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밖 청소년 정서 교육 시급청소년사목위, 사목적 대안 모색사비오학교 사례, 청소년 행복 추구
(왼쪽부터)윤휘수군과 목공수업 교사 조희준 수사, 김규민군이 작업한 결과물을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한 학교사회복지사가 근무하던 학교에서 어느 날 고3 학생이 면담을 신청했다. 알고 보니 학업 스트레스를 호소하던 그 학생은 정신병원에서 신경안정제를 처방받고 있었다. 학생의 말을 듣고 찾아간 병원에서는 더 놀라운 사실을 알려줬다. 해당 학교 3학년 학생의 20 정도가 약물에 의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학교를 이탈하는 청소년이 늘고 있다. 청소년들이 학교 울타리 밖으로 나가게 된 데에는 여러 사정이 있겠지만, 이 같은 사례처럼 우리 사회 무관심이 적잖게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학교 밖으로 나가기 전 이들의 정서적 안정과 유대 관계는 충분했는지, 울타리 밖으로 나가서는 어떤 관리와 지원을 받는지 등 관계 및 제도적으로 미처 챙기지 못한 부분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학교 밖으로 나가 다른 곳을 향하더라도 청소년들이 마땅한 권리를 누리고 보호를 받을 대안이 절실하다.
학교 밖·가정 밖 청소년 유관 시설들의 센터장과 기관장 모임
최근 교회 내에서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사목적 대안을 찾기 위한 자리가 마련됐다. 19일 주교회의 청소년사목위원회가 마련한 ‘학교 밖·가정 밖 청소년 유관 시설들의 센터장과 기관장 모임’이다. 이 자리에서 전문가들은 “어른들이 모르는 사이 고통받던 아이들이 제도권 밖으로 벗어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며 “학생이 마음의 문을 닫기 전에 위기 청소년을 미리 발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이 주목한 것은 ‘지역사회와의 협업’. 우선 학교와 협력 및 협조가 이뤄져야 하는데, 실상은 녹록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인천광역시청소년자립지원관장 송원섭 신부는 “5년 동안 학생들을 만나기 위해 학교 문을 두드리고 다녔지만, 쉽지 않았다”며 “대부분 공문 자체를 받지 않거나 만남을 요청해도 꺼렸다”고 안타까워했다. 송 신부는 그 원인으로 “학교 선생님들의 업무가 매우 많다”며 “학생 개인별 감정 상태 등을 신경 쓸 여력이 없어 보였고, 사회복지에 관심 있는 교사여도 학교가 평가에 있어 대안교육 연계보다는 대학 진학에 집중하다 보니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가톨릭청소년이동쉼터 서울 아지트 자원활동가 이우원씨는 “내년도 교육부 예산이 96조 원에 가까운데, 이는 실질적으로 제도권 안의 학생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며 “교육부가 직접적으로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지원하는 예산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사비오학교 교장 박영주(살레시오회) 신부도 “아이들의 정서 교육에는 잘 먹여 건강한 신체를 형성하게끔 하는 것도 포함된다”며 “그러나 식재료비는 지원되지만, 조리사 선생님에 대한 월급은 수도회가 지급하는 것이 대안교육기관의 현주소”라고 밝혔다.
아주대 공공정책대학원 최웅 교수는 ‘학생맞춤통합지원체계’를 구축하는 데 관련 종사자들이 힘을 실어줄 것을 호소했다. 최 교수는 “현재의 교육 시스템으로는 위기 청소년을 조기에 발견해 개입할 수 없고, 컨트롤타워 부재로 필수적인 정보 연계가 곤란해 맞춤형 지원에 한계가 있다”며 “현재 발의된 학생맞춤통합지원법이 제정되면 지원에 필요한 관련 이력을 수집·관리할 수 있게 되고, 학업 중단 학생에 대한 지원이 확대되며, 위기 학생은 선지원 후 통보할 근거가 마련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무엇보다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지역사회의 이해와 관심이 필요하다”며 “여기엔 학교나 지자체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포함된다”고 당부했다.
아이들이 주인인 학교
같은 날인 19일 서울. 나무 향기 가득한 목공방에서 아이들이 목공 작업에 열심이다.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서 살레시오회가 운영하는 대안교육기관 ‘사비오학교’ 현장이다.
