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훈한 노동부 기자실 분위기 이끌었던 기자들의 영원한 ‘방울아씨’
1995년부터 고용노동부 기자실장으로 근무한 기자들의 ‘방울아씨’ 박현숙 기자실장이 28년 동안 자리를 지켰던 기자실을 떠납니다.
28년 자리를 지킨 고용노동부 기자실을 떠나는 박현숙 실장(사진제공 = 고용노동부 기자단).
각 부처마다 기자실이 있습니다.
한쪽에 출입기자들이 기사를 작성하고, 취재할 수 있는 사무실 같은 공간입니다.
그 기자실 한켠에 함께 기자들과 생활하면서 기자들의 취재 지원과 부처에서 내는 보도자료와 정책설명자료 등 공보자료 발송 업무를 담당합니다.
또 부처 대변인, 공보담당자와 기자들 사이를 연결해주고 소통할 수 있는 다리 역할도 해줍니다.
그렇다보니 기자실장은 기자실의 분위기를 이끌기도 하고 부처와 기자들 사이의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박 실장은 특유의 언론 친화적이고, 싹싹하고, 부지런한 업무 스타일로 고용노동부의 훈훈한 기자실 분위기를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박 실장의 언론친화성이 어느 정도인지는 기자가 그와 실제 나눈 다음과 같은 대화를 통해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나이도 구력도 어느 정도 되다 보니 기자들을 전부 자식처럼 대합니다.
박 실장 ; “아! 현정현정! 무슨 일이야? 뭐가 필요해?”
기자 ; “실장님! 장애인 고용 관련 통계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는데 어느 분께 확인해야 되나요?”
박 실장 ; “어 그래? 내가 그과 과장 전화번호를 자기 카톡에 콱! 박아줄게. 궁금한 거 다 물어봐!! 전화 안 받거나 뭐 필요한 거 있음 빨리 또 전화하고!!”
기자 ; “감사합니다!”
박 실장 ; “노노! 고맙긴. 당연한 일이지. 라뷰! 현정 자주 전화해!”
이렇듯 고용노동부 기자실의 상징이었던 박 실장(사무운영주사?6급)은 어제(19일) 마지막 출근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마무리 합니다.
다만, 서류상 정식 퇴직일은 내년 1월 1일입니다.
1966년생인 박 실장은 1984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은행 입사를 준비하다 아버지 친구의 제안으로 그해 5월 고용노동부에서 계약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첫 근무부서는 공보실(현 대변인실)이었습니다.
박 실장은 이듬해 1985년 11월 11일 고용직(2종) 공무원으로 경력채용 됐습니다.
이후 노사협의과, 감사관실, 근로기준과를 거쳐 1995년 다시 대변인실에 근무하게 됐습니다.
대변인 비서로 일하다 기자실장에 지원했고, 이때부터 퇴직을 2달 여 앞두고 마지막 출근인 10월 19일까지 28년간 쭉 고용노동부 기자실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고용노동부 출입기자들과 현안을 함께 뛴 겁니다.
기자들의 '방울아씨' 박현숙 고용노동부 기자실장(사진제공 = 고용노동부 기자단).
박 실장의 메일 닉네임은 ‘방울아씨’입니다.
출입기자들이 받는 고용노동부 보도 자료의 발신인은 ‘방울아씨’일 때가 거의 대부분입니다.
“방울이 뭔가 딸랑딸랑 하면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느낌이잖아요. 나랑 잘 어울리는 것 같았어요.”
박 실장이 닉네임을 ‘방울아씨’로 한 이유에서 그의 부지런하고 빠릿빠릿한 기질을 보여줍니다.
늘 분주히 움직이는 성격답게 퇴직 후 ‘인생 이모작’을 벌써부터 구상해놨습니다.
며칠은 밀린 잠을 자겠지만, 이후부터는 장애인활동지원사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에 나설 계획이랍니다.
박 실장은 퇴직하며 기자들에게 “고용노동부 공무원들이 일자리, 최저임금, 노동시간과 같이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어려운 현안을 다루는 만큼 기자들도 따뜻하게 봐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인생을 고용노동부에서 보낸 만큼 노동에 관한 그의 철학도 원론적이면서도 묵직한 혜안이 담겨 있었습니다.
“노동자 스스로가 자신의 노동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존중할 때 사회가 달라질 것”이라는 겁니다.
자신의 노동에 대한 자부심,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노동자가 다른 노동자의 노동 가치도 무겁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박 실장의 빈자리에 헛헛함을 느끼는 고용노동부 출입기자단도 박 실장에게 ‘부재의 아쉬움’과 그간 노고에 특별한 감사를 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