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학, 교회
신학자로 살고 있다. 학문적 능력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신학에 관한 나름의 깊은 관심은 신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여전하다. 신학을 배우기 시작한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를 사로잡고 있는 질문은 신학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면, 신학의 본질과 정체성에 관한 질문보다는 신학의 사명과 역할에 관한 질문에 더 관심이 많았다. 신학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것과 신학이 교회와 세상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학적이고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것은 신학을 이해하는 방식의 차이를 낳는다.
교회에 몸을 담고 살고 있다.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세상 속에 존재하고 있는지에 늘 관심이 많다. 교회의 신학적 본질과 정체성에 관한 질문보다는 실제 교회가 세상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비추어지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과 사명을 수행하고 있는지에 더 많은 관심이 있다는 뜻이다. 모든 실재의 본질과 사명은 연결되어 있다. 존재적 본질과 행위적 역할을 구분하고, 전자를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통적 존재론의 편견일 뿐이다. 교회는 자신의 사명을 수행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과 본질을 드러낸다.
위기와 불안의 시대를 살고 있다. 생태 환경의 파괴는 지구의 전망을 어둡게 한다. 후기 자본주의가 초래하는 경제적 양극화 현상과, 이념의 갈등이 초래하는 사회의 양극화의 현상은 미래의 전망을 우울하게 한다. 종교 역시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한 동력으로 작동되기보다는 때때로 근본주의적 형식으로 작동되어 세상의 갈등을 더욱 부추기기도 한다. 세상이 점점 음울한 풍경으로 변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교회와 신학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무엇을 해야 하는가?
■ 시노달리타스에 관한 시노드
시노달리타스에 관한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제1회기가 로마에서 개최되었다. 회기가 끝난 후, 20개 안건들에 대해 ‘수렴된 것들’(Convergences), ‘숙고가 필요한 문제들’(Matters for Consideration), ‘제안들’(Proposals)이라는 형식으로 세부 항목들을 분류한 「종합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번 시노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참여 구성원과 진행 방식의 변화였다. 투표권을 가진 평신도 여성과 청년의 참여와 소규모의 원탁 형식으로 이루어진 대화 과정은 이번 시노드의 주제인 시노달리타스를 그 시작부터 실천하려 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물론 「종합 보고서」 내용에서도 표현되었듯이, 주교들의 시노드(the Synod of the Bishops)와 교회 회의들(Ecclesial Assemblies)은 구별이 필요하다. 또한 교회의 문제들에 대해 모든 구성원들이 대화의 여정과 결정에 도달하는 과정(Decision-making)에 참여하는 것과 주교들의 직무적 책임인 결정을 내리는 것(Decision-taking)은 구별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시노드가 보여준 회의 구성 방식과 대화 과정은 시노드적 교회(the Synodal Church)를 향한 첫걸음으로서 충분히 의미가 있다. 시노드가 보여준 또 다른 큰 특징의 하나는 교회 안에 다양한 의견이 있고 의견의 불일치도 존재한다는 것을 정직하게 보여준 데에 있다. 사목적·신학적·교회법적 측면에서 더 깊은 이해와 숙고가 필요한 문제들을 정직하게 기술하고 있다. 수렴된 내용의 안건들에 대한 투표에서 가장 많은 찬성표를 받은 것은 경청하고 동반하는 교회를 향한 항목이었다. 346명의 투표 참여자 가운데서 찬성 345표 반대 1표였다. 다른 한편으로, 가장 많은 반대표를 받은 것은 여성 부제직에 관한 두 개의 항목이었다. 각각 69표, 67표의 반대표를 받았다. 여성 부제직에 대한 언급 자체가 아직 불편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 역시 교회의 현실이다. 물론 시노드는 교리를 변경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하지만 여성 부제직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시노드에서 공식적으로 표명한 것만으로도 충분한 진전이다. 어느 여성 신학자가 언급했듯이, 필요한 것은 조급함이 아니라 끈기 있는 기다림과 노력이다.
「종합 보고서」는 성직주의에 대해 분명한 비판을 담고 있다. 성직주의는 사명과 직무 수행을 위한 권위와 힘을 예수 그리스도의 방식이 아니라 세속적인 방식으로 사용하고, 직무와 권위를 섬김을 위한 도구로서가 아니라 특권으로 이해하는 데서 발생한다. 「종합 보고서」는 사제 양성의 쇄신을 요청한다. 사제 양성이 신자들의 일상생활에서 유리된, 인위적이고 폐쇄적인 환경에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솔직히 고백하면, 사제들은 신학생 시절부터 타인과 또는 신자들과 함께하는 방식을 잘 교육받지 못하고 있다. 신학생과 성직자들의 양성 교육과 문화 역시 시노드적이라기보다는 위계적이다. 사실 교계적 질서를 존중하고 순명하는 것과 교회 안에 시노드적 삶과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은 서로 대립적이지 않다. 시노드적 교육과 삶과 문화 속에서 진정한 의미의 교계적 질서(Hierarchical Order)와 삼위일체적 친교(Trinitarian Communion)가 형성된다.
■ 이 시대의 신학
11월 1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신학에 관한 짧은 ‘자의 교서’를 반포했다.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시노드적이고 선교 지향적 교회에 관한 자신의 비전에 신학자들이 참여해주기를 바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각이 담긴 문헌이다. 시노드적, 선교적,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교회를 위한 신학 역시 관계적이고, 사목적이며,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학은 시대의 변화와 도전에 직면해서 신앙을 새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신학은 이해와 해석의 작업이다. 계시는 불변이지만 계시에 대한 이해와 해석은 시대에 따라 변하고 발전할 수 있다. 신학은 과거의 공식과 체계를 반복하거나, 세상과 다른 학문과 격리되어서 자기 참조적이며(Self-referential) 추상적이고 이념적으로 작동하는 책상머리의 학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신학은 근본적으로 맥락적(Contextual)이다. 신학적 성찰은 맥락들과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출발한다. 신학은 시대의 징표를 식별하고 신앙의 진리와 예수의 가르침을 오늘의 언어로 소통하고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신학은 다른 학문들, 비신앙인들, 타교파와 타종교의 사람들과도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시노드적으로 신학한다는 것은 복합적이고 다양한 요소들을 경청하고 대화하고 식별하고 통합하는 여정이다.
신학은 학문적 행위이지만 동시에 신앙의 지혜이기도 하다. 신학은 영성적, 사목적, 실천적인 특성을 갖는다. 신학은 교회의 복음화 사명과 신앙 전수를 위해 존재한다.
오늘의 한국교회와 한국신학은 시노드적 교회, 시노드적 신학이 되기 위해서 과연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정희완 요한 사도 신부(가톨릭문화와신학연구소 소장)