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신간은 몇 부나 찍었어요?” 전과 달리 초판을 다 소화하는 책이 드물다고들 합니다. 출판업은 대표적인 사양 산업이라고도 하고요. 사람들이 정보를 얻거나 새로운 이야기를 접하는 수단이 책이 아니게 된 지는 오래되었습니다. 시내 전철에서도 다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이들뿐, 책 읽는 사람을 만나기는 어렵습니다. 미디어를 통한 복음 선교 사명을 살아가는 수도회 회원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나?’하는 걱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이유입니다.
성바오로수도회의 첫 사제 복자 티모테오 쟈카르도는 서른 살이 되던 해에 로마로 파견되었습니다. 1926년 성바오로 회심 축일 아침에 로마에 도착했는데 인쇄소를 차려 일하려고 데려온 소년들과 함께였습니다. 마침 아침으로 먹을 빵을 담은 자루가 찢어지는 바람에 전차 철길 위에 빵이 어지러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전차가 멈추어 서고 소년들이 철길에서 빵을 주웠는데, 그것은 마치 로마에 도착한 바오로인들이 말씀의 빵과 같이 온 세상에 퍼져 나가리라는 상징과도 같았다고 수도회의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 바오로 대성전 가까운 곳에 거처를 마련한 신부님은 작은 인쇄기를 마련해서 베네딕도 공동체의 주보 ‘로마의 목소리’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당시 그 공동체의 아빠스는 “베들레헴이다. 하느님 손에 맡겨드리는 삶. 까마귀가 그날의 빵을 가져다주는구나!” 하셨다고 합니다. 이 분은 후에 밀라노대교구장을 지내셨고 복자품에 오르신 일데폰소 슈스터 추기경입니다.
“아주 작은 일부터 시작하십시오. 지극히 작은 일로부터 말입니다. 하느님의 일은 인간의 일과 다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하느님이라는 바탕이고 지상의 것은 그다음입니다.” 쟈카르도 신부님은 쉰두 해라는 길지 않은 생애 동안 바오로 가족의 역사에 지워지지 않을 자취를 남겼습니다. 10월 19일 쟈카르도 신부님의 축일을 지내면서 하느님의 일, 사도직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는 것임을 되새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