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탈핵 평화순례 내내 박현동 아빠스의 앞모습을 보기가 어려웠다. 핵발전소와 원전 홍보관 앞에 차를 세우면 가장 먼저 내려 사진을 찍고 발전소의 정보를 둘러보느라 뒤돌아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뒷모습은 다급하고 간절해보였다. 하느님의 창조질서 보전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찾아야 한다는 결연함도 묻어났다.
가슴 아픈 현장을 살펴본 뒤 10월 18일, 센다이교구 모토테라코지성당에서 함께 미사를 집전한 박현동 아빠스와 에드가 가쿠탄 주교는 서로의 손을 잡으며 환하게 웃었다. 불가능할 것 같은 일들이 함께이기에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공유한 듯 보였다.
공동의 집을 살리기 위해 신앙인들이 무엇을 알고,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박 아빠스와 가쿠탄 주교에게 들어본다.
■ 일본주교회의 정의와평화협의회 담당 에드가 가쿠탄 주교
일본의 중동부에 해당하는 아오모리현, 이와테현, 미야기현, 후쿠시마현을 관할하는 센다이교구에는 15기의 핵발전소가 있다. 특히 큰 사고가 났던 후쿠시마현 오쿠마정은 센다이교구의 아픈 손가락이다. 피란 갔던 주민들은 12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못했고, 방사능으로 파괴된 자연은 사람들이 살 수 없는 지역이 됐다.
일본이 겪은 아픔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반복될 수 있기에 센다이교구장 에드가 가쿠탄 주교는 이번 한일 탈핵 평화순례에 한국 신자들을 초대했다. “지난해 한국에서 탈핵순례를 하며 많은 핵발전소를 봤습니다. 일본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한국 사람들과 힘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특히 핵오염수 문제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걱정이 많을 것이기에 관련된 이야기를 공유하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초청하게 됐습니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함께 순례하며 방사능으로 오염돼 사람들 손이 닿지 않은 피조물을 목격했다. 또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향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을 만났다. 가쿠탄 주교는 “함께한 순례에서 인간은 핵과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을 아픔 속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 이야기 속에서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됐다”고 말했다.
핵발전으로 인한 이익은 가진 자들에게 돌아갔다. 힘없는 자들의 탈핵을 향한 외침은 큰 울림을 남기지 못했다. 가쿠탄 주교는 그럼에도 하느님을 믿는 우리가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지구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대해야 한다는 것은 가톨릭교회의 기본적인 교리입니다. 핵발전소는 자연과 마을 사람들의 삶을 파괴했습니다. 더 이상 아파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교회는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힘이 지금은 미약할지라도, 작은 이해들이 쌓여가면서 단 한 사람이라도 이런 운동을 알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가쿠탄 주교는 끝으로 한국 신자들에게 탈핵을 향한 여정에 동행해 줄 것을 청했다. “우리의 활동을 잊지 말고, 온라인을 통해 함께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 격려하며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일본 후쿠이현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