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가톨릭한반도평화포럼은 10월 26일 의정부교구 참회와속죄의성당에서 ‘군비경쟁을 넘어 인류 상생의 길을 찾다’를 주제로 첫 번째 컨퍼런스를 개최하며 본격적인 평화의 당위성에 관해 논의하고 머리를 맞댔다. 한국과 미국, 일본의 종교·정치·시민사회·학계 전문가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동북아 평화를 심도 있게 모색하는 자리였다.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인류의 존폐를 가르는 핵무기의 심각성을 다루면서 핵군축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 교회의 역할을 모색했다.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한미일 3개국과 주한교황청 대사대리 페르난도 헤이스 몬시뇰, 미국 주교회의 국제정의평화위원장 데이비드 말로이 주교, 일본 삿포로교구장 카츠야 타이치 주교,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축사를 통해 한반도와 전 세계에 필수불가결한 평화의 가치를 거듭 전했다. 이어 제1세션 ‘핵무기의 위협과 군비경쟁’, 제2세션 ‘기후 위기와 한반도의 인권(평화)’, 라운드테이블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교회’가 진행됐다. 한반도와 동북아, 세계 평화를 위한 한미일 전문가들의 토론 현장을 살펴본다.
핵무기의 위협, 안보 딜레마
지난 7월 북한은 동해상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미국은 확장억제 강화의 신호로 부산 기지에 핵잠수함을 배치했다. 북한은 다시 단거리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 이를 두고 이혜정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는 “행동, 대응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악순환이자 ‘안보딜레마’”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국제정치 현실주의에서는 핵을 둘러싼 지금의 상황을 ‘공포의 균형’으로 보고 매우 우려하고 있다”면서 “안전한 핵은 없다. 우발적 충돌로 언제든 전략핵이 터질 수 있는 상황인데, 힘의 논리만 고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핵전쟁의 위험 한가운데에 있는 한반도가 ‘안보딜레마’에 빠져있다는 데 참가자들 모두 동의했다. 특히 핵 자체의 위험성을 견지하면서 북한에만 문제를 돌릴 것이 아니라, 핵 군축을 위한 한미일 3국의 연대 강화에 중점을 두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상생의 길
2015년 이후 북한의 핵 능력은 모든 면에서 증가했다. 외교적 고립과 경제제재에도 어느 때보다 평화 협상에 저항하는 강경 일변도다. 미국 노트르담 대학교 크록국제평화연구소 조지 로페즈 명예 교수는 “중단기적으로 볼 때 북한이 이러한 입장을 전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하지만 제재 자체만으로는 압력을 가할 수 없고, 그런 일은 역사상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한반도를 둘러싼 지역의 평화 및 안보와 관련된 모든 사안에 주변국들이 창의성을 발휘하고 더욱 적극 외교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전 선언 캠페인과 비핵지대화 설치 등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특히 ‘핵무기금지조약’ 가입을 통한 국제적 연대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핵무기금지조약은 2017년 UN에서 채택돼 2021년 발효됐다. 97개국이 이 조약에 서명했거나 가맹국인데, 동북아시아 지역의 가입국은 몽골이 유일하다. 가와사키 아키라 피스보트 공동대표는 “동북아 국가들이 핵무기금지조약에 관여를 해나가고, 대화에 참여함으로써 핵무기에 의존하지 않는 안보의 길을 열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미국과 일본의 양국 주교들은 지난 8월 일본 나가사키 핵폭탄 투하 78주년을 맞아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구체적 행동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미국 산타페대교구장 존 웨스터 대주교는 “핵군축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며 한미일 3국의 연대 강화를 요구했다. 산타페대교구 내에는 미국 핵무기 연구시설 전체 3곳 중 2곳이 있다. 웨스터 대주교는 “산타페대교구는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특별한 책임이 있다”며 “핵무기금지조약을 지지하는 동시에 보편적이고 검증할 수 있는 핵 군축 방안을 모색하는 임무를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오는 11월 말 뉴욕 UN 본부에서 열리는 핵무기금지조약 당사국 회의에 참관해 UN 교황대사와 함께 바티칸시국이 최초로 서명하고 비준한 핵무기금지조약을 지지하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는 “핵무기 보유국이 궁극적으로 금지조약을 준수하도록 더 강력히 촉구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카츠야 타이치 주교도 “전쟁의 현장에서 ‘올바른 전쟁’ 따위는 없다”며 “일본은 물론, 핵보유국이 핵무기금지조약에 서명하고 비준하길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남북의 기후 위기 대응 협력도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공존을 위한 주요한 방법으로 제시됐다. 추장민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30여 년간 북한에서는 자연재해로 2390명 사망, 5000만 명 이상이 피해를 입었고, 매년 2억 6250만 달러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청된다”며 북한의 심각한 기후 위기 상황과 열악한 환경을 전했다. 추 위원은 “북한 기후 위기를 대북정책의 전환적 접근으로 한반도 안보를 위협하는 독립변수이자 핵심요소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 분야를 협상 테이블로 올리면 북한도 충분히 호응할 수 있고, 남북관계 정상화와 평화실현의 전략적 옵션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평화의 길
핵이라는 실존적 위협 앞에서 안보와 경제제재 딜레마에 갇힌 한반도. 참가자들은 △생명과 생태 △인권과 정의 △평화와 안보의 세 꼭짓점을 잇는 방안을 고민하면서 교회의 역할에 주목했다.
피스 카탈리스트 인터내셔널 디렉터 제니퍼 조이 텔퍼씨는 “미국의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며 북한을 악의 축으로 여겼지만,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고 성경을 접하면서 미국의 오만함으로 생긴 문제를 함께 보게 됐다”고 고백했다. 이어 “교회에는 고백과 참회, 화해라는 전통이 있다”며 “분단으로 고통받고 희생된 이들을 위한 교회 역할이 필요한 때”라고 밝혔다.
히로시마교구장 시라하마 미츠루 주교는 “세상의 논리로 핵 억지론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이는 무력의 악순환을 일으키는 인간의 약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리스도는 진정한 평화의 길로서 무력의 연쇄를 끊기 위한 비폭력의 길을 가르쳐줬다”며 “그분이 함께 있다는 신뢰를 가지고 사랑과 인내로 평화 문화를 만들어가자”고 당부했다.
제라드 파워즈 가톨릭 피스빌딩 네트워크 코디네이터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극적인 타협을 통해 핵위기가 사라진 경우를 예로 들며, “최악의 시기에도 기회는 있다”고 희망했다. 그러면서 “현재 한반도와 같은 불안한 상황에서도 평화가 가능하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며 “전 세계 평화를 구축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참가자들은 교회의 존재 목적이 고백과 참회를 통한 신뢰와 화해, 평화로 나아가는 데 있다고 입을 모았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장 김주영 주교는 “교회가 현재 걷고 있는 시노드의 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경청”이라며 “이는 잘 듣는 차원을 넘어 공감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북한과의 관계에서도 진정으로 공감할 때, 엮인 실마리를 풀 수 있을 것”이라며 “포럼에서 나눈 것처럼 예수님 가르침에 따라 각자의 자리에서 회개하고 희망한다면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는 평화가 실현되리라 굳게 믿는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