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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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핵발전소 최대 밀집지에서 ‘핵 없는 세상’ 꿈꾸며 연대 다짐

제9회 한일탈핵평화순례단, ‘원전의 긴자’ 일본 후쿠이현을 가다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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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동 아빠스를 비롯한 한일탈핵평화순례단이 후쿠이현 쓰루가 핵발전소 홍보관에 들러 탈핵 운동을 하는 현지 스님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원전의 긴자!’ 일본에서 핵발전소를 가장 많이 보유한 후쿠이현에 붙은 별명이다. 그것도 동해와 접한 제주도 1.4배 면적 와카사만에 줄줄이 모여 있다. 그래서 일본의 명동이라 불리는 도쿄 번화가 ‘긴자’를 붙여 불리고 있다.

이곳에서 찍은 아름다운 바다 사진 배경에 거대한 원자로가 껴있는 것은 낯선 일도 아니다. 오죽하면 관광 홍보용 사진도 핵발전소를 지운 결과물이라는 이야기도 있겠는가. 1900년 러시아에서 함경도로 가다가 표류한 조선 선원들이 현지 주민 도움을 받아 목숨을 구했다는 도마리 해안도 마찬가지다. 양 국민의 우애가 서린 이곳을 찾은 한일탈핵평화순례단 눈에 어김없이 핵발전소가 들어왔다.

후쿠이현은 일본 열도의 배꼽쯤에 위치한 혼슈 중서부의 현. 인구 80만 명이 채 안 되는 후쿠이현에 이렇게나 핵발전소가 빽빽이 지어진 이유는 뭘까. 일본에서 두 번째로 큰 게이한신(교토부·오사카부·고베시) 도시권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서다. 수도권에 쓸 전기를 만들기 위해 희생되는 우리의 지방 해안 도시들과 닮은꼴이다. ‘전기는 눈물을 타고 온다’고 했던가. 넓고 푸른 동해를 사이에 두고 한국과 일본 양국에선 똑같은 비극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일탈핵평화순례단은 13~17일 후쿠이 지역을 방문해 핵 없는 세상을 이루고자 투쟁하는 의로운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했다.

 
후쿠이현 쓰루가 핵발전소 홍보관 창문 너머로 보이는 쓰루가 핵발전소. 후쿠이현에는 이런 핵발전소가 모두 14기나 있다.

7년째 노후 핵발전소 수명 연장 취소 투쟁

13일 나고야교구 주교좌 누노이케성당에서 만난 탈핵운동가 구사지 타에코씨. ‘원전 40년 폐로 소송 시민모임’ 공동대표인 그는 7년째 국가를 상대로 투쟁하고 있다. 가동을 시작한 지 40년이 넘은 노후 핵발전소의 운전 기간 연장 인가를 취소해 달라고 2016년 행정 소송을 제기하고 7년째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40년 전 기술 수준으로 20년을 더 쓴다니요. 오래된 가전제품이라면 갑자기 고장이 나도 안전하겠지만, 핵발전소는 고장이 나면 큰 사고로 이어지죠. 노후 핵발전소 수명 연장은 빚을 내서 큰 도박을 하는 것과 같아요.”

개신교 신자인 구사지씨는 “그 도박에 관한 모든 비용은 우리 후손들이 부담하는 것”이라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뺏을 수 없다”고 말했다.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건 직후 일본은 탈핵의 길로 가는 듯 보였다. 정부는 핵발전소 운전 허가기간을 40년으로 법제화해 2050년까지 모든 핵발전소를 폐쇄하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일본 최고령 발전소인 다카하마 1·2호기(각각 1974·1975년부터 운전) 등 후쿠이 핵발전소들도 가동을 중단했다. 그런데 사고 4년 만인 2015년 ‘간사이전력’이 40년 전후의 노후 핵발전소에 대해 가동기간 연장을 신청했다. 다카하마 1·2호 등 노후 발전소 계속 가동을 염두에 둔 조치였다.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는 두 발전소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마련한 새 안전 기준에 부합한다고 인정했다. 이에 따라 노후 발전소들은 수명이 20년 더 연장됐다. 욕망 때문에 벌어진 허술한 심사로 그저 말 뿐인 ‘안전신화’가 부활한 것이다.

