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당하게 정립되는 생명문화는 문화의 외적 형태가 아니라 그 내적 특성을 이해할 때 가능하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생명의 의미와 특성을 이해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생명철학은 생명의 본질적 특성을 해명함으로써 이러한 작업을 수행하려 한다. 생명의 신비와 그 아름다움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채 구호에 그치는 생명 존엄성 담론은 허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생명철학은 생명문화와 윤리의 전제 조건이 될 수밖에 없다. 생명의 본질적 특성을 간략하게 성 원리와 그에 대한 성찰적 원리로 설명해보기로 하자. 이를 위해서는 생명에 대한 자연과학적 이해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사실적 조건과 그에 대한 지식을 배제한 채 이루어지는 성찰적 작업은 망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는 공동의 기원을 지니고 있다. 생명은 어느 한순간 지구 상에 나타난 최초 생명의 후예들이다. 지구 상의 모든 생명은 동일한 조상에서 출발한 같은 생명체다. 이 생명체가 시간의 흐름 안에서 자신의 생명과 삶에 필요한 나름대로 특성을 내재화하면서 발전해온 것이 현재의 생명이다. 그래서 모든 생명은 동일한 생명체적 조건과 메커니즘을 지닌다. 그와 함께 생명체는 다른 생명과의 관계에서 서로를 필요로 하는 공동의 생명체다. 이는 단순히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해 다른 생명을 필요로 한다는 의미를 넘어 생명체의 몸 자체가 수많은 생명체가 공동으로 살아가는 터전이며 또한 다른 생명과 합쳐져서 살아가는, 말 그대로의 공생명인 것이다.
공생명인 생명은 다른 생명과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살아간다. 미시적 관점에서 생명은 투쟁과 대립의 관계에 있지만, 거시적 관점에서 생명체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생명체는 동일성을 지니지만, 그와 함께 역사적 과정에서 생겨난 차이를 지니고 있다. 이 세 가지 특성, 즉 생명체의 동일성과 차이, 상호작용성과 역사성을 성찰할 수 있는 터전은 생명에 대해 부여할 수 있는 존재론적 지평이다. 이러한 다섯 가지 원리를 생명체적 특성으로 제시할 수 있다.
그와 함께 생명은 생명체로서 자기 존재를 보존하려는 의지를 지니고 있다. 이를 단순히 생존 욕구로 받아들이는 것은 미흡하다. 그것은 생명체가 맹목적으로 자기 생명을 유지하려는 욕구를 넘어 생명체로서 자기 존재를 성취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는 의지를 달성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은 생명체의 지향성으로 언어화할 수 있다. 인간으로서 우리가 가진 자기 절제나 자기비움(kenosis) 같은 특성은 생명체의 지향성을 존재론적으로 성찰할 때 비로소 이해되고 수용될 수 있는 개념이다. 생명체의 일반적 지향성이 초월적 특성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은 생명에 대한 존재론적 해석 때문에 가능하게 된다. 이런 과정 위에서야 비로소 자기를 버림으로써 자기를 실현해가는 특성, 생물적인 관점에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자기초월성이 드러나게 된다. 영성이라는 가장 뛰어난 종교적 특성 역시 이러한 자기초월성 없이는 불가능하다.
생명은 그 자체로 모순적이다. 살려는 의지를 지니고 있지만 죽음으로 끝나는 생명, 자신의 생명을 위해 다른 생명을 필요로 하는 생명, 동일한 원리를 지니지만, 차이 없이 존재할 수 없는 생명은 이 모순성을 일치시키는 과정에서 존재한다. 이 모순성을 일치시키고 자신 안에 내재화시킬 수 있는 이유는 생명에 대한 존재론적 지평 때문이며, 생명체가 지닌 지향성에 근거한 초월성 없이 결코 가능하지 않다. 생명문화와 생명윤리는 이렇게 언어화한 생명성 위에서야 타당하게 정초될 것이다.
신승환 (스테파노,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