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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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와 시노달리타스] (25) 디지털 시대의 시노달리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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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획은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와 가톨릭신문이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자유로운 의사 표현의 장 시노드

시노드의 중요성과 교회론적 가치를 강조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를 통해 하느님 백성이 친교, 참여, 사명의 차원에서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로 나가도록 초대한다. 현재 진행 중인 시노드 여정을 통해 교회는 지금까지 걸어온 여정과 ‘함께 걷기’의 의미를 성찰하고 선교 사명 안에서 친교와 참여의 의미를 직접 체험하게 된다. 이번 시노드는 ‘함께 걷기’라는 순례의 여정 안에서 선교하는 하느님 백성이라는 교회의 본질을 실현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시노드 정신 안에서 맺을 수 있는 열매들을 직접 체험하는 것이 이번 시노드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이다.

이를 위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노드 회의의 경직성을 지적하면서, 시노드가 진정한 가치와 효력을 지니도록 하기 위해서는 시노드에 참석한 이들이 발언하고 표현하는데 충분한 자유가 주어져야 하며, 참석자들은 자신의 주장에 대해서 다른 이들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에 주눅 들지 말라고 강조하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이 뭔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여기면서, 교황에 대한 예우 때문에 말할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은 시노드 정신이 아니라고 언급하였다. 용기 있게 이야기하는 과정은 일차적으로는 불화와 균열을 가져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바로 그 작은 틈을 통해 은총이 통과하고 다양성 안에서 일치가 가능해진다. 이 모든 과정에서 우리는 담대하게 이야기하는 용기뿐만 아니라, 편견 없이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을 존중하는 경청의 태도가 필요하다.



디지털 문화 속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

이와 관련하여 프란치스코 교황은 디지털 중심의 문화 안에서 시노드 정신에 따른 대화와 경청의 실천이 절대 녹록지 않음을 강조해 왔다. 우선 프란치스코 교황은 정보 통신망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중심의 세상에 대한 우려를 표하였다. 제15차 세계주교시노드 후속 권고인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89항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여러 정보 통신 기반 (platform)의 활동 방식은 흔히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이도록 돕고 서로 다름을 직면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폐쇄적 악순환이 편견과 증오를 조장하며 가짜 뉴스와 그릇된 정보의 유포를 촉진합니다. 가짜 뉴스의 확산은 진리에 대한 감각을 잃고 특별한 이해관계에 맞게 사실을 왜곡하는 문화의 표현입니다. 온라인상에서 횡행하는 약식 재판을 통하여 개인의 평판이 위험에 놓입니다. 교회와 교회의 목자들도 이러한 현상에서 예외가 아닙니다.”

회칙 「모든 형제들」(47-49항)에서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디지털 문화 속에서 우리가 성찰과 주의 깊은 경청의 가치를 잃어가고 있음을 안타까워한다. 끊임없이 밀어닥치는 정보가 우리를 깊이 있는 통찰로부터 멀어지도록 한다.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커뮤니케이션 문화의 속성으로 인해 우리의 사고는 차분한 성찰로 이어지기 어렵다. 어느새 우리는 인간관계를 즉각적이고 피상적인 차원에서만 이해하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 대화 과정에서도 다른 이들의 발언 도중에 끼어들어 상대방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하는 데 익숙해져 버렸다. 우리는 점점 더 경청의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감성을 해치거나 불쾌감을 자아내는 사람이나 상황을 끊어 버리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디지털 문화 안에서 인류는 자기 자신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과의 진실한 관계를 맺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현실을 보면 디지털 문화 안에서 시노드 정신에 따른 대화와 경청의 실현은 요원해 보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른 이들을 파괴하도록 유도하는 디지털 기반의 맹목적인 소통의 문화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이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보았다. 종교인들도 디지털 기반의 소통 공간에서 언어적 폭력을 행사하는 자신을 인식하기 어렵다. 가톨릭 매체 안에서도 지나친 비방과 폭언이 난무하고 있다. 종교적 가치관과 도덕적 기준에 따라 타인의 명예를 존중하는 문화는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디지털 문화에 익숙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지속해서 통찰력을 유지하고 존재의 의미를 인식할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모든 형제들」 50항)을 통해 디지털에 기반한 피상적 관계 형성의 문화를 극복하기 위해 진리를 탐구하는 작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거나 온화한 대화를 통해서, 또는 열정적인 토론 안에서 함께 진리를 추구할 수 있다. 각자가 가진 경험과 지혜를 나누는 과정에서 침묵과 고통의 순간이 요구되기도 한다. 비록 그 과정에서 인내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디지털 문화 속에서 획득하는 피상적인 정보나 자료로는 얻을 수 없는 진리와의 만남을 통한 성숙이 이루어질 수 있다. 바로 이러한 함께하는 진리의 탐구 과정은 담대하게 이야기하고 편견 없이 경청하는 시노드 정신의 다른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디지털 문화에서 소외되는 이 보듬는 교회 돼야

교회는 시노드 회의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디지털 공간에서 대화와 경청의 가치를 체험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시노드 정신은 교회가 추구하는 복음화 과정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교회는 디지털 문화에 익숙한 이들이 자기 삶으로부터 상처 입었을 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격려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편견 없이 경청해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도 교회는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자비와 위로의 공동체로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에 진행된 세계주교시노드가 온라인으로 하느님 백성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자 노력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를 ‘전투를 치른 후의 야전병원’에 비유한다. 교회는 구성원을 지키는 요새가 아니라 상처 입은 이들이 제일 먼저 찾아오는 야전병원이다. 야전병원은 전쟁터 한가운데 임시로 세워진 병원이다. 치료 장비와 의료진도 부족하다. 하지만 전쟁터 한가운데 다친 병사들이 있는 곳에 야전병원이 있다. 디지털 문화 안에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아파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바로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 병원에서 대화와 경청을 통한 치유가 일어날 것을 희망한다. 시노드 정신을 통해 대화와 경청의 신비를 체험한 모든 이들이 야전병원의 의료진이 되어 세상을 향해 대화와 경청을 실천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한창현 모세 신부(성바오로수도회·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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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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