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서울 양천구에서 발생한 입양아동 학대 살인 사건인 ‘정인이 사건’ 이후로 아동학대를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아동학대 사건은 하루걸러 언론에 보도된다. 11월 19일은 아동학대의 예방과 방지에 관심을 높이기 위해 제정한 ‘아동학대 예방의 날’이다. 우리 사회의 아동학대 실태를 들여다보고, 아동학대 예방과 피해 아동 보호를 위해 가톨릭교회는 어떤 관심을 보낼 수 있을지 짚어본다.
줄어들지 않는 학대, 치유되지 않는 상처
많은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정인이 사건’이 발생하고 3년이 흘렀다. 훈육을 핑계로 가하는 아동학대에 경종을 울린 사건이었지만, 그 후로도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해마다 발표하는 ‘아동학대 주요통계’에 따르면, 정인이 사건 발생연도인 2020년 전국 아동학대 신고 접수는 4만2251건이었다. 2021년에는 5만3932건, 2022년에는 4만6103건으로 오히려 증가했다. 학대로 사망한 아동은 지난 3년 동안에만 133명으로 집계됐다.
아동학대 유형은 신체학대, 정서학대, 성학대, 방임·유기가 있다. 아동학대를 경험한 아이들의 몸과 마음에는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와 후유증이 남는다. 학대 피해 아동을 돌보는 쉼터와 그룹홈에서는 인지행동치료, 놀이치료, 언어치료, 미술치료 등 각종 치료를 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학대의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높다.
의정부교구 산하 카리타스그룹홈 김경숙(레지나) 시설장은 “어릴수록 치료가 잘되지만 고학년만 되어도 심리상담 효과가 적고 치료를 해도 사실상 원점이 된다”고 말했다. 또 “어린 시절부터 긴 시간 학대에 노출됐던 아이들은 신경정신과 약을 복용할 뿐 아니라 자해나 자살시도까지 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청주교구 산하 쉼터인 다락방 이미소라(크리스티나) 원장은 “대부분 아이가 새벽에 맨몸으로 오는 응급입소자”라고 밝혔다. 이 원장은 “쉼터에 온 아동들의 행동 중 가장 안쓰러운 것은 그동안 채워지지 않았던 마음을 끝없는 폭식으로 푸는 것”이라며 “온몸이 멍투성이인데도, 부모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한 탓에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아동학대 막는 최선의 예방법은 ‘관심’
전문가들은 아동학대를 예방하고 치료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관심’과 ‘신고’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2022 아동학대 주요통계’를 보면, 아동학대는 부모에 의해 일어나는 경우가 82.7다. 가정 밖에서는 정확한 상황을 알기 어렵지만 조금이라도 학대가 의심된다면 반드시 신고해야 한다. 아동학대 신고의무자는 초·중·고교 직원과 학원 및 교습소 종사자를 포함해 25개 직군이다. 고양시아동보호전문기관 김미영(헬레나) 관장은 “신고의무자들은 아동학대를 인지하면 증거가 부족해도 신고할 수 있다”며 “신고자의 신원은 철저히 보호되고, 조사 결과 학대로 밝혀지지 않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으니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용기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피해 아동과 학대 행위자를 대상으로 사례 관리를 한다. 학대가 재발하지 않고 건강한 가정으로 기능하도록 부모와 아동을 상담하며 다양한 치료를 이어간다. 천주교 신자들도 아동학대에서 온전히 벗어나 있지는 않다. 아동보호전문기관 관리 사례 중에는 신자 부모들도 존재한다. 김 관장은 “신자들도 아동학대 징후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고, 특히 아동의 가정 상황을 잘 알 수 있는 주일학교 교사들이 아동학대 인지에 관한 교육을 받길 바란다”고 말했다.
신자 부모 교육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김경숙 시설장은 ‘부모 역할 교육’과 ‘부모와 자녀 의사소통 교육’을 강조했다. 그는 “신자 가정은 ‘정상’이 대부분이지만, 자녀 교육에 관한 방향성을 잡지 못하는 부모들도 없지 않다”며 “교회에서 신앙과 접목한 부모 교육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올바른 방법을 배울 수 있게 도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동학대는 학대를 받은 부모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대물림하는 경우가 많고, 부모들조차 체벌과 훈육을 헷갈려한다. 신앙 안에서 자녀를 훈육하고 올바른 사랑으로 대하도록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교회가 피해아동들의 더 큰 품 돼주길
현장 전문가들은 아동보호전문기관과 학대 피해 아동을 수용할 쉼터가 늘어나도록 교회의 손길이 확대되길 바랐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전국 250개 지자체마다 있어야 하지만 현재 89개에 불과하다. 위탁 운영 법인을 찾기 어려운 탓이다. 한국교회에서는 의정부교구 사회복지법인 대건카리타스가 고양시·의정부시 아동보호전문기관을 위탁받아 운영한다.
김미영 관장은 “아동보호전문기관은 국가 보조금만으로는 일하기 어려워 법인전입금이 많이 들어가고, 부모들의 강성 민원이 많다보니 가톨릭교회뿐 아니라 타 법인에서도 기피하는 사회복지사업”이라고 했다. 이어 “학대는 아이의 생명과도 직결될 수 있는 문제라 기관 확대를 위해 법인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국학대피해아동쉼터협의회의 자체 현황조사에 따르면, 전국 아동학대쉼터 135개소 중 가톨릭 법인에서 운영하는 시설은 대구대교구, 의정부교구, 청주교구 산하 6개소다.(2023년 8월 기준) 서울대교구는 재단법인 바보의나눔에서 2021년부터 특별배분사업으로 전국 쉼터 수십여 곳을 지원하며 피해 아동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협의회 이순남(빈첸시아) 사무국장은 “아동 시설은 정부 보조금 자체가 적어 운영이 어렵기 때문에 교회의 도움이 더 절실하다”며 “사랑의 섬김을 실천하는 가톨릭교회에서 위탁 시설을 확대하고 학대아동들을 따뜻한 사랑으로 돌봐주기를 희망”했다.
다수 전문가가 공통적으로 신자들의 위탁가정 봉사도 요청했다. 이 사무국장도 “만 7세 미만 영아나 저학년은 가정과 유사한 환경에서 일대일 보호를 받아야 학대 후유증이 덜하고 건강한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며 “각 지역 가정위탁지원센터를 통한 위탁가정 신청에 신자분들도 마음을 열어주시면 좋겠다”고 전했다. 학대피해 아동들의 위탁 보호 기간은 3개월부터 1년까지다. 72시간 응급보호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가정 돌봄이 정서 안정에 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신자들의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대건카리타스 회장 도현우(안토니오) 신부는 “자기 표현과 자기 방어권이 약한 여린 존재인 아이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면서 “사회복지의 모토인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생각해 법인에서 적극 나서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아동 보호는 교회가 나서기에 앞서 국가가 먼저 실질적인 관심을 보이고 충분한 예산을 지원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사회복지는 국가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민간(종교 포함)이 보충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도 신부는 “상처 입은 아이들을 보호하고 하느님 뜻에 맞게 밝고 건강히 자라도록 국가와 함께 교회도 마음을 모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염지유 기자 gu@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