게 대물림된다. 자녀들은 어릴 때부터 한국인 또래와 어울리면서 모국어를 잘 쓰지 못하고, 사춘기 이후엔 부모와 소통이 단절돼 버리기도 한다. 또 한국에서 태어난 이주민 자녀 중에는 어느 나라 국적도 갖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들에겐 보험 적용도 안 돼 아파도 병원에 갈 수조차 없다.
이 신부는 “본당 차원에서 도울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지원하면서도, 긴 호흡으로 큰 방향과 흐름을 갖고 이들의 삶을 지원하고자 노력 중”이라며 “DICC와 10년 넘게 잡아온 방향 안에서 함께 헤쳐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복사단 캠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학생들. 동두천본당 제공
성목요일 발씻김 예식에서 DICC 클레멘트 신부가 본당 신자의 발에 입을 맞추고 있다. 동두천본당 제공
한 지붕 한 식구, 함께 걸어가는 여정
본당 공동체는 이주민에게 차별 없는 시선으로 다가가며 그들을 보듬고 있다. 교구 차원의 지원과 그간 본당 사목자들의 노력, 교우들의 응답이라는 ‘이주민 환대의 삼박자’가 맞아 떨어져, 동두천본당에서 이주민은 한 식구로 자리매김했다.
박성한 사목회장은 “문화와 언어, 피부색이 다르지만, 모두 같은 하느님의 자녀라는 인식만 잘 갖추고 있으면 형제자매로 받아들이게 된다”며 한 지붕 안에서 공존이 가능한 이유를 신앙에서 찾았다. 또 “과거 우리나라가 어려웠던 시절 독일과 미국, 중동 등 낯선 이국땅에서 고된 생활을 겪었던 윗세대들을 생각하면, 지금 우리 앞의 이주민을 결코 함부로 대할 수 없다”며 그들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이유를 전했다.
이같은 배려에 DICC 이주민들도 청소부터 물품 구입 등 본당에 필요한 일이 생기면 함께 발 벗고 나선다. 특히 코로나19 시기 DICC는 자체적으로 성금을 모아 동두천시에 100만 원을 기부했고, 보건소에도 50만 원 상당의 물품을 전하며 이웃사랑을 실천했다.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은 이주민을 선별소로 안내하고, 간호사와 이주민의 통역자도 돼줬다. 당시 타므랏 신부는 DICC를 대표해 ‘외국인 코로나19 검사 선제대응 유공자’ 시장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대림 시기에는 본당과 DICC 미사 때 2차 헌금을 걷어 공동으로 주변 어려운 이웃들에게 물품을 전달하며 성탄의 기쁨을 나누는 전통도 이어오고 있다. 이처럼 이주민들은 받기만 하지 않고, 소외된 선주민을 도우며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고 있다.
클레멘트 신부는 “이주민과 선주민이 서로 필요한 부분을 돕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드는 게 꿈인데, 이미 이뤄지고 있는 셈”이라며 “소통의 문제, 문화의 차이가 존재해도 본당 사제와 신자들이 차별 없이 이주민을 대하고 함께하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밝혔다.
존씨도 “DICC와 본당 교우들 덕분에 긴 시간 낯선 땅에서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이주민을 시혜의 대상으로만 볼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며 “사회 분위기에 휘둘리지 않고 지금처럼 이 자리에서 지역 공동체 속 본당의 역할을 이어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또 “계속 늘어나는 이주민과 줄어드는 선주민의 상황을 보곤, 한국어 미사가 특별 미사가 되는 경우도 생각하게 된다”며 “이는 교회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해 봐야 할 문제”라고도 말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