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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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청년들, 역사 마주하고 평화 향해 ‘성큼’

2023 평화문화제 한국·일본 청년이 함께 본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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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평화문화제’에 참가한 한국과 일본의 젊은이들이 평화에 대한 각자의 고민과 바람을 나누고 있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젊은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평화’를 노래했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소장 강주석 신부)와 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 강주석 신부)는 9월 22~24일 파주 민족화해센터와 의정부교구 백석동성당에서 ‘2023 평화문화제 - 전쟁을 넘어 평화의 노래를’을 개최했다.

양국 젊은이들은 2박 3일간 평화 교육과 평화콘서트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평화에 대한 시야를 넓혔다. 특히 양국의 시선에서 각기 한반도 평화, 나아가 동북아 평화를 깊이 숙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북한이탈주민과 수도자들도 참여해 의미를 더했고, 이주민들도 떼제 기도회에 함께하며 다양한 이들이 노래하는 평화가 한데 어우러졌다.



가까워지는 평화, 한일 젊은이들의 만남

대면 만남이 제한됐던 코로나19 시기, 한일 젊은이들은 일본 예수회 나카이 준 신부의 제안으로 온라인 모임 ‘피크닉’을 처음 만들었다. 격월마다 만나 함께 기도하고 공부하고, 음악도 들으며 교류를 이어갔다. 그렇게 2년 넘게 온라인에서만 만나다가 지난해 첫 대면 만남의 시간도 가졌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는 양국 젊은이들 만남에 깊이를 더해주고자 ‘평화문화제’란 이름으로 이번에 정식 모임을 개최했다. 한국 청년 18명, 일본 청년 14명이 참가해 평화에 대한 다양한 개념을 나누고 체험하며 공동의 가치를 형성했다.

강주석 신부는 “평화문화제는 한일 간의 직접적인 관계를 다루는 모임이라기보다 양국의 젊은이들이 주체가 돼 평화를 바라보는 자리”라며 “특히 올해는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에 대해 깊이 숙고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나카이 준 신부는 “일본은 한반도 분단에 큰 영향을 끼친 당사자라고 할 수 있다”며 “지난 5월 히로시마교구장 시라하마 미츠루 주교는 일본이 시작한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은 한국인들과 한반도 분단의 아픔에 대해 미안하다고 거듭 사죄의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이어 “이번 모임에서 일본 젊은이들이 한반도 분단의 현장을 한국 젊은이들과 함께 바라보며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또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평화에 대한 새로운 시선도 생기길 바라는 기대를 안고 왔다”고 말했다.
 

평화문화제 둘째 날인 23일, 북한군 묘지를 방문해 나카이 준 신부 주례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청년과 한반도 평화

평화문화제의 공식 프로그램은 첫째 날인 9월 22일 ㈔피스모모 문아영 대표의 평화 교육을 시작으로 마지막 날인 24일 북한대학원대학교 김성경 교수의 평화 토크 콘서트로 마무리됐다. 문 대표는 참가자들이 서로에 대한 이해와 협력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이끄는 퍼포먼스를 통해 평화의 가치를 나눴고, 김 교수는 한국 사회 안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청년의 현실을 꼬집었다.

특히 문 대표와 김 교수 모두 국가 간 전쟁이 없는 상태를 ‘소극적인 평화’, 폭력적인 사회구조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를 ‘적극적 평화’라고 정의한 요한 갈퉁(Johan Galtung)의 평화론을 거듭 강조했다. 김 교수는 “구조적 폭력 중에서도 징병제, 정치적 양극화, 이데올로기 갈등을 일으키는 분단의 상황이 청년의 삶을 옥죄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한반도 평화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지금까지 시도한 모든 방법은 심각한 문제점들을 낳았다”며 “새로운 상상력이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일본 참가자 나가야마 모모코씨는 “이번 모임 자체가 평화를 향한 새로운 상상력, 창의적인 해법의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했다. 그러면서 “서로가 만났다는 사실만으로 평화의 씨앗이 심어진 게 아닐까 생각한다”며 “이번 문화제 참가로 더 깊은 차원의 평화와 희망을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름 없는 북한군 묘비를 손으로 닦고 있는 일본인 참가자. 


