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 한 벌은 겉옷과 상·하 내의에
버선·악수·염보 등 부속물로 구성
재단만 17번…컴퓨터 작업 어려워
월 300~350벌 ㈜평화누리에 납품
고인에게 좋은 수의 입히겠다 일념
품질 매우 엄격하고 까다롭게 따져
고층아파트 단지를 지나 도착한 하남시 풍산동의 한 주택가. 작업 공장을 찾으러 왔는데, 단독주택만 빼곡하다. 이윽고 겉으로 보기엔 좀처럼 공장처럼 보이지 않는 평범한 건물 지하로 내려가자, 미싱을 돌리는 소리가 쉼 없이 들리는 제작 현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입구엔 완성된 수의가 가득 든 박스가 켜켜이 쌓인 채 세상을 떠난 누군가를 감싸게 될 제 역할을 하기만 기다리고 있다.
작업장에서는 재단과 재봉 작업이 한창이다. 남성 직원 한 명이 재단을 맡고, 여성들은 미싱을 돌리며 박음질을 한다. 통로에는 1차 작업을 마친 수의가 한가득이다. 이렇게 생산된 제품들은 다시 다림질과 포장 작업을 거쳐 완성된 수의로 출고된다.
수의 제작은 의외로 까다롭다. 수의 한 벌이라 하면, 남성용 겉옷으로는 도포, 여성용 겉옷인 원삼, 내의로 속저고리와 속바지를 일컫는다. 또 버선, 손을 싸는 악수(幄手, 시신의 손을 감싸는 덮개), 염습할 때 시신을 묶는 삼베인 염포 등 여러 부속물이 있다. 이 모든 걸 완성하려면 17번이나 재단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컴퓨터 작업으론 해내기 어려운 이유다.
‘새신’의 양영서(미카엘라) 대표는 “일반적으로 기성복 재단은 원단을 딱 깔아놓고 기계가 알아서 재단하지만, 수의는 재단해야 하는 옷의 종류가 많아 컴퓨터 사용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원단이 들어오면 쫙 깔아놓고 그림을 그리고, 재단하고, 미싱한 뒤 박음질하는 과정이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진다”며 “전부 손을 거치지 않고선 이뤄지는 게 없는 것이 수의 제작”이라고 말했다.
국내 수의 시장은 크게 국내산과 중국산으로 나뉜다. 이처럼 섬세한 작업 과정을 거치기에, 국내산 수의 생산비가 중국산에 비해선 훨씬 비싸다. 양 대표는 “5~6년 전 기준으로 중국에서 완제품을 구입해 와서 타 상조회사에 납품하는 것과 (주)평화누리에 납품하는 건 수의 하나당 약 6만 원 정도 갭(차이)이 있다”며 “그만큼 국내에서 수작업을 거친 수의는 생산비가 많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기에 제품에 대한 자부심만큼은 크다. 한 근로자는 “중국에서 수의를 구매해오면 아무래도 가격은 저렴하지만, 품질은 우리 집을 못 따라온다”고 말했다.
‘새신’은 매달 300~350벌의 수의를 생산해 장례용품 제조공급을 하고 있는 (주)평화누리(대표 천만성 신부)에 꾸준히 납품하고 있다. 삼베 수의가 대부분이지만, 최근엔 인견과 비단으로 제작한 한복 수의의 수요도 늘고 있다.
중국산, 박음질 불량하거나 치수 맞지 않는 경우도
학교법인 가톨릭학원이 운영하는 (주)평화누리가 국내산 봉제 수의를 납품받는 건 “고인에게 수의와 관만큼은 가장 좋은 것으로 제공해 드리자”는 설립 취지에 따른 것이다. 평화누리 장례용품팀 임주연 차장은 “가격만 생각하면 국내산 수의를 공급받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회사 설립 취지를 지키기 위해선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중국산의 경우, 인건비가 저렴하고 많은 양을 공급받을 순 있지만, 박음질이 불량하거나 치수가 맞지 않는 경우가 발생해 완성도 측면에서 부족하고, 원단의 질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에서 생산된 타 업체 수의를 구입해 강도 테스트 과정에서 옷을 당겨보니 박음질이 터지는 것이 아니라 원단 자체가 찢어지는 경우가 있었다”면서 “제품 원단도 직접 선정하고, 직접 봉제하는 국내산과 중국산 수의 품질은 비교 대상이 아니다”며 국내산 수작업 수의를 고집하는 이유를 전했다.
