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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 현장에서] 싸움닭이 되고야 만 수사

황인수 신부 성바오로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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씬번호 1. 수도원 공부방, 밤/ “스탠드가 켜져 있는 방, 노트북 앞에 머리를 감싸고 있는 수사, 옆에는 구겨진 종이들이 보인다.”

요즘 시나리오 쓰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이론을 배우면서 시나리오를 한 편 쓰는 과정인데, 시나리오 쓰는 게 만만한 작업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중입니다. 지금은 책 읽는 사람들도 많이 줄었고 미래 세대인 청소년층에서는 문해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말도 들리는 터라, 대중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은 책을 쓰는 걸로 만족할 수는 없게 된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 시대의 작가는 영상언어도 구사할 줄 알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세상에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사람을 작가라고 한다면, 활자에만 의지하는 사람은 점점 자기 말에 귀 기울여 줄 독자들이 줄어드는 걸 보게 될 테니까요.

영화나 드라마의 바탕이 되는 대본을 쓰는 데는 좀 특별한 재능이 요구되는 것 같습니다. 시나리오는 등장인물들이 말하고 행동하고 끊임없이 서로 반응하면서 이야기가 흘러가는데, 그러려면 작가는 각 사람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해야 하니까요. “수사님 시나리오 속 인물들은 어떻게 다 착해요? 갈등이 안 만들어지잖아요, 싸워야 이야기가 되죠!” 선생님께 늘 듣는 타박입니다. ‘음,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이 싸우지?’ 덕분에 요즘은 맨날 싸울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또 하나 배우게 된 것은 이야기란 결국 변화나 성장에 대한 것이구나, 하는 것입니다. 시나리오 시작과 끝 부분에 각각 오프닝, 클로징 이미지를 넣는데 그건 등장인물이 처음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나중에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했는지를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랍니다. 이 과정에 ‘영혼의 어둔 밤’이라 부르는 대목이 있습니다. 기도나 영성에서 대하던 말을 여기서 만나는 게 재미있는데 고통과 절망이 없으면 변화도 성장도 없다는 점에서 당연한 과정 같기도 합니다. “싸울 줄 모르는 수사가 영혼의 어두운 밤을 거쳐 싸움닭이 되고야 말았다.” 이것이 제 시나리오의 결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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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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