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말 기준, 지구촌 난민 수는 1억 840만 명에 이른다. 박해와 분쟁, 폭력 등 극한의 위기로 고향을 떠난 이들이다.
우리나라에선 1만 1539명이 난민지위를 신청했다. 그러나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175명에 불과하다.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시행한 지 올해로 꼭 10년이 됐지만, 여전히 인정률은 1~2를 오가는 상황이다. 나머지 98는 어디에 있을까? 목숨을 걸고 고향을 떠났지만, 난민 인정이라는 바늘구멍을 뚫지 못한 채 오갈 곳 없이 떠도는 이들은 오늘날 지구 상에서도 가장 가난한 이들이다. 특히 한국에선 유독 관심과 제도의 지원을 받지 못해 이른바 ‘대한난민표류기’가 이어지는 형국이다. ‘세계 가난한 이의 날’(11월 19일)을 맞아 난민인권센터가 최근 발표한 ‘지난 1년간 한국사회의 난민인권 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토대로 그 현실을 돌아봤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
최장 295일 공항에서 대기하기도
“공항에서 한국 정부에 도움을 청했지만, 그들은 납득할 수 없는 설명을 하며 신청을 거부했습니다. 공항에서 3개월 동안 갇혀 있었지만, 변호사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우리 안의 동물이 된 기분입니다.”(난민 A씨)
한국은 2013년 7월부터 출입국항에서 난민신청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난민이 입국하면 심사자격을 검증하는 과정을 거치도록 하는 제도다. 심사에서 ‘회부 결정’을 받으면 입국과 함께 난민신청이 가능하지만, ‘불회부 결정’을 받으면 본국으로의 (강제)송환과 공항에서의 무기한 대기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지난 10년간 공항에서 평균 회부율은 36.2. 난민 신청을 하기도 전에 난민 신청할 자격부터 얻어야 하는 구조다.
불회부 결정을 받은 이들의 유일한 구제 수단은 행정소송. 그러나 소송을 제기하면 장기간 출입국항에 머물러야 한다. 성별만 같으면 한 공간에 몰아넣는 열악한 환경이 기다린다. 낮에는 공항 벤치를 떠돌고, 그렇다고 고국으로 돌아가지도 못한다. 중간 지대인 공항에서 난민 생활을 하는 실정이다. 출국대기실에 가장 오랫동안 머물렀던 이는 295일 동안 공항 대기 신세를 져야 했다.
정보 제공 충실하지 않아
“한국에 처음 도착한 다음 어디로 가야 난민신청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이후 이태원에서 만난 외국인에게 정보를 얻었습니다. 겨우 난민신청서를 받았는데, 영어로 된 문서라 막막했습니다.”(난민 B씨)
전문가들은 “난민심사체계가 정상적이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김연주 변호사는 “난민행정이 투명하게 공개돼있지 않다”며 “각 출입국에 게재된 형식적인 안내판 외에 정보가 충실히 제공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대다수 난민신청자들은 친구나 NGO, 종교 단체 등을 통해 절차에 관한 정보를 얻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잘못된 정보로 피해를 보는 사례도 적지 않다. B씨 또한 난민신청과 별도로 체류를 위한 비자신청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안내받지 못했다. 이후 다시 출입국을 찾아갔더니 비자 신청 기한이 지나 벌금 150만 원을 내야 했다. 벌금을 납부해도 출입국은 외국인등록증 대신 출국명령서가 적힌 종이를 건넸다. B씨는 지금까지 체류 비자가 없는 상태로 난민심사를 받고 있다.
통역 문제, 허위 면접조서로 두 번 울다
2017년에는 난민조사관과 통역관에 의해 난민신청 면접조서가 허위로 꾸며진 사건이 발생했다. 아랍권 국가 출신의 해당 난민 면접조서를 보면 “일을 하고 돈을 벌 목적으로 난민신청을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런데 당사자들이 해당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밝히면서 문제가 됐다. 이에 법무부는 허위 조서가 작성된 사실을 확인하고 당사자들에게 재심의 기회를 줬다. 이후 난민면접 과정을 녹음·녹화하는 것이 의무화됐지만, 파일 교부는 허용하지 않고 있어 여전히 심사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길은 요원하다. 김 변호사는 “열람은 가능하지만, 이를 위해선 출입국이 지정한 날짜와 장소에 가야 한다”며 “녹음본이나 영상을 분석하려면 해당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통역인이 동행해야 하는데, 열람만으론 한계가 커서 사실상 실효성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했다.