희망의 멜로디

참가자들은 둘째 날인 9월 23일 DMZ 평화순례를 하며 분단의 현장을 확인했다. 오두산 전망대를 찾아 손에 닿을 듯 바로 강 건너 보이는 북한을 바라봤고, 북한군 묘지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강 신부는 “북한군 묘지는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는 소외된 곳이고, 복음의 가르침에 따라 용서와 화해를 실천하는 차원에서 함께 방문했다”고 전했다.

미사 주례와 강론은 나카이 준 신부가 맡았다. 일본 내에서 여전히 차별받는 조선학교 학생들의 인권 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는 그는 “한반도와 동아시아, 난민 이주 문제까지 모든 사안이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보게 된다”며 “한국 신부, 신자들과 협력해 돕는 과정에서 함께하고 있다는 희망을 다시금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하느님의 커다란 계획을 믿으면서 함께 손을 잡고 희망의 멜로디를 연주해가자”고 강조했다.

순례 후 참가자들은 참회와속죄의성당에서 이주민들과 함께 떼제 기도를 봉헌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더 많은 이웃과 하나 되고자 하는 취지에서 마련된 하나 된 기도의 자리다. 떼제 공동체 신한열(프란치스코) 수사 주도로 한국어, 일어, 영어로 번갈아 노래하며 화합의 시간을 가졌고, 기도회 말미에는 젊은이 각자의 소망이 적힌 ‘평화 리본’을 작은 나무에 걸며, 평화의 뜻을 한데 모았다.



한일 청년들, 평화를 말하다

한일 청년들은 평화의 시작점을 ‘만남’에서 찾았다.

박건우(가브리엘)씨는 “본당 발달장애인 주일학교 교사로 10년간 활동하고 있는데, 평화라는 것이 당장 가시화되기 힘들다는 현실 또한 자각하고 있다”며 “하지만 우리의 만남은 시작됐고, 오랫동안 지속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한이탈주민 심옥경씨 역시 “모든 것은 만남에서 시작된다”며 “평화를 함께 고민한 자리에 함께한 것만으로 우리들 안에서의 평화를 향한 진전이 됐으리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는 일정 안에서 청년들과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이 주교는 “서로의 역사를 알고 문화를 알아가는 차원에서 교류는 정말 중요하다”며 “계속 모임을 이어가길 바라며, 적극 지원하겠다”고 격려했다.

청년들은 각자의 상황 안에서 평화를 깊이 숙고했다. 하네즈카 타케르씨는 한센인들이 거주하는 경남 산청 성심원을 우연히 알게 돼 한국으로 건너와 어르신들의 말벗이 돼주는 봉사를 하고 있다. 그는 “6·25 전쟁을 경험했던 어르신도 있고, 일본이 조선을 지배했던 시기의 기억을 아직도 갖고 있는 어르신도 있다”며 “매일 어르신들과 역사를 돌아보고 있고, 이번 모임으로 더 깊은 차원의 평화를 성찰했다. 평화는 공감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마츠모토 미카씨도 “분단된 한반도를 눈으로 보고 평화는 어떤 상황이 아니라 만들어 나가는 과정으로 여겨졌다”며 “그 과정과 아픔에 공감하는 마음도 평화를 향해 나아가는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나가야마 모모코씨는 “그간 일본에서 한반도 평화를 말하는 것은 암묵적으로 금기시 된 분위기가 있어 깊이 성찰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라며 “한 가족이 분단된 한반도의 상황을 보면서 서로 교류를 통해 가까운 차원에서부터 평화를 실천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전했다.

청년들은 신앙 안에서 모두가 하나라는 정체성도 되새겼다.

신나리(젬마)씨는 “가톨릭교회가 자리 잡기 힘든 일본의 복음화 현실을 들으며 우리의 믿음도 돌아보고 평화의 가치도 고민했다”며 “일본 관련 사회, 역사적 이슈가 또 일어나면 앞으로는 신앙 안에서 보다 깊은 차원의 고민을 하게 될 것 같다”고 밝혔다.

김대하(베드로)씨는 “이 모임을 계기로 남북한과 일본, 나아가 전 세계 청년들이 한자리에 모여 같은 하느님 자녀라는 정체성을 나누고, 평화와 화해, 용서의 가치를 교류하는 장을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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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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