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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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에서 호스피스 봉사자로… 주님 사랑 전하며 제2의 인생

[평신도 주일에 만난 사람]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 자원봉사자 최형균(요한 세례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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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자 최형균씨가 동료 봉사자들과 병상에서 성가를 불러준 후 환자에게 불편한 곳은 없는지 안부를 묻고 있다.


11월 12일은 ‘평신도 주일’이다. 한국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따라 1968년 ‘한국 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를 결성했다. 그리고 연중 제32주일을 ‘평신도 주일’로 정해 매년 평신도들의 사도직 사명을 깨닫도록 하고 있다. 평신도 주일을 맞아 9년째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에서 자원봉사에 임하고 있는 전직 교사 최형균(요한 세례자, 서울대교구 서초동본당, 70)씨를 만났다. 교단을 떠나 병원에서 이웃사랑으로 삶의 무대를 옮긴 그는 환자와 가족을 사랑으로 돌보며, 남은 생을 편안하고 충만하게 살도록 돕고 있다. 성가와 가요도 불러주며 환자와 보호자에게 위안을 주는 활동도 그만의 특별한 사도직이다. 그의 노래와 봉사는 하느님의 존재를 알리는 것은 물론, 마음의 치유와 냉담마저 풀게끔 하는 선한 영향력을 주고 있다. 고통 속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아파하는 이들에게 사랑을 전하며 제2의 인생을 사는 그를 만났다.


2014년부터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로 활동

췌장암, 간암, 폐암 등 말기 암환자가 주로 입원하는 서울성모병원 별관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 최형균씨가 다른 자원봉사자 3명과 함께 입원 중인 A씨 앞에서 ‘내 진정 사모하는’ 성가를 나지막이 불렀다. A씨는 어렵게 성가를 따라 불렀다. 환자가 따라 부르는 성가는 들릴 듯 말 듯했지만, 얼굴만큼은 편안해 보였다. 성가를 마친 최씨는 평소처럼 환자에게 다가가 상냥하게 말을 건네면서 불편한 곳은 없는지 살폈다.

“발 마사지한 곳은 괜찮으세요? 허리가 아프지는 않으시고요?” 그러자 A씨는 작은 목소리로 “네, 많이 괜찮아졌습니다”라고 답했다. “전원(병원 이동)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어디로 가시나요? 가셔서 잘 지내셔야 합니다!” 세심한 관심으로 형제자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그의 평소 모습이다.

그가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한 건 2014년. 고등학교 영어교사로 정년이 1년 남았을 때였다. “‘퇴직하고서 방 안에 들어앉아 있으면 어떤 기분일까’를 상상해 보니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그때 마침 서울주보에 서울성모병원에서 봉사자 교육을 한다는 공고가 나온 걸 보고 ‘바로 이거다!’ 싶었어요. 곧장 신청해 교육을 받고 매주 토요일 봉사하는 삶을 시작했습니다. 내년이면 만 10년이 되는 거죠.”

그가 맡은 기본 봉사는 입원한 환자들의 목욕을 돕고, 자세를 바꿔주는 일이다. “의료진이나 원목실 봉사자들이 하지 못하는 일들을 자원봉사자가 전부 다 합니다. 목욕을 시키고, 면도하실 분은 면도도 해드립니다. 목욕 후엔 발 마사지를 원하는 분들도 많아요. 발이 대부분 부어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마사지를 해드리면 아주 좋아하시죠.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환자를 돌려 눕히거나 앉도록 세우는 것도 제 몫입니다.”
 

다른 봉사자들과 함께 성가를 부르고 있는 최형균씨.


자원봉사자들이 통상적으로 하는 봉사 외에 최씨에겐 특별한 역할이 있다. 바로 노래다. 가톨릭 신자들을 위한 성가는 물론이고, 불자들을 위해선 찬불가를, 트롯을 좋아하는 환자를 위해선 구성진 트롯을 불러준다. 서울 서초동본당에서 오랫동안 성가대 활동을 한 그의 ‘노래 불러주기’가 봉사에 따스함을 더해주고 있는 것이다.

