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과 사회 초년생들이 선호하는 대학가 주변인 대전 대덕구 중리동의 한 다세대주택. 초인종을 누르자 푸른 눈의 여성 두 명이 나와 가을 하늘처럼 맑은 미소로 반겼다. 로랑스 바써르(54)씨와 마리아 마토스(44)씨다. 이들은 ‘하느님 자비 복음의 종 선교회’ 한국공동체 선교사로, 주님께 자신의 삶을 오롯이 바친 봉헌 생활자들이다. 전교 주일(22일)을 맞아 10년 넘게 한국살이 중인 두 사람을 공동체 선교센터에서 만났다.
물질적 풍요 속 행복 부재한 한국 현실 지적
“한국 신자들은 공부도 많이 하고, 아는 것도 많죠. 그런데 신앙 덕에 삶이 ‘행복하다’는 사람은 드문 것 같아요. 하느님 사랑이 정말 기쁜 소식이라는 것을 더 많이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이게 저희가 활동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선교회 한국공동체 설립 주역인 로랑스 선교사가 환한 얼굴로 선교 활동의 의미를 재차 밝혔다. 그는 2006년 다른 선교사 두 명과 함께 대전교구에서 맨손으로 공동체를 시작했다. 마리아 선교사는 2011년 합류했다.
꼭 어려운 지역에서 선교 활동하는 이들이 선교사라 여기지 마시라. 이들은 한국 생활과 문화 안에서, 하느님을 전하는 ‘주님의 일꾼’들이다. 하느님 자비 복음의 종 선교사들은 맨 먼저 교회 미래인 청년 선교에 큰 관심을 뒀다. 대전교구 가톨릭대학생협의회에서 기도 모임을 열고, 교리 교육을 하며 영적 동반자를 자처했다. 곧이어 국제교류 친교 봉사활동과 선교 모임도 시작했다. 하느님 자비 안에서 용서와 화해를 구하는 한국·일본 청년 교류도 마련했다.
2015년 자비의 희년 개막을 계기로 선교회 카리스마를 살려 ‘자비의 선교사 학교’도 열었다. 여기에 평신도는 물론, 젊은 사제와 수도자 모두 입학했다. 하느님의 사랑을 진실로 체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교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 사랑을 만난 그리스도인은 모두 선교사입니다.”(「복음의 기쁨」, 120항)
모두 한국을 자발적으로 찾아 활동 중인 이들 선교사가 이룬 선교적 업적이다. 이러한 노력을 본 교구가 다세대주택을 무상으로 빌려줬다. 지금의 선교센터다. 단칸방에서 출발한 공동체에는 그야말로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선교사들은 곧장 센터 2층을 개성이 한껏 드러나는 특별한 공간으로 꾸몄다. 한옥 모양의 감실과 황토로 빚은 성모자상이 있는 아늑한 분위기의 성체조배실이다. 흰색 한지를 곱게 바른 창문에는 태평양을 중심으로 한 세계 지도가 그려져 있다. 지도 왼편 끝자락에 위치한 유럽 대륙, 그중에서도 서쪽이 바로 선교사들의 고향이다.
영적 고아들이 하느님 사랑 느끼길
로랑스 선교사는 벨기에의 작은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남 부러울 것 없이 행복하게 살던 그는 15살에 인생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이다.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팠고, 삶의 의욕과 방향도 잃었다. 그러다 대학에서 스페인어를 배우면서 변화가 찾아왔다. 중남미 유학생들과 함께 살며 학업을 도와주면서 큰 보람과 활력을 느꼈다. 그런 그를 눈여겨본 한 선교사의 초대를 받아 스페인으로 피정을 가게 됐다. 곧 인생에서 가장 무겁고 긴 기도가 이어졌다.
“아버지를 너무나도 빨리 데려가신 하느님이 줄곧 원망스러웠어요. 오랜만에 기도하며 그분과 정말 많이 싸웠죠. 그리고 성경을 펼쳤는데 신기하게도 한 구절이 눈에 확 들어왔어요.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요한 14,18)였습니다. 주님이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었죠. 비로소 저는 주님과 화해할 수 있었어요.”
동시에 로랑스 선교사는 그동안 자신이 ‘영적 고아’로 살아왔음을 깨달았다. 아버지의 죽음을 이유로 스스로 만든 족쇄에 묶여 하느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잊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나 말고도 얼마나 많은 영적 고아들이 외롭고 고통스럽게 살고 있을까. 그들을 돕고 싶다.’ 마침내 그는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영적 고아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동행하는 선교사였다.
자살률 높은 한국 돕기 위해 선교 지원
스페인 출신 마리아 선교사는 자살률이 높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움이 되고자 한국행을 자원했다. 그는 태생이 가난하고 약한 사람 돕기를 좋아했다. 간호사가 돼 훗날 아프리카나 남미에서 국경없는의사회와 일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런데 간호학과 마지막 학년에 겪은 신기한 체험이 그를 결국 선교사의 길로 이끌었다. 피정에서 미사를 드리던 때였다. ‘나보다 너를 더 사랑할 이는 없다’는 성가 가사를 부르는데, 갑자기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마리아야, 난 너를 사랑한단다.”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한 순간이었다.
그 뒤로 자신을 괴롭혔던 부정적인 감정이나 마음의 상처들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마리아 선교사는 주님 사랑으로 영적 치유를 받은 것이라고 확신했다. 간호사 자격증을 딴 그는 수도 마드리드의 큰 병원에서 일하게 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진정한 사명은 따로 있을 것이란 생각이 강해졌다.
“육체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느님 사랑을 체험한 입장으로서 마음의 고통을 치유하는 일이 급선무로 느껴졌어요. 게다가 아버지나 동료 간호사들 같은 주변 사람도 삶이 행복해 보이지 않았죠. 만약 저들도 주님의 사랑을 느낀다면 마음의 상처도 나을뿐더러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텐데. 너무 안타까웠죠. 그래서 선교사가 되기로 했어요. 다른 사람들도 저처럼 하느님 사랑을 체험하게끔 돕고 싶어서요.”
평범한 일상에서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이것이 선교사들이 이 땅에서 선교하는 이유다. 선교사들은 “신앙과 일상이 일치를 이루면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 신자들은 ‘영적인 가족’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마음속 이야기를 편히 터놓고, 같은 길을 함께 걷는 공동체가 그것이다. 이들은 줄곧 하느님으로부터 찾는 행복을 강조했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 ’마음을 열고 싶은데 두렵다’, ‘이야기가 새어나가지 않는 안전한 집단이 필요하다’. 청년 모임에서도 이처럼 안타까운 말이 많이 나왔어요. 청년들이 일상과 사회생활에서 가톨릭 가치관을 고수하는 것에 대해 많은 고민과 갈등을 겪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의지할 공동체를 절실히 찾는 것 같아요. 이러한 사람들에게 하느님 자비 복음의 종 선교회가 늘 따스하고 든든한 영적 가족이 돼주고 싶습니다. 그게 바로 일상에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우리가 꼭 해야 일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