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밥상은 하느님이 만드신 땅과 생명을 지키려는 농민의 노력, 이들을 지지하는 소비자의 마음이 만날 때 차려질 수 있다.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이하 우리농) 활동가 김정이(정혜엘리사벳·62·한강본당)씨는 우리농 매장에서 25년 가까이 농민들이 소중하게 일궈낸 농작물을 판매하고, 누구보다 성실히 이를 소비했다. 우리농과 함께한 25년 동안 그는 매일 같이 생명의 밥상을 차리며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지켜왔다.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지켜나가는 밥상
“어떤 재료로 밥상을 차리는지에 따라 우리 몸 건강과 지구 환경이 달라지잖아요. 우리 농민들이 정직하게 가꾼 건강한 먹거리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죠.”
김정이씨는 자신의 SNS에 우리농 식재료로 만든 건강한 제철 밥상 사진을 올린다. 유기농 쌀로 지은 소복한 밥에 제철 채소를 듬뿍 넣은 찌개, 입맛을 돋우는 나물들, 동물복지 유정란으로 만든 음식 등으로 우리농을 주위에 알리기 위해서다.
그는 생태위기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가급적 식물성 재료로 식탁을 꾸리려 노력한다. “세상에는 정말로 다양한 채소가 있어요. 이걸 다 만드신 하느님이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죠. 그런데도 고기반찬이 없으면 안 되는 것처럼 편협해진 우리의 식습관이 아쉽습니다.” 김씨와 가족들은 육식과 동물성 재료를 피하는 것이 모든 생명과 공생하는 시작이라고 여겨 육류 섭취를 최소화하고 있다. 고기를 먹어야 한다면 유기순환축산으로 묶어서 키우지 않고, 건강하게 자란 ‘가농소’를 먹는다.
그가 우리농을 선택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성에 있었다. “요즘엔 무얼 사든 생산자를 알 길이 없는데, 우리농은 누가 키워냈는지 다 알 수 있잖아요. 밥상을 차렸을 때 식재료 생산자들의 이름을 모두 알면 얼마나 행복한지 아세요? 그들의 땀과 얼굴을 떠올리며 정말 귀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게 됩니다.”
농민들 수고를 존중하는 소비 이뤄지길
우리농 매장은 보통 ‘나눔터’라고 한다. 농산물을 나누고 농업의 가치도 나눈다는 의미다. 김씨는 현재 우리농 한강점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강점은 성당이 아닌 도로변에 매장이 있다 보니 신자뿐 아니라 “먹어보니 참 좋더라”며 발걸음을 이어가는 단골 동네 주민도 많다.
그동안 많은 소비자를 만나온 김씨는 “소비자들이 농민의 땀과 농업의 가치를 더욱 존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기농법은 수확량이 적어 상품 값이 올라갈 수밖에 없지만, 가격이 비싸고 벌레 먹어 모양새가 좋지 않다며 꺼리는 손님들도 있었다. 김씨는 “명품은 사면서도 깻잎 스무 장에 1000원이라면 놀라거나 ‘유기농은 가짜’라며 나가버리는 분들도 봤다”며 “벌레가 못 먹은 걸 인간이 어떻게 먹겠느냐”고 말했다.
공장에서 찍어낸 듯 모양도 예쁘고 규격화된 상품을 빠르게 만들려는 인간의 욕심 앞에 땅이 생명을 잃고 있다. 그는 “건강한 흙에서 자연의 섭리에 따라 제 시간에 자라는 농작물은 투박해도 맛이 다르다”면서 “그야말로 자연 본연의 맛”이라고 표현했다. 오랜 시간 건강한 먹거리를 먹은 김씨 가족들도 과일에서 나는 농약 냄새, 가공식품 속 첨가물을 금세 알아챈다. 한두 번 먹어선 몰라도 길들여지면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좋은 먹거리 위해 즐거운 불편 감수해야
김씨는 “우리가 먹는 것들이 어디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왔는지 모르면 매 순간 편하고 쉬운 선택만 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밥상 차리기가 귀찮아서 혹은 자극적인 음식을 찾으면서 배달음식을 선택하는 대신 우리 농산물로 직접 밥을 짓는 일이 중요한 이유다.
