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롭고 씩씩하고 서로 돕는 어린이”
노틀담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인천 동춘동 박문초등학교(교장 박원희 마리 루피나 수녀, 이하 박문초). 교육 사도직에 복음 교육을 통합시키는 노틀담수녀회 운영 비전에 따라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고(큰 사랑), 큰 마음과 꿈을 키워가며(큰 뜻), 즐겁게 배우고 스스로 탐구하는(큰 배움), 영육이 건강한(큰 체력) 학생들을 길러내고 있다.
복음에 기반을 두고 가톨릭 영성과 감사의 문화를 강조하며 전인적 인성교육을 펼치는 박문초의 교육 방향을 알아본다.
■ 모든 것은 감사로부터
박문초의 인성교육은 학생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르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타인을 바라보게 만들고 부모, 친구, 교사 등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며 공감할 줄 알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전교생이 매달 만드는 감사달력 등 실천적 교육 활동들은 학생들이 감사하는 마음을 학습이 아니라 일상에서 익히게끔 유도한다. 감사달력 제작은 학생이 매일 아침 달력에 그날 감사하게 다가온 내용을 글과 그림으로 작성하는 활동이다.
학교도 학생들에게만 맡겨놓는 형식적 교육에 그치지 않고, 깊은 관심으로 살피며 달별로 우수 작품을 선정한다. 평가 기준은 우수성보다는 내용이 얼마나 충실한지에 달렸다. 학생 스스로 부모, 친구, 교사 등 주변 사람들이 어떤 마음에서 자신에게 사랑을 베풀었고 그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지, 깊이 있게 성찰했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1학기 전교회장 한재승(6학년)군은 “처음에는 감사한 일을 찾는 게 어려웠지만, 생각해내는 습관을 들이니 사소한 일에도 감사한 점들이 눈에 보여 부모님, 친구들, 선생님들과도 사이가 점점 좋아진다”고 말했다.
박문초 학생들이 감사달력을 쓰며 갖추게 된 주변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은 공동체와 사회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향한 공감과 연대로 나아간다. 그 일환으로 진행되는 감사편지 쓰기는 사회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고 희생을 한 사람들에게 학생들이 손수 쓴 편지로 감사와 응원의 마음을 전달하는 활동이다.
학생들은 코로나19 의료진, 10·29 참사 당시 소방관과 경찰관들 수고에 감사를 표현하는 편지를 쓰고 전달했다.
인성부장 김동인(요한 세례자) 교사는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숙한 인식을 학생들에게 일깨워주고자 본교는 감사 교육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과 상대방, 상황, 감정 등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감사 정신을 갖춘 학생들은 생명 존중 등 사회인으로서 깨달아야 할 고차원적 가치를 훨씬 쉽게 터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더불어 자라는 공동체
박문초 학생들은 학년별로 구성되는 정규반과 별도로 1~6학년 학생들이 골고루 섞인 ‘한우리반’에도 참여한다. 18개 반으로 구성된 한우리반은 학생들이 선후배와 알고 지내며 학교에 소속감을 갖도록 이끌고, 주인 의식을 심어주는 데 취지가 있다.
한우리반을 통해 박문초 학생들은 학년을 뛰어넘어 친구를 맺으면서 인간관계를 넓힌다. 한우리반 단위로 떠나는 월례 성지순례는 선후배가 서로 보듬는 여정이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가톨릭 신앙교육을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실천하는 기회가 된다.
‘한우리 올림픽’ 체육대회는 선후배가 돈독한 관계 위에 서로 배려하고 협동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우도록 한다. 학기 초인 3월에는 ‘환영해요’, 졸업을 앞둔 1·2월에는 ‘잘가요, 선배님들’ 등 계절에 따라 다양한 주제로 마련된다. 고학년은 저학년을 책임감으로 이끌고, 저학년은 고학년을 따르며 교실 너머 가족적인 공동체 의식을 함양한다.
2학기 전교회장 이지민(라파엘라·인천 동춘동본당)양은 “다른 학년, 다른 반 친구들도 다 같이 활동하는 한우리 올림픽이 가장 마음에 든다”며 “선배들을 믿고 따라주는 저학년 친구들이 귀엽고 또 고마워서 그 아이들을 챙기는 게 수고롭고 귀찮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밝혔다.
“성지순례가 좋았다”는 한재승군은 “신앙은 없지만 동생들과 어울리는 게 행복해 신앙 얘기도 하나도 지루하지 않게 귀에 쏙쏙 들어왔다”고 말했다.
■ 하느님께 사랑받는 기쁨
박문초의 영성교육은 전교생이 매주 한 시간씩 듣는 영성수업을 포함해 학생들이 보이지 않는 분께 아무 조건 없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데 목표를 둔다. 그 조건 없는 사랑을 받는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게 되면서 느끼는 기쁨으로 복음을 스스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실천교리교육처럼 노틀담수녀회 카리스마에 기반한 다양한 영성수업 교수법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이 받고 있는 하느님 사랑을 구체적으로 나타내고 맛볼 수 있다. 실천교리교육은 천이나 구슬, 돌 등 감각적 재료를 동원해 내면의 심상을 창의적으로 표현하는 노틀담수녀회만의 신앙·인성교육 교수법이다. 예컨대 학생들은 성가정을 주제로 이미지를 꾸미면서 조건 없이 주어지는 부모님 사랑을 새롭게 느껴보고, 예수님이 나를 얼마나 많이 사랑하는지 하트, 별, 천 등으로 예쁘게 나타내고 내면화한다.
영성수업 시작 전 영성 담당 수녀와 함께 동급생 한 명을 위해 바치는 기도, 전교생 대상으로 매주 한 학급 학생들을 하나하나 호명해 축복을 빌어주는 금요일 아침 방송 기도도 무조건적인 하느님 사랑 체험의 창구가 된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로부터 사랑받는 기쁨으로 학생들은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사랑할 줄 알게 된다.
영성 담당 송일순(마리 쥴리나) 수녀는 “11월 위령 성월을 맞이해 학교 입구에 전례 장식으로 꾸며놓은 성모상에는 학생들이 신앙과 상관없이 스스로 다가와 전쟁과 질병 등 기도가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묵주기도를 바친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들 안에 이미 종교적 심성이 있어, 자신도 하느님께 사랑받았듯 자연스럽게 남을 사랑으로 섬길 줄 안다”고 전했다.
사랑받는 행복을 주는 박문초 영성교육이기에 신자·비신자 모두 신앙에 거부감 없이 스며든다. 아침기도 모임 리틀메리에는 비신자 학생들도 스스로 참가해 묵주기도를 바친다. 학년 및 전체 미사 봉사 활동을 펼치는 어린이전례단 안젤루스는 전교생 선망의 대상이다.
리틀메리와 안젤루스에 모두 참여하는 5학년 명혜원(루치아·인천가톨릭대 성 김대건본당)양은 “본당에서도 신앙생활을 하지만 영성수녀님과 함께 전례와 신심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하느님 사랑을 듬뿍 체험한다”고 말했다.
교장 박원희 수녀는 “복잡한 에듀테크 기술이 넘쳐나지만, 교육은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라며 “학생 하나하나 인격체로 존중하고 사랑을 주는 본교 교육은 학생들을 공동체와 화합할 줄 아는 전인격적 인재들로 길러낼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주헌 기자 ogoy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