 
제9회 한일탈핵평화순례단이 120년 전 조선 선원들이 표류했던 일본 후쿠이현 도마리 해안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핵발전과 재생에너지는 모순되는 존재

곧 쉰이 되는 다카하마 1호기는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12년 만인 지난 7월 재가동에 들어갔다. 이에 더해 일본 국회는 최근 핵발전소를 현행 최장 60년보다 오래 가동할 수 있는 내용이 담긴 ‘그린 트랜스포메이션(GX) 탈탄소 원전법’도 가결했다. 핵발전소 최장 수명을 계산할 때 정지 기간은 빼는 방식이다. 만약 재가동 심사 등으로 10년간 핵발전소가 가동 중단됐다면, 60년에 그만큼을 더해 최대 70년까지 운영할 수 있게 된다.

일본 정부는 2020년 기준 3.9에 불과한 핵발전 비중을 20~22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왜 위험한 핵발전의 길로 회귀하는 걸까. 정부는 핵에너지가 ‘안정적이고 저렴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불안한 국제 정세로 에너지 수급이 어려워져 가격이 급등하면서 일본 정부는 그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는 주장이다.

원자력시민위원회 좌장 오시마 겐이치(류코쿠대) 교수는 “전력가격 급등은 핵발전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14일 오바마 상공회의소에서 화상으로 만난 그는 전력시장 설계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시장 80 이상을 장악한 대형 전력회사가 내부 거래를 우선시하고, 잉여 전력을 생산하지 않으면서 전력시장에 전기가 돌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시장 가격 폭등으로 인한 전기요금 상승이다.

오시마 교수는 또 “우크라이나 전쟁은 핵발전소의 필요성이 아닌, 위험성을 다시 한 번 보여준 사례”라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핵발전소는 무력 공격에 노출된 채로도 가동을 멈추지 않았다. 전 세계는 핵발전소가 폭파돼 상상할 수 없는 재앙이 초래할까 봐 노심초사했다. 국토는 좁고 인구는 많은 데다 핵발전소까지, 한국과 일본은 더 안전한 처지가 아니다.

일본 정부가 핵발전을 강화하는 명분 중 하나는 기후 위기 대응이다. 탄소 중립적인 핵에너지 사용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일까. 오시마 교수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연구 결과를 인용해 핵발전을 늘린다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연구에 따르면,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방법은 핵발전이 아닌, 오로지 재생에너지뿐이다.

“핵발전과 재생에너지는 모순되는 존재라고 할 수 있죠. 핵발전에 열성적인 국가일수록 재생에너지 도입량이 적고, 재생에너지에 열성적인 국가일수록 핵발전소가 적은 게 사실입니다.”
 
후쿠이현에 위치한 ‘꿈의 원자로’ 몬주. 1995년 첫 송전 이후 나트륨 냉각제 유출 등 잦은 사고가 발생해 가동과 중단을 거듭하다 2016년 결국 폐로 결정이 났다.

오바마시, 시민들 저항으로 핵발전소 막아

오바마시는 핵발전소 최대 밀집지인 후쿠이현에서 아주 특별한 지역이다. 유일하게 시민들의 저항으로 핵발전소 건설을 막아냈기 때문이다. 그 주역은 40년 동안 탈핵 운동을 펼쳐온 나가지마 테츠엔 묘츠지(明通寺) 주지 스님이다. 15일 국보 2점(본당·삼층탑)과 12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고찰 묘츠지에서 만난 스님은 ‘연대의 힘’을 강조했다. “9개의 작은 시민단체가 함께 힘을 모은 것이 토대가 돼 핵발전소 건설을 막는 결실을 거뒀다”며 “건설 반대 서명 운동을 벌여 시민 과반수 호응을 모은 것도 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스님은 종단 간의 협력 역시 중요하다고 봤다. 그러면서 가톨릭에 대한 호감을 보였다. 특히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높게 평가했다. “자연을 사랑하는 성인의 영성은 제가 속한 불교 종단인 진언종의 가르침과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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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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