“우리가 일상에서 먹는 먹거리 대부분은 바다 건너, 지구 반대편에서 왔잖아요. 밀가루만 해도 선적하며 15가지 화학비료를 친다고 해요. 수많은 가공식품은 또 어떨까요?”
그는 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해선 불편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트에서는 사계절 내내 모든 걸 구할 수 있지만, 인위적인 생산물이 존재하지 않는 우리농 매장은 그렇지 않다. “사려는 물건 중에 하나만 없어도 한꺼번에 다 사겠다며 아예 대형마트로 가시는 분이 많아요. 조금의 불편도 감내하지 않으려는 현대인들의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김씨는 즐거운 불편이 모여야 신음하는 지구를 치유할 수 있지만 개인의 선한 의지만으로는 결코 변화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교회의 역할에 주목하며, 교회가 소비자에 끌려가기보다 소비자를 끌고 가고 소비자의 의식을 바꾸는 주체가 되길 바라고 있다.
“교회가 나서서 생명농업의 가치를 교육하고, 농촌 체험과 농촌 일손 돕기 등 다양한 도농 교류 활동을 펼쳐야 합니다. 농민과 소비자를 이어주는 중간 역할도 더 확대돼야 하고요. 본당에서 우리농 매장이 설립되고 건강하게 유지되도록 본당 사제와 신자들의 각별한 관심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김씨는 모두 함께 노력하며 우리 일상에서 죽음의 밥상이 사라지고, 우리 식탁에서부터 환경운동이 시작될 날을 고대하며 오늘도 생명의 밥상을 차린다.
■ 건강한 먹거리 Q&A
우리농 매장에 GAP(농산물우수관리) 인증 상품이 없다?
GAP는 농산물우수관리 표시다. 친환경에 관심이 많아지며 GAP 인증만을 보고 물건을 구입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GAP는 농산물에 잔류 농약과 화학비료가 없어 안전하다는 인증이다. 작물을 키울 때,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므로 구입 시 주의가 필요하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일체 사용하지 않은 상품만 들여 놓는 우리농 매장에서 GAP 인증을 받은 농산물을 볼 수 없는 이유다.
무농약과 유기농, 어떻게 다를까?
친환경 농법으로 만들어진 제품을 알리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농식품 인증제도. 그러나 친환경 인증만 보고 구입한 농산물이 친환경이 아닐 수 있다. 무농약과 유기농 구분은 화학비료 사용 여부에 달렸다. 무농약은 농약을 쓰지는 않지만, 화학비료는 권장량 1/3 이내로 사용한다. 단, 가톨릭 농민들은 유기농 농법을 지키므로 무농약이라고 적혀 있어도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무농약 인증을 3년 이상 유지해야 유기농 인증을 받게 된다. 우리농 매장에 있는 무농약 상품들은 유기농 인증을 기다리는 100 유기농 상품이다.
신선란? 특란? 어떤 달걀을 사야 할까?
우리는 달걀을 많이 섭취한다. 달걀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달걀이 들어간 음식이 부지기수다. 달걀을 살 때는 난각번호 끝자리를 보자. 끝자리는 곧 ‘사육환경번호’다. 끝자리 3·4번 달걀을 낳은 닭들은 매우 좁은 공간에서 평생 날개 한번 펴보지 못한다. 밀집축산으로 몸을 움직이지 못해 병균에 취약하다보니 살충제를 뿌리고 이는 고스란히 해당 달걀을 먹는 사람에게 전달된다. 대형마트에 유통되는 달걀 95가 끝자리 3·4번이다. 생태적인 양계장에서 자란 닭들이 낳은 달걀의 난각번호 끝자리는 1·2번이다. 숫자가 낮을수록 동물복지가 지켜지고 그만큼 몸에 좋은 건강한 달걀이라는 증거다.
염지유 기자 gu@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