현재 국내에서 수의를 직접 생산하는 곳은 ‘새신’ 외에 몇 군데 되지 않는다. 국내 생산 단가를 맞추기 어려워서다. 이에 현재 장례식장에서 사용하는 수의 용품 대부분은 중국에서 들여온 제품이다. 또 다른 어려움은 수의 제작자 부족이다. 수의 제작에 주로 사용하는 삼베는 섬유 특성상 꺼끌꺼끌해서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손에 굳은살이 박이는 등 작업 환경이 거친 편이다. 그러다 보니 수의 만드는 걸 배우려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양영서 대표는 “새신은 품질에 관해선 매우 엄격하고 까다롭게 따진다”며 고인에게 좋은 수의를 입히겠다는 일념을 재차 다짐해 보였다. 그는 “수의에서 ‘대마(삼베)로 만든 수의냐, 비단 수의냐’의 차이만 있지, 세상을 떠난 모든 분이 수의를 입고 가시기에, 수의 한 벌을 만들더라도 고객들 사이에서 ‘새신에서 만들어서 다르다’는 이야기를 듣도록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사제들의 수의, 평소 입던 사제복 토리노 수의, 예수님 혈흔 남아 있는 것으로 유명
일제 강점기 삼베 본격 사용… 인견·비단 이용 증가
수의와 가톨릭, 그리고 전통상장례
가톨릭교회에서 잘 알려진 수의는 ‘토리노 수의’다. 이탈리아 토리노대성당에서 보관 중인 세마포로, 처형 당시 예수님의 혈흔이 남아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중세 이후 예수 그리스도의 수의라는 전설이 전해져 ‘성의’(聖衣)라고도 불린다. 토리노 수의에는 1m 80㎝가량의 남자 앞뒤 모습이 희미한 갈색 형상처럼 새겨져 있다. 다만 현재도 진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사제들은 선종하면 평소 입던 사제복을 수의로 쓴다. 따라서 사제를 위한 수의를 따로 제작하지는 않는다. 제복을 입는 군인들이 생전에 입던 군복을 수의로 사용하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교구에 따라 일반적인 수의 용품을 일부 사용하는 곳도 있다. 수원교구의 경우, 사제 선종 시 버선과 손을 싸는 악수를 사용한다.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수의는 생전에 입던 예복을 사용했고, 양반 계층 등 부유한 집에서는 비단 수의를 새로 만들기도 했다. 조선 시대 삼베는 상복에서 사용하는 소재였고, 고인의 수의로 쓴 경우는 드물었다.
삼베 수의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건 일제 강점기다. 조선총독부는 조선 양반 사회의 상장례를 지양하고 간소화시키는 내용의 총독부령 123호를 제정했다. 이런 영향으로 고급 견직물 수의는 점차 사라지고, 서민들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삼베 수의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경상도 지방에서는 비단을 수의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고, 전라도와 충청도에서는 겉은 비단으로 하고, 안은 삼베로 하는 경우도 있었다.
1980년대부터 기성 납품업체들이 수의를 장의업체에 전문적으로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삼베 수의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인견이나 비단을 이용한 한복 수의 제작이 늘어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평화누리에서는 우리 전통을 계승하는 차원에서 몇 년 전부터 한복 수의를 공급하고 있다. 한복 수의는 제작하는 재질에 따라 인견 수의와 비단 수의로 나뉜다. 일부 유족은 고인이 가장 아끼던 평상복을 수의로 하는 경우도 있다.
수의의 모양과 형태, 재질은 동서양, 그리고 종교마다 다르지만, 그 기능은 유사하다. 수의는 고인을 관에 모실 때 시신이 잘 부패가 되도록 도와주고, 벌레들로부터 시신을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 수의는 관이 썩어 없어지고 시신만 남았을 경우, 시신이 분리되는 것을 막아준다. 최근에는 화장이 늘면서 수의로 친환경 소재를 사용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곁을 떠난 고인에게 깨끗하고 좋은 옷을 입히는 것이다. 이는 수의를 찾는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