이날 만들 작품은 부엌에서 사용하는 도마. 취재진이 목공방 문을 열자, 학생들은 인기척에 시선을 돌렸다가 이내 작업에 몰두했다. 학생들은 나무에 접착제를 바르고 붙이며 손수 도마를 만들고 있었다. 조금은 서툴러도 학생들은 천천히 눈과 귀, 손의 감각을 통해 나무로 하는 작업을 받아들였다. 때로 실수하는 학생들에게 지도 교사는 실패는 하지 않도록 다독이며 방법을 알려주고, 직접 완성하도록 이끌었다.
윤휘수(15)군은 초등학교 때 부모님을 따라 외국에서 살다가 다시 귀국한 뒤 대안학교를 다녔다. 사비오학교에 다니게 된 것은 교사인 어머니의 추천이 있었다. 윤군은 목공을 즐기고 있고,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지니게 됐다.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목공을 했는데, 사비오학교에서도 목공을 배울 수 있다기에 선택했어요.” 윤군과 아이들은 최근 벤치를 만들어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가 운영하는 무료급식소에도 기부했다. 윤군은 “처음 한 기부가 무척 좋은 일이라고 여기게 됐고, 직접 만든 벤치로 돕게 돼 더 좋았다”고 했다.
성 도미니코 사비오(1842~1857)는 15살의 때인 교회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성인이 된 인물이다. 그 배경에는 ‘어른’이 있었다. 성 요한 보스코(1815~1888) 신부는 소년의 영혼 안에 자리한 충만한 은총을 발견했고, 그의 삶을 기록해나가기 시작했다. 그저 꿈 많은 어린아이 중 한 명으로 지나칠 수 있었지만, 요한 보스코 신부의 애정 어린 기록은 시성의 밑거름이 되어 사비오의 이름을 영원히 이 땅에 남겼다. 그리스도교는 우리 모두의 마음에 사비오가 가졌던 은총이 자리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이 발현되기까지는 유년 시절 어른들의 온정 어린 보살핌을 통해 정서적 안정감을 찾는 과정이 중요하다.
사비오학교는 연극, 미술, 실용음악, 바리스타, 제과제빵, 목공예를 비롯해 국어와 영어, 수학 등 검정고시를 위한 교육과정도 운영 중이다. 17세~23세 청소년이면 입학할 수 있다. 현재 10명의 청소년이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교명은 살레시오회 창립자 요한 보스코 신부의 제자 도미니코 사비오의 이름을 땄다. ‘학생이 학교의 주인’이란 의미다. 요한 보스코 신부가 “교육은 마음의 일”이라고 했듯 사비오학교도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항상 함께한다. 마음을 열어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아이들의 마음이 움직이도록 설명하고 설득한다. 아이들과의 신뢰관계를 만들며, 나아가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낸다.
김규민(14)군에겐 올해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머리를 길러 얼굴을 다 가릴 정도로 내성적이었던 김군은 사비오학교에 다니며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전과 달리 친구들과 어울리며 내면의 밝은 모습도 찾았다. 김군은 “사비오학교를 다니면서 저 같은 사람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이젠 활동적인 것이 좋다”고 했다. 김군처럼 꿈이 없던 아이들이 자신의 재능을 찾으며 꿈을 꾸기 시작했다.
사비오학교 길잡이교사 김지연(아나스타샤) 팀장은 “제가 사랑과 정성을 쏟았을 때 아이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본다”며 “아이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아이들과 항상 함께한다”고 했다.
대안교육의 다른 이름, 행복을 돕는 정서교육
사비오학교 교장 박영주 신부는 “학교 밖 청소년들이 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는 것이 대안교육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박 신부는 학교 밖 청소년 교육에 있어 ‘정서’, ‘교육’, ‘진로’가 대안학교가 지니는 큰 틀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 중엔 아이들의 정서 발달에 더욱 중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서 발달의 정도에 따라 아이들의 행복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박 신부는 “살레시오 교육은 아이들을 성장시키기 위해 나의 모든 존재를 던지는 것”이라며 “그것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명”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교육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학교 밖 청소년들을 포용하는 인식이 부족합니다. 아이들을 만나보지 않았기 때문에 선입견을 갖는 것이거든요. 아이들을 끌어안아야 합니다.” 박 신부는 “아이들을 만나보면 변화할 가능성이 큰 것을 느낀다”며 “아이들 각자가 지닌 변화를 위한 싹을 하느님을 통해 틔울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말했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