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0일 국회에서 ‘출생통보제 이후 보편적 출생등록 제도 도입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국내에 거주하는 모든 아동이 출생과 동시에 인간으로서 권리를 보장받도록 “보편적 출생등록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출생신고 없이 버려지거나 사망하는 ‘유령 영아’ 발생을 막기 위해 ‘출생통보제’가 내년 7월부터 시행되지만, 여전히 사각지대에 있는 미등록 이주아동과 혼인 외 출생 아동을 보호할 장치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9월 20일 국회에서 열린 ‘출생통보제 이후 보편적 출생등록 제도 도입을 위한 토론회’에서는 국내 약 20만 명으로 추정되는 미등록 이주아동에 주목했다. 국내 체류기간이 지났거나, 불법 체류 중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출생신고를 못 한 아이들이다. 출생통보제를 담은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은 ‘국민’만을 대상(제1조)으로 하고 있어 이에 포함되지 않는 미등록 이주아동과 같은 ‘유령 아동’들에 대한 보편적 조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주민 인권 단체들은 물론, 교회 또한 이 사안에 주목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영주 의원(국회부의장)은 “미등록 이주아동은 서류상 존재를 입증할 수 없어 공적 지원 등 혜택을 받을 수 없고, 건강보험에도 가입할 수 없어 감기약 처방에도 최소 5만 원이 넘는 비용을 감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보편적출생신고네트워크 김진 변호사도 “법과 제도가 아동의 다양한 권리를 명시해도 존재가 확인되지 않으면 누릴 수 없다”며 “이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통장과 휴대폰도 개설할 수 없고, 심지어 생을 마친 뒤 사망신고도 할 수 없다. 여권을 만들 수 없어 본국에 돌아가지도 못해 평생 ‘있지만 없는’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19조에 의해 국내 거주 사실이 확인되면 학교 교육을 받을 수 있지만, 불법 체류 중인 사정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 교육에도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 위원 정진성 교수는 “1978년 인종차별철폐협약에 가입한 한국은 보편적 출생신고를 속히 정비하라는 권고를 받았고, 이를 따를 법적 의무가 있다”며 “폐쇄적인 투르크메니스탄조차 불법 신분의 외국인이 강제 퇴출의 위험 없이 출생신고를 하도록 정책이 완비돼 있다”고 지적했다.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법무담당관 이탁건 변호사는 “유엔 기구가 채택한 출생 등록의 필수 요소를 보면, 출생 등록은 지속적으로 진행돼야 하고, 수집된 정보는 영구 저장돼야 한다고 나와 있다”며 “출생등록제가 부모의 신분, 지위와 관계없이 자녀가 태어난 즉시 이뤄지도록 차별 없이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부모가 박해 등으로 본국 공관을 통해 자녀의 국적을 증명하거나 출생신고하기 어려운 경우엔 “아동의 국적을 신고서에 생략할 수 있는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며 “다만, 부모의 이름과 국적이 누락돼서는 안 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주무부처인 법무부 측은 이날 “미등록 이주아동의 출생 등록 필요성에 깊이 공감한다”면서도 “출생 등록이 국적 취득으로 발전해 본래 부모의 국적을 따르도록 하는 우리나라의 ‘속인주의’가, 출생국의 국적을 받는 ‘속지주의’로 변질돼 미등록 외국인이 늘어날 수 있다는 국민 우려가 있다”며 “다양한 의견을 고려해 합리적인 의견을 개진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토론회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국적 취득은 미등록 이주아동이 성인이 됐을 때 고려할 문제이지, 가장 시급한 건 출생신고조차 되지 않아 최소한의 권리도 누리지 못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전혜경 대표는 폐회사에서 “출생 등록은 여러 유엔 인권조약에서 명시하고 있는 아동의 기본권”이라며 “출생등록제도가 아동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방향으로 나아갈 가장 적합한 시기는 바로 지금”이라고 당부했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