“병상에 계신 분들에게 좋아하는 가수와 노래에 맞춰 불러드리죠. 그러면 눈물을 흘리며 좋아하십니다. 테이프나 유튜브로 음악을 들려주는 것과 직접 불러주는 것은 확실히 다릅니다. 유튜브로 음악을 틀어주면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시지만, 음정도 잘 안 맞고 박자 좀 틀려도 직접 불러주면 호응이 더 큽니다. 정말 좋아하세요.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에게도 힘이 되고요. 보호자들도 다들 지쳐 있거든요.”

실제로 가수 이문세의 팬이었던 40대 말기 암환자 여성에게 노래를 불러주자 환자가 눈을 뜨는 걸 보기도 했다. “그분은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의식이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문세의 ‘소녀’를 부르자 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 노래를 따라 하시더라고요. 그다음 주에 다시 찾아가 ‘이문세 노래 불렀던 사람 왔어요’ 하니까 눈을 희미하게 뜨는 게 아니겠어요. 의학적으로 설명하긴 힘들겠지만, 노래엔 분명 힘이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환자들의 소원 들어주기’ 프로그램에도 참여

그는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가 운영하는 ‘환자들의 소원 들어주기’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있다. 환자들이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삶을 마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80대 남성 환자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어릴 적 다녔던 초등학교에 가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경북 안동 도산서원 옆에 있는 학교까지 가서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 왔죠. 또 ‘참치회에 소주 한 잔 먹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보통의 환자였으면 절대 금주였겠지만, 의료진 허락을 받았고, 곧장 노량진 시장으로 달려가 회 한 접시와 소주를 사왔습니다. 그분은 그날 저녁 아내와 러브샷을 하고, 소주 반 잔과 참치회 한 점을 먹고 다음날 돌아가셨습니다. 아내분으로부터 ‘봉사자님과 병원 도움 덕분에 마지막 시간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남편은 새벽 4시에 하늘나라로 갔어요. 감사합니다’란 문자를 받았습니다. 왠지 모르게 저도 가슴이 뜨거웠죠.”

스위스 등 일부 국가에서는 말기 암 등으로 고통받는 환자에게 법적으로 의사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끊는 ‘의사조력자살’(안락사)을 허용한다. 최씨는 호스피스 완화의료가 이를 막는 유력한 대안이라고 했다. “환자들이 봉사를 받아보시면 굉장히 좋아하시거든요. 그러면 달라지세요. ‘여기가 진짜 호스피스구나’, ‘정말 가족과 함께 죽음을 편히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하세요. 가족들에겐 고통과 슬픔을 덜어주는 총체적인 돌봄을 선사하는 곳이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입니다.”

그는 3~4년 정도 봉사를 지속할 때쯤 신심이 자연스레 더 두터워졌다고 했다. “여기 계시다가 삶의 끝을 앞둔 분들은 임종방으로 가시거든요. 그러면 ‘기도도 하고 성가도 좀 불러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른 봉사자들과 가서 기도하고 성가를 부르면 정말 편안해지는 모습이 얼굴에서 느껴집니다. 그럴 때마다 하느님께서 ‘너 거기 가봐라. 지금 네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해주시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 성 요셉상 앞에 선 자원봉사자 최형균씨.


“내일 당장 성당에 가서 냉담을 풀겠습니다”

장례를 돕다가 오랫동안 성당을 찾지 않던 냉담자의 발길을 주님께로 돌리게 한 일도 있었다. “환자분이 신자였는데, 알고 보니 따님 두 분이 냉담 중이었습니다. 납골당에 가서 예식을 마치고 같이 버스를 타고 장례식장에서 내리는데 ‘너무 고맙습니다. 저희가 지금껏 냉담했는데 내일 당장 성당에 가서 냉담을 풀겠습니다’라는 거예요. 속으로 ‘그냥 하는 말이겠지’ 했거든요. 그런데 얼마 후 바로 ‘성당에 다니고 있다’는 문자가 왔어요.”

통증 완화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환자 중엔 사설 앰뷸런스를 이용해야 하는 이들이 있다. 20~30만 원가량 들어, 경제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환자들이 있다. 이때 다시 최씨가 나선다. 차를 직접 운전해 집까지 배웅하는 일도 기꺼이 하는 것이다. 그는 “봉사는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봉사를 어떻게 하느냐’고 얘기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봉사는 특별한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그냥 평범한 사람이 하는 겁니다. 봉사하면 얻는 것이 더 큽니다. 제가 넷을 희생하면 여섯, 일곱을 얻는 그런 느낌이 들거든요. 모두 주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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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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