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오늘도 네게 말한다 "보고 싶지만... 괜찮아."
어느새 1년이 흘렀다. 지난해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로 숨진 고 신애진(가브리엘라)씨의 아버지 신정섭씨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본지에 보내왔다. 신씨의 부모는 지난 20일 고인의 모교인 고려대에 2억 원을 기부해 먹먹하고 훈훈한 여운을 남겼다. 부모는 딸이 아르바이트와 직장생활을 하며 저축한 돈과 부의금을 모아 딸이 일기장에 버킷리스트로 적어 놓았던 ‘모교에 기부하기’를 실천했다. 하늘로 떠난 딸이 생전에 하고 싶었던 일이다. 딸을 향한 사랑과 그리움을 꾹꾹 눌러 담은 아버지의 편지 전문을 소개한다. 한 글자도 빠지지 않고 하늘에 가 닿기를….
애진이에게 보내는 편지
꿈을 꾸었어. 너는 열 살 아이의 모습이었어. 섬에 비가 쏟아져 물에 잠기는데 한참 뒤에야 구조배가 왔어. 하지만 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탈 수가 없었어. 우리 가족들이 배에 탔는지 한참 헤매다가 배에 탄 엄마를 볼 수 있었어. 어린 네가 손을 흔들어 주는데 닭똥 같은 눈물이 흘렀어. 나까지 배에 탈 수는 없었기에 배에서 내리는데 안도감이 들었어. 네가 아니라 나여서 다행이었어. 하지만 그건 꿈이었어. 현실은 꿈보다 천 배, 만 배 가혹하구나.
아빠는 아직도 너의 마지막 시간을 찾아보지 못하고 있어. 그저 고통이 덜했기를, 어리석게도 이미 지나간 과거를 여전히 빌고 있어.
그날 오후 우리는 단풍나무 아래서 사진을 찍으며 활짝 웃었는데 올해는 아직 단풍이 물들지 않았어. 그래도 계절은 어김없이 돌아오네. 네가 떠난 지 벌써 일 년이 되었구나. 일 년이라는 게 인간이 만든 숫자에 불과한데 10월 29일이 다가올수록 심장이 터질 듯 뛰고 마음은 말 한마디의 파동에도 흔들린단다. 맑은 하늘, 곱게 물든 단풍이 참 좋은 계절이었는데 이제는 가을이 참 무겁구나.
신애진 가브리엘라, 너는 이제 세상의 시간에서 벗어나 평안과 안식 속에 있는지.
엄마랑 아빠는 너를 찾아 참 많이 걸었어. 교토에서도 치앙마이에서도 마드리드에서도 여수에서도 열 살, 스무 살, 스물네 살의 너를 만날 수 있었어. 하지만 스물다섯의 너는 찾을 수 없었어. 그래도 너를 찾는 일을 멈출 수는 없구나. 5년이 지나 서른 살의 너는 네 엄마의 젊었던 모습을 떠올리며 상상해 볼 수 있을 거야. 5월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늘 네 생각을 했어. 너만 생각하며 걸었어. 성당이 나오면 기도하고 다시 걸었어. 힘은 들었지만, 어느새 그 길이 끝나지 않고 영원히 이어지기를 바라며 아껴 가며 길을 걸었어. 산티아고 대성당 앞마당에 누웠을 때 알게 되었어. 순례길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는 걸, 세상 떠나는 날까지 우리는 그 길 위에 있다는 걸 말이야. 산티아고를 떠난 날부터 다시 그 길이 그리워졌어. 거기서는 모든 순간이 너와 함께였으니까, 온전히 너를 생각하고 기도하는 나를 만날 수 있었으니까. 파티마 대성당에도 가고 파리에도 갔어. 네가 혼자 간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지가 파리였잖아. 네가 묵었던 민박집에서도 묵고 낮에는 네 사진 속 배경들을 찾아다녔어. 아침저녁으로는 성당을 찾아다니며 미사를 보았어. 말은 알아들을 수 없지만 경건함은 같았어. 신자가 아닌 아빠는 영성체도 받지 못하고 주님께 기도하지도 못했어. 그저 어머니이신 마리아님께 너의 손을 잡아달라고, 네가 평안과 인식에 머무를 수 있도록 주님께 대신 빌어달라고 기도했어. 미사 내내 그 기도만 올렸어. 그렇게 여러 날을 빌다 보니 기도가 늘게 되더라. 피에타의 고통을 겪으신 성모님께 같은 고통 속에 있는 엄마에게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빌었어. 159명 희생자들에게 안식을 주십사 빌었어.
지난주 너의 생일에는 친구들이 많이 모여 생일잔치를 했어. 너의 일기, 친구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 친구들에게 주었어. 네가 친구들에게 주는 선물이야. 엄마는 동화책을 썼어. 엄마가 네게 주는 생일 선물이란다. 내가 일기장에 적어둔 버킷리스트, ‘모교에 장학금 주기’도 엄마, 아빠가 네 심부름을 잘 마쳤어.
너는 어느 세상에 있을까. 평안과 안식 속에 있을까. 아무리 빌어도 알려주지 않지만 그래도 빌 수 있는 게 고마운 일이야. 네 엄마, 김남희 데레사가 마음을 둘 수 있는 성당이 동네마다 있어서 참 고마워.
아빠가 비록 신을 믿지 못하여 감히 주님께 빌지는 못하지만, 주님이 계시게 해 달라고 빈단다. 그래서 너는 주님의 품에서 평안하기를 바라. 주님을 너를 위한 도구로 보는 불순한 마음이라 주님께 닿을 수 없겠지만, 주님이 계시면 그 또한 포용해주시고 자비를 베풀어주시지 않을까. 엄마와 아빠가 지난 일 년을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사람들이 주신 공감이었어. 수녀님들, 자원봉사자들, 분향소를 찾아주시는 시민들이 우리의 밥이요 에너지였어. 네가 엄마와 아빠에게 전해준 소중한 인연이야.
어떻게 해야 너와 함께 살 수 있을지 생각한단다. 너의 의미를 빚어 가는 삶이라면 네 몸은 비록 세상에 없지만 너는 기억으로, 의미로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엄마와 아빠는 우리가 받은 공감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고 싶어. 가슴에만 머물지 않고 발로 걸으며 연대하는 삶을 찾고 있어.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잖아. 서로 각자의 몸이지만 우리는 함께 더 큰 생명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어. 그 큰 생명이 먹고 사는 밥은 예수님이 자신의 목숨으로 증거하신 사랑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산티아고 어느 언덕길에서 문득 들었어.
애진아, 어느 날 네가 꿈에서 엄마에게 찾아와 말했지. “보고 싶지만 괜찮아.”
아빠는 늘 그 말을 곱씹으며 산다. 그리고 오늘도 네게 말한다. “보고 싶지만 괜찮아.”
2023년 10월 27일
신애진 가브리엘라에게 이 편지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