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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 현장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의 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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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아홉 시, 북카페에 앉아있습니다. 주말 아침이라 서울 논현동 가구거리는 한산합니다. 길가에 선 느티나무들도 노란색, 붉은색으로 물들어가고 그 아래로 두꺼운 점퍼에 목도리를 두른 사람들이 지나갑니다. 수도회가 사람들의 발길이 점점 뜸해지는 서원을 놓고 고민하다가 새로운 형태의 서원으로 북카페를 시작한 지도 10여 년이 지났습니다. 북카페 소임을 맡아 일하면서 제일 좋은 때는 이렇게 아침 시간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 앞에 두고 조용히 거리를 내다보는 시간입니다. 자신 안에 잠기는 시간이 달콤하구나, 싶거든요.

우리 북카페 단골 중에 아이스 카페라테를 좋아하는 분이 있어요. 늘 시럽을 넣어서 마시는 분인데 지난번에는 한 모금 마셔본 뒤에 그러는 거예요. “어? 커피 맛이 변한 거 같아요!” “정말요? 특별히 달라진 건 없는데?” 곰곰이 생각해본 뒤에 내린 결론은 이번엔 시럽을 넣고 여러 번 저어서 그런 것 같다는 거였습니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달콤한 것이 당기는 때입니다. 몸에는 시럽과 초콜릿이 달지만, 영혼에 제일 달콤한 것은 자신과 머무는 고요한 시간입니다. 현대인에게 제일 부족한 것은 시간이라고들 하지요. 다들 “아이고 바쁘다!”를 외치지만, 대체 왜 그렇게 바빠야 하는지는 모르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진짜 부자는 시간 부자인지도 모릅니다. 내 뜻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만이 나의 소유라고 한다면 시간에 쫓기며 사는 사람은 결국 시간의 종일 테니까요. 그리고 시간을 누리며 사는 사람만이 인생의 다른 것들도 누릴 수가 있을 겁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우리가 자기 방에 고요히 혼자 머무르지 못하는 데서 생긴다”고 말한 철학자도 있지만, 자신과 머무는 시간은 그림으로 치면 바탕과 같은 것이어서 바탕이 없이는 푸른색도 붉은색도 칠할 수가 없게 됩니다. 오늘은 분주한 시간을 조금 접어두고 혼자만의 시간을 꾸려봐야지, 피세정념(避世靜念), 피정이 바로 이것일 테니, 혼자 생각하는 주말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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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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