조사관 : C씨는 어떤 문제를 겪었나요?
통역관 : C씨는 어떤 박해를 겪었나요?
난민 C씨 : 박해가 어떤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통역 과정에서 난민신청자가 단어를 이해하지 못해 큰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학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난민들에게 특히 이 같은 일이 발생한다. C씨는 ‘박해’란 단어를 ‘괴롭힘’으로 이해해 답변했다. 그러자 통역관은 “괴롭힘에 대해 묻는 게 아닙니다. 박해를 받은 적이 있나요?”라고 같은 질문을 반복해 소통의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난민인정심사, 허점 투성이
난민인정심사를 하는 데 있어 중요한 내용을 빼먹는 경우도 발견됐다.
“레바논에 돌아가니 다른 집단 간 충돌이 난민캠프 안팎에서 벌어져 다친 사람이 많았고, 두 집단이 사람들을 전쟁터로 끌고 가려해 생명이 위협받을 것 같아 한국으로 돌아가 비호 신청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난민 C씨)
“우선 한국을 둘러보고 한국 사람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가족을 보러 레바논에 돌아갔다가 ‘한국에 가서 난민 신청을 하자’고 결정했습니다.”(통역관)
두 문장은 같은 말이 전혀 다르게 통역된 사례다. C씨는 조사관이 “대한민국에 처음 입국했을 때 왜 난민신청을 하지 않았죠?”라고 묻자 위와 같이 답했는데, 통역관의 입을 거치자, 전혀 다른 내용이 된 것이다.
결국 C씨는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올해 진행된 재신청 면접에서도 통역 오류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현주 활동가는 C씨의 사례를 통해 난민심사체계의 한계를 확인하고 “조사관이 1명의 통역관을 신뢰할 수밖에 없는 현 과정에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매우 높다”며 “난민신청자가 도움받을 제2의 통역자가 면접에 동행할 수 있지만, 통역 과정의 오류를 정정할 발언권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난민심사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며 “조사관이 통역관에 전적으로 의지하기에 앞서 난민신청자의 출신 국가에 대한 기본적인 조사도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난민 인권에 대한 관심 호소
“너희는 이방인을 억압하거나 학대해서는 안 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다.”(탈출 22,20)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모든 형제들」에서 심각한 인도주의적 위기를 피해 온 이들을 향한 필수 불가결한 응답을 언급했다. “비자 발급을 확대하되 절차는 간소화하고, 적절하고 품위 있는 주거를 제공하며, 개인의 안전과 기초 서비스 접근·적절한 상담 지원과 신분증을 소지할 권리· 공정한 사법 제도 접근·은행 계좌 개설 가능성과 최저 생계비·이동의 자유와 고용의 기회·미성년자 보호와 교육의 기회·종교의 자유·가족의 재결합 지원 등을 보장할 것”(130항 참조)
애석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교회가 강조한 응답을 한 가지도 해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 1월 이주민 자녀를 돌보는 기관 ‘전진상 우리집’을 찾은 난민신청자 가족은 숙소가 없어 다른 이주민 집에 방을 얻어 생활하고 있다. 난민신청 후에는 6개월 동안 취업이 금지되는데, 그동안 받을 수 있는 지원금을 신청하기 위해 ID카드 발급을 출입국에 요청했더니 3개월 동안 “기다리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전진상 우리집’ 최정인(베로니카) 시설장이 유관단체 도움을 받아 정보공개를 신청한 결과, 허무하게도 이미 2달 전에 발급됐다는 답변을 받았다. 최 시설장은 “난민신청자도 사람”이라며 “이들이 난민 심사를 받는 동안에도 인권이 지켜지도록 우리가 더 관심을 갖고 사람다운 대우를 해주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