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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38) 시스템 안에 갇힌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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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일입니다. H는 한밤중 부대 내, 건물 난간에 목을 매 자살 시도를 했다가 장교에게 발각되어 미수에 그쳤습니다. 며칠간 병원 치료를 받고 또 다른 장교의 손에 이끌려 제가 있는 곳으로 와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H는 부대 내에서 스트레스가 많았고 힘들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죽음에 대한 분명한 의지는 없었는데 자신도 모르게 목을 매고 자살을 시도했다고 말했습니다. 힘들어도 자신이 이 정도는 견뎌내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일하다가 ‘난 왜 이렇게 살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엄습했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일하는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H는 자신도 모르게 본청 건물로 가서 어디선가 구한 노끈을 이용해 죽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대학생이었던 H는 가급적 늦게 입대를 생각하고 있다가 아버지가 직장에서 해고되면서 학업을 중단하고 갑작스럽게 군에 오게 됐습니다. 남들 다 가는 군대라고 생각했고 처음에는 힘들어도 시간이 지나면 군 생활에도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입대 직후부터 부적응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경비소대에 있다가 적응을 못하자 소대장이 H를 경리요원으로 자리를 옮겨주었습니다. 그러나 경리 일도 실수가 생겼고 선임으로부터 자주 혼나면서 크게 좌절하고 음식도 돌같이 느껴져 제대로 식사하기조차 어려울 정도가 되었습니다.
H는 남은 1년 이상을 이렇게 부대 내에서 산다면 감당할 수 없을 것이고, 자신이 더는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선임의 비난이 거세지는 상황에서도 H는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완벽한 존재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H는 학교에서 항상 1등을 유지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었고 스스로를 누구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군대에서 이렇게 비난받는 존재가 돼버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H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살아야 할 의미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자꾸만 부정적인 생각이 많아지고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되면서 나중에는 자포자기하는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H는 맡은 일만 완벽하게 수행하면 선임들의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밤늦게까지 일에 매달렸습니다. 그러나 선임들은 일뿐만 아니라 H의 생김새, 말투, 행동, 그리고 가족까지 포함해서 H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공격하면서 인격적인 훼손을 가했습니다. H는 죽음을 떠올리면서 동시에 군대라는 시스템 안에서는 개인의 선택이나 의지만으로는 자신이 지향하는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상담을 통해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찾은 후에야 H는 자신이 선임들에 대한 복수의 일환으로 자살 행동을 했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자살 행동이 미성숙하고 퇴행적인 행동이었음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무의식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벗어날 수 없는 폐쇄형 구조에서 어쩌면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이득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평상시에는 자신이 그런 마음을 품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오직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고 했습니다.

황순찬 베드로 교수
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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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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